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말씀
신앙체험기
기획
특집
피플&스토리
오피니언
주니어

종교의 진화(進化)

발행일 발행호수 2567

만약 누군가 강의에서 “특정 종교는 신(神)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라고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종교 신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종교에게 바라는 것은 구원이며 종교를 믿는 것은 절대적인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 같은 종교의 핵심이 없다면 왜 우리가 믿겠냐며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 대학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교수가 강의와 저서에서 “불교에는 신도 구원도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 항의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불교계 신문은 저자가 불교의 핵심을 다루며 논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극찬했다.

그들 말처럼 신도 없고 구원도 없다면 1,500년 동안 불교를 통해 구원을 갈구했던 숱한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제 와서 종교의 핵심이 없다고 폭탄선언을 하면 앞으로 어쩌자는 것일까.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뒤돌아보며 웃음 짓는다.” 말하자면 신과 구원을 부정하는 파격 행보가 다른 종교들보다 진일보한 논리라는 것이다. 종교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이 남보다 앞선 행보라니 아연할 뿐이다. 이것은 종교의 몰락인가, 종교의 진화인가.

불교와 달리 가톨릭은 신의 몸을 실제로 만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요일마다 그들이 원하는 숫자만큼 신의 몸을 만들어 내고, 또 그들이 준비한 유리잔 숫자만큼 신의 피를 채워 신도들의 입에 넣어 주고 있다. 소위 성체성사라는 것이다.

평범한 밀떡과 포도주를 사제가 축성하면 예수의 몸과 피가 되고 이것을 ‘성(聖)변화’라 부른다. 이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밀떡과 포도주를 주며 ‘내 살과 피’라고 선언한 이래로 확고부동한 가톨릭의 핵심이다. 400년 전 갈릴레이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미신이라 역설했고, 지성인들이 야만인보다 저급한 행위라고 조롱했지만 여전히 가톨릭은 밀떡으로 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예수를 입으로 받아먹는 성체성사는 구원의 필수 코스인 7성사 중에서도 핵심이다. 실제로 밀가루 떡이 예수가 되는지는 입증할 수도 없고 입증할 필요도 없다. 신도들이 밀떡을 먹을 때 예수를 먹는다고 믿으면 그것으로 구원의 조건은 완성된다. 신을 만들어 내고 구원을 준다는 가톨릭은 2,000년간 존속해 왔다. 그 종교의 신과 구원의 증거를 깊이 의심했던 많은 선각자 중에 테레사 수녀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있었다.

테레사 수녀가 예수에게 간구한 것은 신이 함께한다는 확증이었다. 그녀는 진실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테레사는 끔찍한 내면의 어둠 속에서 신이 없다고 절규했다.

그녀는 종종 밀떡을 보관하는 장소(감실)를 뚫어지게 바라봤는데 사람들은 테레사가 신과 교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후에 밝혀진 편지에 의하면 테레사는 신에게 기도하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편지에서 그녀는 지푸라기만 한 구원의 확신도 없이 지옥에서 산다고 고백했다. 죽을 때까지 신의 임재(臨在)를 갈구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철저한 신의 부재(不在)였다.

생전에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을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각자의 종교를 더 열심히 믿으라 권유했다. 자신이 한평생 매달려 왔지만 끝내 응답 없는 신을 남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은 죽은 그녀에게 성인(聖人) 칭호를 붙여 주고 세상을 현혹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맡겼다. 가련한 그녀는 살아서는 응답 없는 신을 거부하지 못했고 죽어서는 성인의 가면을 거부하지 못했다.

반면에 박차고 벗어던진 사람도 있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였다. 소아성애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고위 성직자의 권력 투쟁 등 뿌리 깊은 부패를 바로잡아 보려던 베네딕토는 결국 좌절하고 교황직을 내던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거친 파도와 바람에 직면한 순간, 신이 주무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

테레사의 기도에 무응답이었던 신은 교황의 기도마저 외면했다. 그러나 신과 연락이 두절되어도 가톨릭은 염려할 것 없다. 매주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 신의 몸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가톨릭이 저지른 학살과 성범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가톨릭을 나무에 비유하며 이렇게 악한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를 신이 심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가톨릭이라는 나무를 실제로 신이 심었을지도 모른다. 숱한 생명을 앗아가는 피에 굶주린 신, 난잡한 성의 세계로 이끄는 신, 그래서 선하고 진실한 간구에는 대답할 수 없는 신. 그 신이 함께하는 종교의 미래는 몰락일까, 진화일까.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