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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정자 퇴임 관장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35

‘누가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을 줄 수 있을까?’
1974년 서른아홉 살에 문득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청주에서 남편과 같이 사업을 했습니다. 학교에 교구(校具)를 납품하는 사업이 잘돼 운전수와 직원을 두고 바쁘게 일했습니다. 돈도 잘 벌고 아들 삼형제도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해 남부러울 것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아등바등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남한테 인정받고 열심히 살아도 돌아서면 허전하고 쓸쓸해지는 허무감이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몸까지 아프고 기운이 없어 병원에 가도 아무 이상이 없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울증 같은데 그때는 우울증이라는 말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종교를 가지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해서 교회를 다닐까 생각해 봤지만 교인들끼리 소란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도 허무감으로
우울해서 괴롭던 시기에 사촌동생이
전도관에 다니면 기쁘고 좋다고 자랑해
알아보고 싶어서 전도관을 찾아가게 돼

그러던 어느 날, 부산 사는 사촌동생이 와서 전도관에 다닌다 했습니다. 저는 전도관이 나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저한테 가자고 할까 봐 내심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같이 가자는 것도 아니고 전도관에 가니 기쁘고 좋다고 자랑만 열심이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고 저는 전도관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청주에 있는 전도관을 수소문해 찾아가니 전도사님이 성신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성신이 진짜 있나 의심하면서도 말씀이 조리 있고 분명해 몇 번 더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교인들은 친절하게 대해 주며 축복일예배를 드리러 기장신앙촌에 가자 했습니다. 그때 몸이 성치 않아 부산까지 가기 힘들 것 같았지만 간곡하게 권하는 것을 뿌리치기 어려워서 축복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기장신앙촌 대예배실은 얼마나 넓은지 앞쪽 단상이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단상에서 예배 인도하시는 분이 신앙촌과 전도관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이라 했습니다. 저 멀리 계시는데도 한 말씀 한 말씀이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성신을 받으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해진다 하시기에 내 병든 마음도 평안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마치고 일어나 영광을 돌릴 때였습니다.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동안 감정이 메말랐던 제가 웬일인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인데 사람들 퇴장하는 소리가 들려 간신히 참고 나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영광을 돌릴 때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
웬일인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간신히 참으며 집에 돌아갔는데
몸이 가볍고 마음도 언제 그렇게 괴로웠나 싶게 편안해져

신앙촌에서 나와 기차와 버스, 택시를 갈아타고 밤늦게 집에 왔을 때였습니다. 문득 ‘왜 이리 몸이 가볍지?’ 했습니다. 많이 쇠약해져서 차를 타고 나면 기진맥진했는데 그날은 부산까지 장시간 여행을 다녀왔어도 몸이 가벼웠습니다. 단잠을 자고 다음 날 눈뜨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고부터 아침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저였습니다. 마음도 언제 그렇게 괴로웠나 싶게 편안해졌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면 참 좋다 하던 사촌동생이 떠오르며 ‘이래서 전도관에 다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요일마다 청주전도관에 나가면서도 의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전도관이 이단이니 나쁜 곳이니 하던 말이 떠오르면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축복일이 되어 신앙촌에 갔습니다. 처음으로 안찰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섰을 때 ‘내가 잘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되자 박 장로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의심치 마세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놀랄 새도 없이 두 눈을 안찰하시는데 가만 손을 얹으실 뿐인데도 깊이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안찰 받고 나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생각을 환히 들여다본 듯 말씀하시니 자연히 경외심을 갖게 되었고, 의심을 버리고 전도관에 다니는 계기가 됐습니다.

