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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2) 영등포집회-여의도 이야기

발행일 발행호수 2139

여의도는 원래 모래땅으로 이루어진 넓은 벌판이었으나, 1916년 9월 일제가 간이비행장을 건설함으로써 비행기지로서의 여의도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68년 개발 이전에는 65만여평의 비행장과 30만여평의 밭, 100만평 가량의 모래톱 등 모두 200만평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밤섬 옆으로 너비 200~300m의 한강이 흘렀고 비행장과 양말산 그리고 영등포 사이에는 너비 50m 정도의 낮은 샛강이 흘렀다.
 
45년 해방 직후 미 군정은 양말산 기슭에 20평 남짓한 살림집 50채를 지어 만주와 일본에서 귀국한 50가구를 살게 했다. 그러면서부터 여의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비행장은 6·25사변 뒤 잠시 국제공항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58년부터 공군기지로만 사용되다 71년 2월 폐쇄됐다.
 
1968년에 서울특별시에 의한 윤중제(輪中堤) 축조 및 신개발 사업이 착수되면서 밤섬의 돌과 흙, 여의도 모래톱의 모래를 가져다 높이 16m, 둘레 7.6km의 둑을 쌓고 110일 만에 그 안쪽에 87만여평의 ‘새 여의도’를 만들었고, 한강의 너비는 현재와 같이 1000m가량이 되었다. 이 섬의 복판을 가로질러 마포와 영등포를 직결한 6차선의 마포대교가 1970년 5월 개통, 1981년 10월 4차선의 원효대교가 준공·개통하여 여의도와 용산구 원효로 4가를 이어 놓았다. 또, 양말산 일대에는 국회가 자리 잡았고, 비행장과 밭에는 방송사와 증권거래소, 63빌딩 등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박근영기자pky@the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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