신앙촌을 바라본 목사 왈, “이건 사람의 역사가 아니다”
최온순 승사(3) / 기장신앙촌<이어서>하나님께서는 옥중에 계시면서 저희가 머리맡에 물을 떠 놓으면 축복을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한두 살 정도 되었던 셋째 아들 선길이가 피부병에 걸려 하루 종일 가려움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해 그 어린애가 온몸을 긁느라고 밤에 잠을 못 잘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물을 수건에 적셔 온몸을 깨끗이 닦아 주었더니 언제 피부병이 있었냐는 듯 말끔히 나았을 뿐 아니라 피부가 매끈매끈해지면서 피부병에 걸리기 전보다 훨씬 더 고와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든 그 은혜는 공간을 초월해 우리와 함께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옥에서 나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목사인 오빠가 저를 만나기 위해 소사신앙촌으로 찾아왔습니다. 오빠는 1955년 대구 칠성동 집회에 참석해 이슬성신이 내리고 향취가 진동하는 것을 똑똑히 체험하였고 하나님께 안찰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날 저는 오빠와 함께 노구산 정상의 오만제단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신앙촌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오빠는 제단 아래에 펼쳐진 주택과 공장 지대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건 하나님의 역사지 사람의 역사가 아니다.”라며 감탄을 했습니다.
그 후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어 저도 아이들과 함께 입주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덕소신앙촌은 별천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한강 줄기를 따라 지어진 2층 양옥과 웅장한 제단, 드넓은 공장 지대는 푸른 나무와 함께 갖가지 꽃에 둘러싸여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언젠가 제가 원자재를 납품하는 외부 인사들에게 덕소신앙촌을 구경시켜 주었더니, 그들은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저는 신앙촌 물건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하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고객의 아이를 보면 “참 복스럽게 생겼구나.”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말 한마디를 해도 그 집에 복이 되는 말을 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 귀한 은혜를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웃으며 다녔습니다. 메리야스 한 장을 팔아도, 양말 한 켤레를 팔아도 신앙촌 물건을 통해 고객이 은혜를 받는 것이기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비조합에게 어디를 가든 반듯하게 행동해야 한다시며 예의 바르고 친절한 태도를 가르쳐 주셨고, 그 말씀을 실천한 우리들은 ‘신앙촌 소비조합은 참 바르고 친절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1971년 기장신앙촌으로 내려와 여러 공장의 원자재 구매를 담당하게 되었고, 한창 수출을 하던 때에는 수출품의 원자재를 구매했습니다. 가장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다니는 동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1975년부터 서울의 신앙촌 제품 판매장에서 20년 동안 일했던 저는, 1995년 기장신앙촌에 다시 내려와 1997년부터 소비조합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구매나 판매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면서 소비조합원이 항상 부러웠습니다. 소비조합원은 하나님 은혜를 전하는 일의 최전선에 서서 사람들에게 신앙촌 물건을 판매하며 언제나 기쁘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소비조합장을 맡아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특히 제가 그 자리를 맡았을 때는 생명물두부가 막 출시된 시기여서 소비조합원들은 더욱 부지런히 다니며 두부의 판로를 마련했습니다. 신앙촌 제품을 믿고 찾으시는 고객들은 생명물두부 또한 즐겨 찾으셨고, 그런 모습을 보며 소비조합원들은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40년 동안 일을 계속해 온 저는 올해 4월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동안 해 온 일이 모두 감사하지만 특히 신앙촌 소비조합장을 맡아 일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많이 기도하고 노력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촌의 오랜 고객들이 소비조합원을 칭찬하고 위해 주는 모습을 종종 보면서, 소비조합원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바르고 진실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소비조합원들이 생명물두부를 차에 싣고 활기차게 출발하는 모습을 볼 때면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신앙촌에서 살아왔습니다. 신앙촌에서 사는 동안 뵈었던 하나님은 언제나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셨습니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의식주 또한 풍족하게 해 주셨던 하나님.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부터 신앙촌에서 살아온 저는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은혜를 더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유일한 고민거리였습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주신 기도문을 되뇌어 봅니다.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와 미소를 주시옵소서.’ 그 속에 담긴 축복을 온전히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언제나 받을 줄만 알았지 간직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제 모습이 보입니다. 못난 가지가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이제는 좀 더 장성한 가지가 되어 날마다 깨끗하고 성결하게 살아갈 것을 소망해 봅니다. 귀한 일 속에 살면서 구원만을 바라보고 힘차게 전진하는 것. 오늘도 내일도 꼭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