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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제단(9) 특전대④

서울을 비롯해 전국 지방 전도관에도 조직돼
발행일 발행호수 2078

특전대는 서울과 지방에서 기성교회 목사들과 진리토론을 하며 그들의 코를 눌러주고 하나님의 순회일정에 맞추어 노방전도와 영화상영을 하였을 뿐 아니라 교회 안내 일도 도맡아서 하였다. 이만제단에서 처음 조직되었던 특전대는 각 지방 전도관에도 모두 조직되어 체계적인 전도활동에 매진하였다.

“그때 이만 제단에 가려면 영등포에서 전차를 타고 노량진까지 가서 한강의 고무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고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만제단에 가는 사람들로, 모두가 찬송을 부르며 뛰어서 다리를 건넜습니다. 빨리 가서 앞자리에 앉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제단 근처에 다다르면 특전대들이 제단으로 올라가는 길의 왼쪽에 일렬로 늘어서서 북을 치며 힘차게 찬송을 부르고, 교인들은 오른쪽에 두 줄로 서서 제단을 향해 올라가면서 특전대들을 따라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만 제단으로 올라가는 길은 비탈져 있었기 때문에 안내원들은 연세 많으신 분들을 부축하여 모셔다 앞자리에 앉혀드렸습니다. 참으로 힘차고 정겨운 광경이었습니다.” 김정수 권사(65세. 기장신앙촌)

“그러던 중 그해 11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보기 힘들던 밴드부가 힘차게 찬송을 연주하며 우리 마을을 행진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밴드부가 특전대이며 강릉전도관의 교인들도 함께 왔다고 하였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지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거리에 몰려 나가 그들을 구경했습니다.

그날 수요일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이 “오늘 전도관에서 온 사람들이 영화를 보여 주는데 그 영화를 절대 보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는 전도관 사람들이 설마 나쁜 것을 보여 주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반사 네 명과 같이 영화를 보여 주는 전옥희 권사님 댁 뒷마당으로 갔습니다. 저희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넓은 마당이 꽉 찰 정도였습니다. 상영을 시작하고 시간이 꽤 지났는지 전도관의 여러 활동이 화면에 나오더니 영화는 금방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일행과 함께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다음 날에는 전옥희 권사님 댁에 스피커를 달고 음악종을 틀어 놓아 찬송 소리가 온 마을에 잔잔히 울려 퍼졌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어찌나 좋은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들려오는 찬송가를 따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전 권사님이, 그 영화를 한 번 더 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저는 전 권사님 댁에 가서 영화를 한 번 더 보았습니다. 영화에는 전날 보지 못했던 박태선 장로님의 설교 장면이 나왔는데, 저는 박 장로님께서 책받침을 들어 내리치시며 힘차게 설교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전 권사님 댁에는 강릉전도관의 교인 몇 분이 와 계셨는데, 영화를 보고 돌아가려는 저에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습니다. 그분들은 나이가 적은 저를 정중하게 대해 주었으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진실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분들 말씀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분들 중 한 분이 ‘주여! 하는 한마디로 구원 얻을 줄 아십니까?’ 하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가 ‘그럼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되물었더니, 그분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이슬성신을 받아 죄를 씻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을 때 주여 하고 부르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고 생각해 왔는데, 그분들은 구원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얻는 방법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그분들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인숙 집사(67세. 기장신앙촌)

“이만제단 그 길이 쫙 오르막길이에요. 맨 밑에서 제단까지는 걸어가면 한참 가야 되는데 그 양 옆으로 줄을 서서는 애기업은 사람이나 노인분들은 밀어올려 드려요. 그리고는 아래로 막 뛰어 내려오는 거예요. 그게 얼나마 신났는지 몰라요. 힘이 드는게 아니고 오히려 좋기만 했어요.그렇게 안내하다 보면 어쩔땐 ‘나는 설교 말씀도 못 들어서 어쩌나’ 이랬는데 향취가 나더라고요. 그 당시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이 모두 또래들로 친하게 지냈어요. 구제단 2층 다락방 밑에 특전대실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우리끼리 노래도 만들어 부르곤 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노방전도 할 때 저는 알토를 하고 친구들은 소프라노, 메조로 나누어 부르곤 했죠. 참 신났던 기억이에요. 저희는 소비조합 일도 했어요. 당시 소사신앙촌에서 생산하는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팔았어요. 옷도 모두 밤색을 아래위로 입고, 신발까지 맞춰 신었었어요.” 윤경희 권사(63세. 서울전농교회)

“저는 전도관에 나온 지 일주일 후부터 반사 일을 도와서 하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특전대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안동제단 반사는 35명 정도였는데, 그 중에서 20여 명의 남녀 청년들로 조직이 된 특전대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습니다. 특전대는 토요일마다 모여 체계 공부를 하였고, 날짜를 정해 안동제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노방 전도를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노방 전도를 나갈 때에는 북과 설교단을 가져가, 노천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예배를 드리면서 특전대들이 돌아가면서 단상에서 설교도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안동제단에서 집회를 하실 때면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북을 치고 찬송을 하면서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마음은 항상 기쁘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권옥순 관장(63세. 서울 대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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