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짓지 말라 하신 말씀을 새기며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어”
<신앙체험기 515회> 충무교회 정봉남 권사 2편돌아가신 어머니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리고 생명물을 묻힌 수건으로
몸과 얼굴을 닦아드리니 어두웠던 얼굴이 환하게 피어
70세 노인이 30대처럼 보여 주변에서도 무척 놀라워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두 달간 의식이 없었는데
관장님이 병실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크림을 가슴에 발라주시니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와
귀한 은혜로 지켜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려
(지난 호에 이어)
얼마 뒤 저는 친한 언니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질 일이 있었습니다. 언니네 가족은 손님인 저를 극진히 대접해 주었고, 방 안쪽의 가장 따뜻한 아랫목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잠이 든 시각, 갑자기 귓가에 “빨리 나와라!”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잠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또다시 귓가에 “봉남아! 빨리 나와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음성은 박태선 장로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는데 이상하게 속이 너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습니다. 급히 방 밖으로 뛰쳐나가 화장실에 가서 속에 든 것을 모두 토해낸 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자다 말고 뛰쳐나가는 저를 이상하게 여긴 언니네 가족들이 마당에 쓰러져있는 저를 발견해 응급조치를 취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궁이와 가장 가까운 방 안쪽에서부터 연탄가스가 새어 나와 제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이었고, 박 장로님의 음성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뛰쳐나가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니네 가족들도 그날 저를 따라 나오는 바람에 모두가 살 수 있었다며, 제게 미안하고 고맙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살아난 저는 표현할 길 없는 감사한 마음에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후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개업한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교회에 가지 못했고, 서른 살에 결혼해 서울 동숭동에 살게 되었습니다. 한참 동안 교회에 가지 못하면서 마음 한켠에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결혼 후에 그러한 마음이 더욱 커져서 다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마음으로 집과 가까운 종로 갑구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고, 연희동에 조그만 가게를 얻어 소비조합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앙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특히 간장과 이불은 단골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던 인기 제품이었습니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신앙촌 제품이 제일 좋다”며 만족해하셨고, 그 반응에 저도 덩달아 기쁘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재미있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가게 앞을 자주 지나던 외국인들이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와 신앙촌 밍크 담요를 구매해 갔는데, 그 뒤로 입소문이 났는지 흰색이나 연분홍색 밍크 담요를 찾는 외국인 손님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담요를 안고 나가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저는 동숭동에서 살면서부터 친정어머니를 모셨는데, 어머니는 평소 입버릇처럼 관세음보살을 찾으시던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어머니, 이제는 관세음보살 대신 하나님을 찾아보시면 어때요?” 하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알겠다”고 하시며 그 뒤로는 늘 하나님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께서 1975년, 7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관장님께 어머니의 입관 예배를 부탁드렸고, 장례반 권사님들이 오셔서 어머니의 입관 준비를 도와주셨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권사님들은 어머니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리고, 생명물을 묻힌 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정성껏 닦아주셨습니다. 저를 포함한 나머지 교인들은 어머니의 관 앞에서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드리다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보니 얼굴이 환하게 피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두웠던 얼굴색이 밝아지고, 깊게 패인 주름도 사라져서 70세 어머니의 얼굴이 30대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함께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 역시 한목소리로 “어머니 얼굴이 정말 젊어지셨다”고 놀라워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다시 한번 시신이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도 어질고 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권유로 가끔 주일 예배를 드리러 천부교회에도 가고, 절기 때에는 신앙촌에 가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 설교 말씀을 듣고 온 날에는 본인이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지 “그분은 아주 귀하신 분이다. 보통 분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남편의 장례도 천부교식으로 할 수 있었는데, 입관 예배에 많이 갔었던 저 역시 놀랄 정도로 시신이 잘 피어났습니다. 굳었던 몸의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여지고, 얼굴도 뽀얗게 피어 곤히 잠든 듯 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너무나 환하고 편안해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신기하다면서 너도나도 남편을 보러 몰려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생명물의 귀한 권능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가족들에게 많은 은혜를 허락해 주셨음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뒤 충무 천부교회로 소속을 옮겨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너무나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22년 8월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고 두 달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사경을 헤매던 저는 꿈을 꿨는데 잎사귀가 무성하고 아주 커다란 나무 아래 제가 누워있는 꿈이었습니다. 그때 나무 꼭대기에서 시원한 물이 아래로 쏟아져 내리면서 제가 고스란히 그 물을 맞게 되었습니다. 물이 계속 저한테 쏟아지는데 어찌나 시원하던지 뼛속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거웠던 몸이 점점 가벼워짐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제 목소리가 들리시면 눈을 깜빡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눈을 깜빡였고 그 순간 중환자실에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왔고, 제가 의식이 돌아왔는지 확인한 의료진은 깜짝 놀라면서 기적같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날 병원에서 저의 임종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고 관장님과 교인들이 함께 병원에 오신 거였습니다. 중환자실은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어서 교인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관장님만 들어가셔서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관장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크림을 제 가슴에 바르고, 제 귀에 이어폰을 꽂아서 하나님 찬송을 들려주신 뒤 한참을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관장님은 누워있는 저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을 떠보라고 여러 차례 말을 거셨는데, 제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뜬 것이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밖에서 기다리던 교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교인들은 관장님께서 병실 밖으로 나오시자 마자 ‘아! 정봉남 권사님 살겠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관장님의 얼굴이 하나님께 안찰 받은 사람처럼 너무나 뽀얗고 환하게 피어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사일생의 고비를 넘긴 저는 지금도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니 ‘그동안 하나님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슬 같은 은혜를 한없이 부어주시며 의롭게 사는 법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 그 은혜를 입은 저는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바르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눈과 마음, 생각으로도 죄짓지 말라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말과 행동에 그릇됨이 없도록 노력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요즘 저는 찬송가 269장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을 떠올립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하는 찬송가 가사처럼 평생토록 귀한 은혜로 지켜주신 하나님께 오늘도 두 손 모아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귀한 길로 불러주시어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품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봉남 권사/충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