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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지키려 할 때 하나님 함께 해 주셔

발행일 발행호수 2637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과일 장사 시작
주변에서는 주인이 보지 않는 사이에 더 좋아 보이는 과일로 바꾸라고 했지만,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 하지 않아
차라리 굶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디선가 향기로운 냄새 날아와

1914년 황해도 옹진군 송림에서 태어난 저는 계속 송림면에서 살다가 20세 때 같은 고향 사람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하고 몇 년 후 저는 동네에서 5리 정도 떨어져 있는 감리교회의 집사, 권사들과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아 감리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처음에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반대하던 남편도 얼마 후부터는 저와 함께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후 1945년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그 기쁨을 맛보는 것도 잠깐이고, 이남과 이북이 갈라지면서 이북에는 공산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마을의 식량, 가축 등을 수탈해 갔으며,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까지 탄압하여 저희가 다니고 있던 교회를 강제로 빼앗아 그들의 사무실로 사용하였습니다.

6․25 전쟁 후 행동의 자유 없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남쪽으로 내려오게 돼

또 교회에서 회계 일을 맡아보던 저희 남편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그들에게 반박하다가 인민 재판을 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하여 반 죽은 상태로 풀려나왔습니다.
종교도 갖지 못하고, 행동의 자유가 전혀 없는 그런 세상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저와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밤에 몰래 배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이 많이 상해 있었던 남편은 피난 나오는 도중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스로 부산에 도착한 저는 서대신동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피난 나와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던 피난민들은 장로교회를 세워 같이 예배도 드리며 당시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부흥집회에 참석하였는데, 저도 그 피난민 교회에 다니며 부흥집회가 열린다고 하면 어디든지 찾아가 참석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전 재산을 버리고 맨몸으로 피난 나온 탓에 생활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살아갈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사람과 함께 과일 장사를 하던 때에 그들과 도매상에 물건을 하러 가면, 같이 간 사람들은 이미 계산한 과일들을 주인이 보지 않는 사이에 좀 더 좋아 보이는 것으로 몰래 바꾸기에 바빴고, 저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였지만 저는 믿는다는 사람으로서 차마 제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사를 어떻게 하려느냐고 핀잔을 듣고 원망을 사면서도 차라리 굶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어디선가 너무나 향기로운 냄새가 날아와 코에 맡아졌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제가 가져간 물건은 그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잘 팔렸습니다.

또한 매우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을 찾으며 울 적에도 그 향기는 어김없이 맡아졌고, 그때마다 무슨 과일 향 같은 상큼한 냄새가 나기도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길을 갈 때나 장사를 할 때, 그리고 땔감이 없어 이삭을 주워다 불을 피워 밥을 할 때도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을 때면 머리 위에서 퍼붓는 것 같이 그 신기한 냄새들이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1950년대 소사신앙촌의 주인없는 상점

힘들고 어려워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을 때면
향기로운 냄새가 날아와 코에 맡아져

그렇게 지내던 중, 1955년경 어느 날 교회 사람들로부터 영주동 근처 반석교회에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집회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과 함께 집회가 열리는 장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나와 준비 찬송을 한 뒤 박 장로님께서 등단하셔서 단상을 치시며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매우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 향기는 그동안 내가 여러 번 맡았던 냄새다.’ 저는 너무나 놀랍고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박 장로님께서 예배 도중 쉭쉭 하고 축복을 하시니 그 좋은 냄새가 깊숙이 들이마셔지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의 모습은 달덩이같이 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단상을 치시며 찬송을 인도하시자
그동안 여러 번 맡았던 향기가 진동해

또한 박 장로님께서 설교 말씀을 하시면서 단상을 내리치시니 커다란 불덩이가 사방으로 튀어나와 제 머리에도 와 닿았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고 너무나 놀라면서 ‘저분은 보통 분이 아닌 것 같다. 참 으로 신기하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잠시 후 박 장로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이 시간에 내가 단상을 치며 찬송하고 설교할 때 향취를 맡은 사람이 있습니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네” 하고 대답하자 다시 하시는 말씀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며 조심할 때, 향취를 맡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손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향취가 바로 제가 맡은 향기로운 냄새라고 생각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또 박 장로님께서 “피난민이 이 자리에 많이 참석하였을 텐데 그 사람들 중에 향취 맡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박 장로님께서는 “피난민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여기에 나왔고, 또한 피난 나와서도 죄를 지을까 봐 두려워 울면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았으니, 향취를 맡은 사람이 많을 거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좋은 냄새를 맡고, 생수 체험을 하여도 그것이 무엇인지 그동안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오늘은 내가 이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한다”고 하시며 단상을 치셨습니다.

죄지을까 노심초사하며 하나님을 진실로 찾았을 때
맡았던 향기가 향취임을 밝혀 주셔

그러자 또다시 불덩이가 사방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고, 그 순간 제 목에서부터 무엇인가 시원한 것이 가슴으로 내려가 몸 전체가 시원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한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일주일간의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저는 박 장로님께서 부산에 있는 기성교회를 순회하시며 인도하시는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량교회 집회를 끝으로 박 장로님께서는 기독교 총회의 방해로 시달리며 얼마 동안 부산 집회를 하시지 못하였습니다.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기뻐 뛰었던 많은 사람들은 다니던 교회에 할 수 없이 나가게 되었으나, 박 장로님께 받은 은혜는 잊히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더 갈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아무리 해도 진실한 기도가 되지 않고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니 다시 그 은혜를 받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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