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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소신앙촌 도매소의 추억

한복 선물을 받고 좋아했던 육영수 여사의 모습 선해
발행일 발행호수 2322

1966년 9월 5일. 김종숙 권사(맨오른쪽)가 덕소신앙촌 도매소 메리야스 부서 사람들과 즐겁게 사과를 먹고 있다. 그 옆이 임유화 권사이다.

제가 18살이던 1966년. 아래 사진은 덕소신앙촌 도매소에서 일하면서 저와 임유화(덕소교회 권사)가 한턱 낸 사과로, 메리야스 부서 언니, 동생들과 사과 파티를 하는 모습입니다.
도매소는 새벽예배가 끝나면 오전까지 물건을 사려는 소비조합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소비조합원들이 도매소에서 물건을 다 사가고 나면, 언니들은 물건값을 계산하여 사무실에 입금하고, 저는 비어있는 진열대에 다시 메리야스를 진열했습니다.

낮에는 부서에 1~2명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면 저는 공장에 올라가 메리야스를 비닐에 넣는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공장에 올라가면 원단 짜는 다이마루 기계 옆에서 보조일을 했던 전라도 아이가 있었는데, 원단에 풀린 올을 바로 잡아 마무리하는 일을 하면서 이런 노래를 불러 모든 사람의 배꼽을 잡게 했습니다. “다이마루 내 형제여. 나오시를 내지마오. 나오시를 많이 내면 시다바리 속상해요.” 소비조합원들 중에는 특이한 이름도 많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어떤 소비조합원은 이름이 ‘홍가막’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홍비둘기’라고 불러주셨습니다.

덕소신앙촌에는 귀빈이나 외국인들이 종종 방문했습니다. 외국 방문객 중에는 일본 바이어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덕소신앙촌을 둘러본 후 도매소 각 부서에도 왔었는데, 일본 사람들의 성향인지는 몰라도, 도매소에 들어오면부터 갈 때까지 계속 인사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귀빈 중에는 육영수 여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당에 나왔는데 자동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분을 보니 육영수 여사였습니다. 가까이서 뵌 육 여사의 모습은 작은 체구에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으신 단아한 모습이셨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신앙촌에 방문하신 육영수 여사께 한복을 만들어드렸는데 그것을 받고 너무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육영수 여사는 해외 순방 때도 신앙촌에서 만들어 드린 한복을 입고 가셨는데, 외국 대통령 부인들이 꽃무늬로 수놓은 아름다운 한복을 보고 감탄을 했다고 합니다.

덕소신앙촌에서의 생활은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기장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메리야스공장 재단사님께 기장신앙촌에 가서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보내달라고 했지만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직접 편지를 썼습니다. 얼마 후 책임자 분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으로 어디든 있으면 된다. 잘 있으라”고 하셨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철없는 제 모습이 너무 죄송해 한참을 울었습니다.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면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하나님 좋아하시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김종숙 권사/ 미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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