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안에서 끝까지 이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드려”

<신앙체험기 513회> 화곡교회 이선구 권사 2편
발행일 발행호수 2649

(지난 호에 이어)

제가 이만제단에 다닐 때는 하나님께서 교인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시며 심방하시던 때였습니다. 하루는 노량진에 있는 저희 집에도 오셔서 축복을 해주셨는데, 회색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으시며 집 안으로 들어오시던 하나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집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안수해주셨습니다.

축복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시기 전에 물 떠 놓은 것 없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말씀에 급하게 밥통에 물을 떠서 가져가니 하나님께서 물을 향해 ‘쉭쉭’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그동안 생명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늘 궁금했는데 물에 손을 담그시거나 특별한 동작을 하지 않으심에도 생명물이 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물을 축복해 주신 후 하나님께서는 “집에 솜 있으면 가져오세요”라고 하셔서 서둘러 약솜을 찾아서 드렸더니 솜에 한참을 축복해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신 후 축복받은 생명물과 솜을 살펴보니 거기에서 너무나 좋은 향기가 진하게 풍겼습니다. 세상에서 맡아본 적 없는 신비로운 향기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향취였습니다. 저는 그 향취가 진동하는 귀한 솜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전해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솜은 왜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냐고 물으셔서 저는 어머니께서도 향취를 맡으셨구나 하고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훗날 어머니께서는 저의 전도로 인천교회에 다니게 되셨습니다.

이후 권사님네 가족과 저는 안성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는 일죽전도관이 있었고 저는 반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은 일죽전도관의 전도사로 임명받아 맡은 바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저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말씀 공부를 하며 보람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말씀을 나누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며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찾아와 이제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마지못해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직업 군인이었기에 잦은 전근으로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전도관이 없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해 몹시 애가 타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되니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님, 전도관 있는 곳으로 이사가게 해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드렸고, 얼마 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남편의 근무지가 전도관이 있는 강원도 철원 대광리로 이동되었습니다.

대광리전도관은 교인이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예배에도 열심히 참석했는데 한참 찬송을 부르다 보면 예배실 안에 강하게 진동하는 향취를 자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새벽예배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방안에 뽀얀 이슬 은혜가 가득해서 안개가 껴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대광리전도관 다닐 때
찬송을 하면 향취가 진동하고
새벽 예배 마치고 집에 오면
방에 뽀얀 이슬 은혜가 가득해

1957년 수원제단에서 예배를 마치신 후

대광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 중 하나는 전도사님께 옷을 빌려드린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전도사님께서 하나님께 안찰 받으러 덕소신앙촌에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멀미가 심했던 저는 먼 길을 떠나는 것이 겁이 나서 함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사양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뵈러 가야 하는데 마땅히 입을 옷이 없다는 전도사님의 고민을 듣고 제가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빌려드리며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다음날 덕소신앙촌에서 돌아오신 전도사님이 잘 입었다며 제 옷을 돌려주셨는데, 그 옷에서 얼마나 진한 향취가 진동하던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옷을 들고 향취를 맡으니 하나님께 직접 은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래서 얼마 뒤 전도사님이 노량진전도관으로 예배드리러 간다고 하셨을 때 같이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도사님은 멀미가 심할 텐데 괜찮겠냐며 걱정하셨지만 그 순간 제게 멀미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몇 번이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힘겹게 참아내고 나니 노량진교회에 도착했고, 예배실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데 잠시 후 하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단상에 서시는 순간 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득 찼고, 예배 드리는데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노량진교회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이 참으로 아름답고 듣기 좋았는데, 찬송에 귀를 기울이던 중 어디선가 부드러운 바람이 쉭 하고 불어왔습니다. 그러더니 몸 전체가 포근하게 감싸지는 기분이 들며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져서 저는 그것이 단순한 바람이 아닌 성신의 바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정말 신기하게도 멀미가 나지 않아서 전도사님과 함께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량진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부드럽게 불어오던 바람
몸 전체가 포근하게 감싸지더니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져서
성신의 바람임을 깨달아

성신의 바람은 그 후에도 한 번 더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로 기억하는데 인천교회에 다니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위암으로 복수가 차서 물을 빼내는 수술을 받으셨는데, 이미 기력이 많이 쇠하신 탓인지 수술을 받고 한 달 만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투병 중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몸이 앙상하게 마르셨고 눈도 움푹 들어가 있어서 보기에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관장님과 교인들이 오시기 전 어머니를 모신 방에 앉아 혼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시원한 바람이 관 주변을 휙 돌아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창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바람이 들어와 방안을 돌고 나가는 것이 의아했지만 이내 잊고 계속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윽고 관장님과 교인들이 속속 도착했고, 입관예배가 시작되자 관장님께서 어머니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리고,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몸을 깨끗이 닦아드렸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정성껏 예배를 드린 후 어머니를 다시 봤는데 얼굴이 환하게 피고 볼에 살이 보기 좋게 올라 생전보다 더욱 젊고 건강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입관예배를 드리기 전부터 어머니가 이미 피어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관 주변으로 계속 불어오던 그 바람이 성신의 바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며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위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셔서
앙상하게 말랐던 어머니 모습이
생명물의 권능으로
볼에 살이 보기 좋게 차오르고
피부도 환하게 피어나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려

이선구 권사/화곡교회

이후 1998년 생명물두부가 출시되면서 저는 조금씩 두부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다른 가게를 하고 있었던 저는 처음에는 두부를 팔고, 그다음에는 양말도 팔고, 나중에는 간장도 팔다가 2015년 요구르트 런이 나온 후에 다른 일은 그만두고 신앙촌상회를 열었습니다. 간절히 소망하던 신앙촌상회를 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특히 오래전부터 신앙촌 제품을 애용해 왔다는 고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앙촌 이불을 오래 썼는데 천도 그렇고 바느질도 그렇고 신앙촌만 한 제품이 없다는 고객, 외국으로 직장을 옮기게 된 아들이 신앙촌 베개 없으면 못 잔다고 짐 쌀 때 베개부터 챙겼다며 웃는 고객 등 아주 잠깐만 이야기를 나눠도 즐거웠고, 신앙촌 소비조합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일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 11월에는 서울 가좌교회의 신축예배가 있어서 저도 참석하였습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하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대광리전도관에 다니던 시절 자주 맡았던 그 은혜로운 향취가 강하게 진동했습니다. 향취를 맡은 저는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감격과 감사함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비조합에서 은퇴하고 화곡교회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향취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맡아본 적이 없었던 귀하고 향기로운 은혜는 지금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신앙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제 기도는 늘 같습니다. “하나님, 저의 지난 죄를 용서해 주시고, 마지막 순간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간절한 이 기도가 제 인생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며 날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맑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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