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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소신앙촌 제과부의 추억

하나님의 권능은 내 마음에 남아
발행일 발행호수 2337

1966,7년경 사고가 나기 전 덕소신앙촌 제과부 반원들과 함께 덕소신앙촌 어느 주택 앞에서. 뒷줄 맨 오른쪽이 김춘자씨.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들이 여자 잡아간다는 말이 돌 당시 우리 집으로 들어온 미군들이 언니가 숨어있는 광 문을 발로 차는 것을 보고 놀라 그때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밤이면 잠을 못 자고 엄마 아버지도 못 알아보고, 죽었는가 싶어서 밀어두면 깨어나곤 했다고 들었습니다. 오만 가지 약을 다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부모가 잘해줘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났을 때 꿈을 꾸었습니다. 그날 이후 하나님을 믿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말을 했더니 집 가까이 있는 기성교회에 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싫다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의 소개로 조치원 목화공장에서 열렸던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꿈에서 뵈었던 분이었습니다. 64장 찬송을 하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철야를 한다는데 돌아가기 싫어서 남았습니다. 다음날 안수를 해주시는데 찬송가 192장을 인도해 놓으시고 안수를 시작하셨습니다. 안수를 시작하시자 향취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저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치마를 다 적셨습니다. 한번 머리를 짚으시고 지나가셨습니다.

저는 한번만 더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찼는데 저만큼 가셨다가 이리로 다시 오셔서 두번을 더 안수 해주시고 가셨습니다. 차오르는 기쁨에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듯 했습니다. 병 나은 자들은 일어나라고 하셨을 때 저도 손을 번쩍 들고 “정신이 맑아졌습니다”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집회가 계속 된다고 해서 도시락을 싸들고 오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팔푼이가 멀쩡해져 걸어돌아오니 집안엔 경사가 났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해진 저는 소사신앙촌에 들어갔다가 1962년 12월 덕소신앙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덩치도 크고 기술도 좋고 기운도 셌던 저는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제과부에서 일하며 OX경쟁을 하면 거의 이겼습니다. 이긴 사람에겐 선물로 참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1967년 10월 3일. 수동기계로 기어를 위로 올리고 내리는 것에 따라 빵의 두께를 조절하는 기계인데 그날은 얇게 만들 때였습니다. 반죽이 붙어서 그것을 떼려고 손을 넣었는데 건너편에 있던 사람이 순간 스위치를 켠 것입니다. 팔꿈치까지 딸려 들어갔습니다. 뼈가 다 부서셨습니다. 의무실 책임자는 맥이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의무실에선 병원에 데려다주랴고 물어봤지만 하나님의 권능을 이미 경험한 저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달려갔습니다.

축복을 받고 오니 의무실 책임자는 맥이 다시 뛴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랬냐고 위로하시며 축복해주신 하나님. 살이 오르고 살갗이 생겼습니다. 책임자 말로는 의학적으로 살이 오를 수 없고, 다른 데 살을 떼어다 이식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비록 흉터는 남아있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 제게 남아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신앙적으로 나태해지려면 그 팔이 더 아파 저를 일깨웁니다. 하나님을 몰랐다면 이땅에 있지도 않을 텐데 지나고 보니 감사한 일뿐입니다.
김춘자/기장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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