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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갖다

최순환 권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74

그 후 10월에 저는 칠촌 아저씨네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온 후에도 박 장로님의 집회 소식이 항상 궁금했는데, 12월 어느 날 원효로 박 장로님 댁에 예배실이 있으며 거기서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3시에 예배를 드린다고 했는데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저는 반가운 마음에 그길로 원효로를 찾아갔습니다. 박 장로님 댁의 뒷마당에는 기다란 예배실이 지어져 있었으며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원효로전도관’이라고 불리는 그곳에 다니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빠짐없이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원효로제단의 새벽예배는 보통 오전 9시나 10시가 넘을 때까지 계속되곤 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는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한 구절을 읽으신 후 감람나무가 나타나 어떤 역사를 펼치게 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치 징검다리를 놓듯이 한 단계씩 매듭을 지어 가르치시며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존재’라 하실 때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이슬비같이 은혜가 내리고 향취 은혜를 체험했던 것을 떠올리며 박태선 장로님께서 바로 감람나무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 장로님의 집회에서 “내가 하나님이야.” 하시던 부드러운 음성이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박태선 장로님은 하나님의 권능을 맡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보시던 할머니는 호세아서의 감람나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목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질문했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하다가 감람나무는 이슬같은 성신을
내리시는 존재로 한국 땅에 나타나게 돼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며 “이제야 답답함을 풀었다”고 크게 기뻐해

아저씨 댁의 할머니는 감리교인으로 연세가 높으신 탓에 교회에 자주 나가지는 못하셨지만 매일 집에서 드리는 새벽예배만큼은 하루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으시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셨는데 특히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성경에 보면 감람나무가 뛰어난 존재인 것 같다고 하시며 언제 어디서 나타나실 것인지 궁금하여 목사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질문해 봤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전도관에 다니면서 할머니가 그렇게 궁금해하시던 감람나무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었지만 매일 새벽예배에 다니고 일주일에 사흘씩은 제단에서 철야를 하느라 할머니를 뵐 시간이 없어서 미처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전도관에 가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항상 집에서만 생활하고 밖에 나갈 줄 모르던 제가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며 제단에서 철야까지 하게 되자 할머니는 전도관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당시는 청암동에 이만제단이 세워졌을 때여서 저는 할머니를 모시고 이만제단으로 갔습니다. 할머니는 한강변에 우뚝 세워진 웅장한 제단 건물과 수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시더니 집에 돌아오신 후에는 전도관의 전도사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동네인 돈암동에 전도관을 짓고 계시는 전도사님(한형만 전도사)을 모셔 오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전도사님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신 후 그동안 궁금했던 감람나무에 대하여 조목조목 물어봤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답답함을 풀었구나.” 하시며 박태선 장로님이 한국 땅에 나타나신 감람나무이심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전도사님은 성경 호세아서에 기록된 대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가 감람나무’라고 하시며 박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신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체험한 사실임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감람나무에 대해 알게 되신 후로 할머니는 감리교회에 발길을 끊으셨으며 자주 찾아오던 교인들과 장로들에게 본인은 이제 전도관 교인이니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칠촌 아저씨와 부산에서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던 언니까지 전도관에 관심을 보이며 이만제단에 나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식구들이 모두 전도되어 이만제단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의로운 일을 하면서
죄에서 벗어나
의로워지고 싶다는 소망이
제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아저씨가 숨을 거두시게 되어 전도관식으로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돈암동제단에는 전도사 수강을 받으시는 예비 전도사들이 여러 분 계셨는데, 그분들과 교인들이 오셔서 생명물로 시신을 씻어서 입관한 후 발인과 하관까지 주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장지로 떠나기 전에 상여를 마당에 두고 발인예배를 드리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 주위로 안개같이 뽀얀 것이 자욱하게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안개가 전혀 끼지 않은 맑은 날씨였는데 상여와 그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단에서 예배드릴 때 이슬은혜를 받았던 것이 떠올라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할머니가 얼마간 앓으시다가 운명하셨는데 예비 전도사 분들이 집에 오셔서 찬송을 부르는 동안 편안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할머니는 평생 동안 감리교회에 다니신 분이었으나 돌아가시기 전에 감람나무를 깨닫고 전도관 교인이 되셨으며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생명물로 씻은 후 곱게 피어서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가 큰 복을 받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1957년 10월에 하나님께서 경기도 부천에 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신앙촌은 자유율법을 지키는 곳이 될 것이며 앞으로 첫째 울타리와 둘째 울타리를 거쳐 셋째 울타리까지 건설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신앙촌 건설을 위해 건설대 지원자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지원을 했습니다. 다음 날 신앙촌으로 출발하기 위해 건설대원들이 이만제단에 모였을 때 저는 의로운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뵙기 전에 앞날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막막했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한 치 앞도 모르는 깜깜한 세상을 살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시고 길을 보여 주시니 이보다 더 고맙고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로운 일을 하면서 죄에서 벗어나 의로워지고 싶다는 소망이 제 마음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최순환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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