자유율법을 처음 배운 날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자유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짓지 않고 자유율법을 지키면 의로운 자 되어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영원을 약속하신 말씀이구나!’세상의 소망은 결국 헛된 데로 돌아가는데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말로 표현 못 할 기쁨이 샘솟아 그 나이 되도록 그렇게 기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가슴이 벅차올라서 ‘이 길을 찾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자유율법 지키면 천국 갈 수 있단 말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나 가슴이 뛰고
말로 표현 못 할 기쁨이 샘솟아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성신을 받으면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말씀을 듣고 귀한 성신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또 전도관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빠지지 않으려고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교인들을 보니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이 제일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당장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잘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 신앙촌 간장을 차에 싣고 나갔습니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바쁘게 다니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신앙촌 제품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보람을 느꼈고, 하루 일을 마치고 올 때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이전에 어떤 일에서도 느끼지 못한 충족감이었습니다.

그 후 1980년으로 기억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순과 허구성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전도관에 나오기 전 성경을 읽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서울대에 다니는 조카가 교양인이라면 성경을 봐야 된다 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첫 페이지인 창세기부터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나서 만나는 사람에게 맞아 죽겠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 가인 자신하고 그 부모인 아담과 해와뿐인데 누구를 만난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 건너뛰고 읽었지만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기 딸을 취하거나 남의 부인을 뺏는 내용을 읽다가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어 덮어버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성경은 총론인 창세기부터 허구’라 하실 때 감탄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총론에 오류가 있는 책은 각론 전부 오류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성경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명쾌한 말씀이셨습니다. 또 성경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추하고 더러운 죄를 지었으니 구원에 교훈은커녕 해독(害毒)이 된다는 말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1981년 청주제단 여성회장을 맡아 10년 넘게 일하다가 1994년 교역자로 발령받았습니다. 저 자신 어느 모로나 부족할 뿐이지만 자유율법을 처음 알았을 때 벅차오르던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생명길로 전도하는 복되고 가치 있는 일을 주셨으니 열심히 뛰어 보자 다짐했습니다.

생명물로 고인의 몸을 씻겨 드렸는데
어느새 온몸이 노긋노긋 부드러워져
유족들이 뽀얗게 핀 할머니 모습에
감탄하며 허리 숙여 감사하다 인사해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제단에서 시무할 때 일입니다. 예전에 왕곡제단에 다니셨던 할머니 한 분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유족들이 천부교 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고인은 거동이 불편해 제단에 못 가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했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그 집에 가 보니 이미 시신은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제가 생명물을 고인의 입에 넣어 드리자 한 방울도 흘러나오는 것 없이 다 들어갔습니다. 그다음 생명물로 온몸을 씻겨 드렸는데 어느새 온몸이 노긋노긋 부드러워져서 다 씻긴 후에는 살아 계신 분처럼 팔다리를 움직여 수의를 입혀 드렸습니다. 제단에 다니지 않는 유족과 친척들은 뽀얗게 핀 할머니를 보고 참 고우시다며 감탄했습니다. 특히 앞집에 사는 친척 한 분은 발인과 하관예배에도 참석하더니 허리 숙여 인사하며 고맙고 감사하다 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제단에 돌아와 기도드릴 때 마음이 참 편안하고 기뻤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아름답게 피게 하시는 것도, 유족들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도, 저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것도 모두 성신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같이해 주시는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0여 년 교역 생활을 하면서 교인들과 힘 모아 정성껏 제단을 단장하며 기쁘고 감사한 일도 있었고,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가나 고심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된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닥쳐오는 어려움에 포기해 버리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지만 이기고 해낼 수 있다 마음먹으면 힘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 2016년에 정년 퇴임하고 신앙촌에 살면서부터는 하나님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은혜 받은 식구들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 터전을 세워 주시기까지 얼마나 고되고 애타셨을까, 이 땅에 다녀가신 하나님의 생애가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집니다. 이번 1월 여성회 축복일 전날에는 신앙촌 밤하늘에 이슬성신이 내려서 축복일에 참석하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교인들이 다 같이 봤습니다. 하나님 오셔서 생명길을 열어 주셨고 지금도 성신으로 그 길을 밝히시니 이보다 귀한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하루 바른 정신과 맑은 마음으로 하나님 뜻대로 행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유정자 퇴임관장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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