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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은 이단이 아니라 진짜 은혜가 내리는 곳임을 깨달아

김종일 관장(1) / 구리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33

저는 1940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습니다. 경상북도 포항이 고향이신 부친은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주물 공장의 기술자로 근무하셨으며 일본에서 결혼하여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 후 1944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저희 가족은 포항에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여덟 살 때는 두 살 난 여동생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몹시 슬펐던 저는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남을 살리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하고 마음먹게 되었으며, 자라는 동안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유했던 저희 집이 6.25 전쟁을 겪으며 가세가 기울어 시골의 중학교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고, 저는 원하는 대로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우울해지고 절망감을 느끼는 때가 많았습니다. 사춘기의 예민한 감성으로 막막한 앞날을 고민하며 밤을 새우다 보니 얼마 후에는 불면증에 걸려서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데다 밥맛이 없어지고 몸이 앙상하게 말라서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셨습니다.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신경쇠약이라며 마음을 편안히 가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생각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으면 어둡고 우울한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장차 목사가 될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성경 고등학교에 다니면 성경을 배울 수 있고 학비도 적게 든다고 하여 저는 중학교 졸업 후 경주 시내의 성경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공군 훈련소에서 밤마다 성경을 읽자
전도관에 다닌다는 동기생이 다가와
전도관에서 들었다고 하면서
이사야 41장과 호세아 14장을 명쾌하게 설명

당시 경주 성경 고등학교 옆에는 ‘경주전도관’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종종 “전도관은 이단이다. 갖은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곳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저는 전도관 앞을 지날 때면 ‘저기가 목사님이 말하던 이단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저는 궁리 끝에 ‘군대에서 힘든 훈련을 받으면 잠이 올 것이다.’ 생각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공군에 자원했습니다. 대전 공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으며 매일 저녁마다 성경을 읽었는데, 어느 날 동기생 한 명이 다가와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 동기생은 전도관에 다닌다면서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단이 성경을 보겠나?’ 하고 생각했지만, 동기생은 전도관에서 들었다고 하면서 이사야 41장과 호세아 14장 등의 구절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어느새 ‘전도관에서는 성경을 참으로 세세하고 명확하게 풀어 주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다 군대에서 힘든 훈련 받으면 잠이 올 거란 생각에 자원
그래도 낫지않는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안찰을 받은 후 숙면 취하며 건강해져

그 후 김해 공군 기술학교에서 특기 교육을 받을 때 그 동기생을 따라 가끔씩 김해전도관에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목사의 이야기가 떠올라 ‘내가 이단에 빠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나 전도관에서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성경을 새롭게 깨우치면서 성경상의 ‘동방의 일인’과 ‘감람나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김해 공군 기술학교의 하사관 한 분이 전도관에 다니고 있어서 그분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전도관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하사관은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사는 ‘소사신앙촌’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신앙촌에 직접 가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얼마 후 휴가를 받아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소사신앙촌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 입구에 도착한 저는 권사님 한 분의 안내를 받아 신앙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신앙촌을 둘러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신사 분이 저희가 있는 방향으로 오고 계셨는데, 저를 안내하던 권사님이 “저기 장로님께서 오시네요.”라고 했습니다. 우연히도 박태선 장로님을 직접 뵙게 된 것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제가 군인이며 신앙촌에 처음 왔다는 것을 권사님에게 들으시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어느 부대에서 왔습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김해 공군 기술학교에서 왔습니다.” 하고 말씀드리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순간 아주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향기가 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지?’ 하며 의아했습니다. 신앙촌을 둘러본 후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을 때도 웬일인지 그 향기가 굉장히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저는 신앙촌에서 뵈었던 박 장로님의 온화하신 모습이 인상 깊었으며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을 직접 들어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서울 공군 사관학교에 배속을 받았는데 제가 맡은 보직이 유류 관리여서 인천의 유류 저장소로 자주 출장을 다녔습니다. ‘어떻게 하면 소사신앙촌에 가서 박 장로님을 뵐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저는 출장 중에 여유 시간을 활용해 소사신앙촌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제가 간 날 박 장로님께서 신앙촌 주민들에게 안찰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전부터 ‘안찰을 받으면 은혜 체험을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저는 직접 안찰을 받아 보고 싶어서 주민들 틈에 줄을 서서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을 처음 방문하여 둘러보다가 우연히 만나 뵙게 된 하나님
잠시 말씀을 드리는데 순간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해
소사신앙촌 주일예배때도 같은 냄새를 맡고, 주시는 은혜임을 깨달아

박 장로님께서 제 눈에 가볍게 손을 얹으시는 순간 왜 그렇게 아픈지 눈알이 빠지는 것 같았으며, 배를 안찰하실 때는 배 위에 살짝 손을 대실 뿐인데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셔서 내 속의 죄를 소멸하시며 죄가 성신에 대항할 때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기회가 될 때마다 안찰을 받았는데, 안찰을 받을수록 통증이 점점 덜해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안찰을 받고 나면 온몸이 시원하고 가벼워서 마치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서너 번 받은 뒤로 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4년이 넘도록 불면증으로 고생하면서 입대한 뒤에도 좀처럼 낫지 않았는데, 안찰을 받은 뒤부터 놀랍게도 아주 달게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저를 괴롭혀 왔던 불면증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뿐 아니라 깊은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면 온몸이 상쾌하여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또한 혈색이 좋지 못했던 제가 이전과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혈색이 좋아지고 얼굴이 활짝 피어서 거울을 볼 때마다 저 스스로 놀랄 정도였습니다. 마치 새사람이 된 것처럼 건강해져서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사신앙촌의 주일예배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르는 중에 아주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진하게 맡아지는데, 그것은 제가 신앙촌에서 처음으로 박 장로님을 뵈었을 때 맡았던 바로 그 향기였습니다. 저는 다른 교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맡은 향기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알게 되었으며 ‘장로교회에서는 이런 은혜를 전혀 들어 보지 못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로교회에 다닐 때 목사가 ‘전도관은 갖가지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이라고 했으나, 제가 직접 은혜를 받고 보니 ‘전도관은 사람들을 속이는 곳이 아니라 진짜로 은혜가 내리는 곳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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