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말씀
신앙체험기
기획
특집
피플&스토리
오피니언
주니어

죄 짓지 말고 그 세계 같이 가자 하시던 그리운 하나님

발행일 발행호수 2614

이단우 권사/기장신앙촌

1958년 6월에는 현재 소사 천부교회가 위치해 있는 노구산 정상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노구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인파로 산이 온통 뒤덮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예배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산 전체에 울려 퍼졌고, 은혜를 받기 위해 집회장에 온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듬해 저는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군복무를 하며 신앙을 잃고 교회와 멀어진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군 생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나쁜 생각이 들어올까봐 하나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려 노력했고,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간절했던 그때의 기도 덕분인지 별탈 없이 무사히 제대한 저는 1961년 11월에 신앙촌에 다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양말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마침 양말 공장은 면양말을 생산하여 군에 납품해야했기 때문에 공장을 쉴 새 없이 가동해야 할 정도로 무척 바빴습니다. 현장에 바로 투입된 저는 다림질 기술을 배워 면을 반듯하게 다리는 일을 맡았는데, 공장에서 일하던 다른 기술자와 선의의 경쟁을 하며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덕소에 제2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다시 한 번 건설대로 자원하여 1962년 7월 덕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덕소에 도착해보니 하나님께서 건설대원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한 명 한 명 안찰해주셨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안찰을 받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보시며 “절대로 죄 짓지 마세요!” 하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단호하면서도 따뜻하신 하나님의 음성은 앞으로 티끌만한 죄도 짓지 않겠다고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작업현장에 나가보니 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건설대원들은 모래와 다른 재료들을 섞어 가로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블록을 만들어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습니다. 또 시멘트와 자갈을 섞어 콘크리트도 직접 만들었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자갈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직접 호스를 들고 물로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몸소 현장에 나와 진두지휘하시며 저희와 함께하시니 건설대원들이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1970년대 기장신앙촌 발전실에서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이단우 권사(왼쪽에서 다섯번째)

덕소신앙촌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저는 전기·용접기술자들과 함께 제강공장 발전실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는데, 첫 근무를 마친 저와 동료들은 숙소로 돌아와 가장 가까운 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따뜻한 방에 누워 피로를 녹이며 달게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방은 아직 보일러가 연결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추위는커녕 간밤에 따뜻하게 잘 자고 일어난 저와 동료들은 어리둥절했지만 곧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함께해주셨음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1968년 아버지께서 82세의 일기로 덕소신앙촌에서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작고 소식에 덕소 장례반 권사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권사님들은 생명물을 수건에 묻혀 아버지를 깨끗이 닦아드리고, 숟가락으로 생명물을 떠서 아버지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아무것도 넘길 수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생명물이 계속 아버지 목으로 넘어가는 것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뻣뻣하게 굳어 경직되어 있던 아버지의 팔, 다리가 부드럽게 잘 움직여지는 것이었습니다. 정성껏 찬송을 부르며 입관예배를 마치고 나니 아버지의 얼굴은 환하게 피어 혈색이 돌고 미소가 감도는 듯 했습니다. 저는 생명물로 시신이 핀 모습을 자세히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돌아가신 분 같지 않고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 같은 모습을 보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1970년도에는 세 번째 은혜의 울타리 기장신앙촌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장 신앙촌은 주변에 하천이 흐르고, 땅이 질어서 흙을 깊이 파내야만 단단한 지반이 드러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파내야하는 진흙의 깊이가 거의 건물 2~3층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진흙을 퍼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에도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면 피곤함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힘이 솟아나서 힘든 줄 모르고 일했습니다.

많은 은혜와 놀라운 권능을 계속 체험하다보니, 1981년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실 때 ‘역시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동안 박태선 장로님께서 신비한 하늘의 권능을 보여주셨던 것이 모두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에게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려고, 초창기부터 그 많은 희생을 하시며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떠올리며 그날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신앙촌 발전실, 장유공장 등 여러 부서를 거쳐 현재는 전기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있는 신앙촌에 살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늘 기쁘고 감사한 일이기에, 허락되는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귀한 은혜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 3월에 신앙촌에서 함께 동고동락해온 강신주 권사님이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렸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그동안 시신이 피는 모습을 많이 봤어도 그 분처럼 잘 피신 분은 처음 봤습니다. 얼굴은 뽀얗게 피어났고, 남자분임에도 불구하고 입술이 화장품을 바른 것처럼 붉은 빛을 띠어 혈색이 감돌았습니다. 살아생전보다 더욱 환하고 젊어 보이는 고인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권능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이 곳 신앙촌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계십니다. 밤하늘을 밝히는 선명한 빛줄기를 볼 때마다 건설대원으로 일하던 당시 ‘절대로 죄 짓지 말고, 그 세계 같이 가자.’ 하시던 부드러운 음성이 떠오릅니다. 감람나무 가지들이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던 하나님. 언제나 인자한 웃음으로 저희를 바라보시던 하나님을 떠올리며, 그날에 미소로 하나님을 뵐 수 있도록 귀한 은혜의 울타리 안에서 맑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