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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하는 마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김영옥 권사/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92

김영옥 권사

저는 1936년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농사를 크게 짓는 부농이라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해방 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 지주들을 핍박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공산당원들이 날마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 억지로 사상 교육을 시키며 하루라도 빠진 사람이 있으면 당장 불러다 자아 비판을 하도록 강요하던 모습입니다. 강압적인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산당의 눈을 피해 이남에 먼저 내려가신 후로 연락이 끊겼고, 저와 어머니는 1948년 3․8선을 넘어 어렵게 서울로 내려왔습니다. 공산당 치하에서 벗어나 잠시 숨통이 트인 듯 했지만, 몇 년 후 6․25 전쟁이 일어나 또다시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피난을 가다 보면 쌕쌕이라 불리는 전투기가 떠서 사람들을 향해 폭격을 퍼부었는데,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서도 저와 어머니는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후 지친 몸을 쉬기 위해 근처에 있는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더니 집주인이 무척 놀라면서 ‘저 폭격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느냐, 당신네들은 하나님이 도와주셨다’고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피난하는 동안 몹시 쇠약해졌던 어머니는 외갓집이 있는 인천에 정착한 후에 끝내 숨을 거두셨고 그때부터 저는 외가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그러던 1955년 3월이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작은 외삼촌이 서울 남산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다녀오셨는데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남산 부흥집회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나와서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그 시간에 불치병자들은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며 환호를 올리고 외삼촌은 세상에서 못 맡아 본 좋은 향기가 진동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외삼촌은 그 좋은 향기가 하늘의 향기이고 은혜라며 박 장로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그런 은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이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하여 외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아침마다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1955년 9월,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에 모인 수많은 군중.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9월이 됐을 때 인천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셔서 집회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꼭 한번 참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집회 장소는 동산중학교 운동장이었는데 그곳은 보통 학교 운동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어서 당시 인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외삼촌을 따라 동산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해보니 수십 개 연결된 천막 아래 모인 사람들로 빼곡하게 들어차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날 비가 많이 와서 밑에 깔아 놓은 가마니가 푹 젖어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보였습니다.

저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예배를 드렸는데 박 장로님께서 우렁찬 목소리로 찬송을 인도하시니 사람들도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뜨거운 열기에 저도 동화되어 큰소리로 찬송하며 손뼉을 치던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말로 다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맡아져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무리 봐도 비를 맞아 머리와 옷이 젖은 사람들과 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 그리고 축축해진 가마니뿐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쿠린내나 쉰내가 나면 낫지 결코 좋은 냄새가 날 리 없는데 어찌된 일인지 너무나 좋은 향기가 점점 코에다 들이붓는 것처럼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일 향이나 꽃 내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그 향기는 이 세상에서 맡아 보지 못한 진귀한 향기였습니다. 외삼촌이 남산집회에서 맡았다는 향기, 하늘의 향기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며 ‘그럼 나도 은혜를 받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찬송하시던 박 장로님께서 큰 소리로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습니다. 들것에 실려와 신음하며 누워 있던 환자들도 어느새 일어나 병이 나았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벙어리가 말을 합니다!”하는 큰 소리가 들리자 하나님께서는 그 벙어리를 단상으로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젊은 여자 분이 단상에 오르자, 하나님께서 마이크를 그분 앞에 대 주시며 말을 해 보라 하셨습니다.

이제 막 말문이 트여서인지 그분이 하는 말은 어물어물 잘 들리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하게 하시며 ‘하나님’이란 말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드디어 그분이 ‘하-나-님’을 외치는 순간, 스피커를 통해 그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고, 집회장에 가득 모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올리며 집회장이 떠나가라 손뼉을 쳤습니다.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외삼촌이 말하던 은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일을 하시는 박 장로님께서는 보통 분이 아니신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천집회가 끝날 때까지 참석한 후 저는 박태선 장로님이 세우신 ‘전도관’이
인천 전동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곳은 짠지 공장 2층에 예배실을 마련한 곳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박 장로님께서 인천전도관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실 때 예배실 가득히 안개같이 뽀얀 것이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쾅 하고 내리치실 때마다 단상에서 뽀얀 것이 퍼져 나와 예배실 가득히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왜 그렇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지 가슴에서 기쁨이 넘쳐 흐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 같은 은혜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저한테도 은혜를 주십니까!’ 하며 감사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고, 내 마음에 넘치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만나는 사람마다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해 주며 전도관에 같이 가자고 권유하게 됐는데 원래 말수가 별로 없는 제가 그렇게 전도를 하게 되다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순간에 어김없이 향취가 맡아졌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전도관 같이 가보자고 말을 꺼내는 순간 강한 향취가 진동하니, 하나님께서 내가 건네는 말을 듣고 계시며 전도하려는 마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회장에 비 맞은 사람, 병자들, 푹 젖은 가마니밖에 없는데 악취는 커녕 기막힌 향기가 진동
하나님 인도하시는 예배시간에 뽀얀 이슬같은 은혜 퍼져나와 감사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어
이 귀한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마음먹으니 말씀 전하는 순간마다 향취가 맡아져

그 후 1957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는 신앙촌에 들어가 메리야스 공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한참 일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안수를 해주셨는데, 안수를 받고 나면 몸도 가뿐하고,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서 다들 신나게 찬송을 부르며 일을 했습니다.

이후 덕소신앙촌 메리야스 공장을 거쳐 1970년에 기장신앙촌 건설을 위해 부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소사와 덕소에서부터 일해 온 건설대원뿐 아니라 생산 부서에서도 건설대를 뽑았는데 제가 뽑혀서 기장으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척척 일을 해나가는 건설대원들과 달리 저를 포함한 공장 출신 신입대원들은 생전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서툴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저희들의 사정을 이미 다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공장 출신 대원들이 모래를 나를 때마다 질통을 들어주시며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희들은 기쁜 마음에 힘이 나서 훨훨 나는 듯이 다녔습니다.

기장신앙촌이 완공된 후 저는 메리야스 부서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잡념 없이 맑은 생각으로 찬송을 부르며 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는데, 같이 일했던 후배들이 “언니가 화장실도 안 가고 일을 해서 우리도 덩달아 열심히 했다.”고 그때를 기억해서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정체에 대해서 낱낱이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가 부활한 후에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는 이야기, 썩어지는 피로 영원한 구원을 준다고 하는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진리인 줄 알고 있는 예수의 이야기들이 결국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1년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는 초창기부터 받았던 은혜를 떠올리며 ‘그래 하늘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 하며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기장신앙촌 메리야스 공장에서 30여 년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한 저는 신앙촌 양로원에서 5년 동안 어르신들을 돌본 후 지금은 은퇴해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마다 제가 어떻게 이 복된 땅에서 평생을 살 수 있었는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오늘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찬송가 310장을 불러 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구원을 모르고 살아가던 저를 부르셔서 저 높은 곳을 향하게 하신 크신 사랑과 은혜에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하나님 뜻하시는 대로 맑게 살아서 그날에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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