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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울과 온 천하를 다 준다해도 이렇게 기쁠 수야…

하귀례 승사(1) / 면목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24

1944년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서 태어난 저는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절에 다니셨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교회에 가 본 적은 없었지만 저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왠지 모르게 좋아 보였습니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다니는 이웃 분들이 성경 책을 옆에 들고 깨끗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교회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후 결혼하여 백산면에서 살던 1963년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음식을 먹으면 속에서 전혀 받지 않아 잘 먹을 수가 없었는데, 그 증세가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물 한 모금 넘기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화장실에 가도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이 깊어지면서 머리에 큰 바윗돌을 올려 놓은 것처럼 무겁고 아파 하루종일 누워 있어도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병명을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고, 좋다는 약을 먹어 보고 굿까지 해 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나자 얼굴은 눈과 광대뼈만 남아 툭 튀어나올 정도로 빼빼 마르고 병에 부대끼면서 머리카락이 수북수북 빠져 나와 머리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런 저를 보다 못한 시부모님이 서울에 가서 병을 고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셔서, 저희 가족은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희 친정 오빠가 서울에서 경희대 약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오빠가 하는 말이, 청량리에 약을 잘 짓기로 유명한 약국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지은 약을 먹고 감쪽같이 병이 나은 사람들이 많아 그 약국이 ‘도깨비 약국’이라 불리며, 사람들이 몰려와 새벽부터 약국 앞에 줄을 선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거기서 약을 지어 먹으면 혹시 나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하여, 저 또한 희망을 가지고 그 약국에서 약을 지어 왔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는 순간 목에서 콱 막혀 도무지 넘어가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안간힘을 써서 겨우 겨우 삼키자 이번에는 하늘이 노랗게 보이며 어질어질했습니다. 몇 번 더 먹어 보았지만 먹을 때마다 목에서 콱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우니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희망을 걸었던 약 또한 저에게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다 잠든 밤에 벽에 기대고 앉아 있던 저는, 살길이 정말 없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스물다섯 살로 이제 한 살, 다섯 살인 아이들을 생각하니 속이 새까맣게 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외로움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는 생각은 너무나 간절했지만 도무지 병을 고칠 길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나는 살아야 하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이 병을 고칠 수 있나….’ 그런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고 어슴푸레 새벽이 밝아 올 때였습니다. 그날따라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종소리를 듣는 순간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셔야 내가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았으니 마지막으로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께 매달려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낙산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어 저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더니, 아주머니는 제가 힘이 없어 거동을 잘 못하니 저희 집 바로 앞에 있는 창신전도관에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관의 교인 한 분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그분은 저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며 다음 날부터 바로 새벽예배에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힘없는 몸을 이끌고 거의 기다시피 전도관에 갔습니다.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었던 저는 찬송가도 모르고 기도도 할 줄 몰랐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단 한 가지의 기도만 계속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낫게 해 주세요. 저를 살려 주세요.’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만이 절박했던 저는 제발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축복하신 물이라며 생명물을 한 컵씩 주는데, 저는 그때 마시는 것조차 힘들었던 상태라 생명물도 잘 안 넘어갔지만 그래도 애를 써서 마셨습니다.

다음 날도 새벽예배를 드린 후 생명물을 마시는데 이 물을 먹어야 내가 살겠다는 생각으로 한 컵을 다 마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원한 것이 머리로 오더니 목까지 쭉 내려오면서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너무나 시원한 것이었습니다. 머리에 바윗돌을 얹어 놓은 것처럼 항상 무겁고 아팠는데 그것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다 날아가 버리고 너무나 가벼웠습니다. 머리부터 목까지는 시원하고 가벼워져서 한결 살 것 같았지만 몸은 여전히 힘이 없고 아팠습니다.

그다음 날 새벽예배에 참석해 생명물을 마신 후 밖으로 나올 때였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 갑자기 발밑으로 무언가가 싹 빠져나가면서 거짓말처럼 온몸이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한 발자국 내딛는 것도 힘들었던 제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팔만 벌리면 내려다보이는 집들 위로 훨훨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또 아주 시원하고 향긋한 냄새가 제 몸을 감싸는데 꽃향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기롭고 좋은 그 냄새는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 병에 시달리며 도무지 나을 가망이 보이지 않았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니 저 자신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은 또 왜 그렇게 기쁜지 이 서울을 다 주고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이렇게 기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1968년으로 저는 그때부터 창신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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