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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불같은 호통에도 마음은 호수처럼 고요해져

이순자 권사(2) / 부산 가야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94

사당을 정리할 때 부산의 여동생 집에 계셨던 아버지가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시기도 전에 동네 사람들에게 사당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노여워하셨습니다. 호랑이 양반으로 불릴 정도로 무서운 성격의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것을 식구들이 가라앉히려 했지만 그 화는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10년 넘게 지극 정성을 들였던 사당을 없애 버렸다는 사실에 분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호통과 폭음으로 매일 매일을 보내셨습니다. 특히 저에게 그토록 화를 내시는데도 저는 겁이 나거나 두렵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깨달으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노한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집 안을 울릴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을 녹여 주시고 이 고비를 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다 보면 어느새 뜨거운 눈물로 방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희 집이 마귀 굴로 돌아가는 것을 막아 주세요.’ 오직 이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아버지의 불같은 호통 앞에서도 제 마음에 불안이나 초조함은 찾아오지 못했고, 포근히 감싸 주시는 은혜 속에서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고 평안할 뿐이었습니다.

정자관 쓰고 안찰받은 아버지는 폭음도 끊고 상투도 잘라버려
하나님께서 주신 중절모를 쓰고 어린이처럼 좋아해
옛 사당이었던 그곳은 ‘은암 전도관’이 되고

그러던 1960년 여름,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5일간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저 난리를 치시니 나는 못 가겠고 너 혼자 다녀오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인근에 위치한 조치원, 전동면, 전의면, 서정리 전도관의 전도사님, 교인 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하여 전국에서 몰려든 수만 명의 사람들 속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집회 중 어느 날 조치원제단 전도사님이 저를 급하게 찾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께서 지금 소사신앙촌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요? 아버지가 얼마나 반대하시는데 여기에 오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지만 정말 모시 두루마기 차림의 아버지가 오만제단으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여쭈었더니 “여기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온 식구가 그렇게 받들던 것을 다 없앴는가 알아보려고 왔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치원제단 전도사님이 하나님께 말씀드려서 아버지가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계속 아버지 곁에 계셨던 전도사님이 안찰받을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기세등등한 얼굴로 안찰을 받으러 온 아버지에게 하나님께서는 인자하게 웃으시며 “어서 오세요.” 하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배에 살짝 손을 대시며 안찰하시자 아버지가 큰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셔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팔다리를 잡아 주어야만 했으며 입고 계시던 두루마기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기세등등하던 아버지의 태도는 안찰을 받은 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하나님께 인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아버지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매일같이 화를 내며 폭음하시던 것을 딱 끊어 버린 아버지가 사흘이 멀다 하고 소사신앙촌에 가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고서에 몰두하면서부터 상투를 올리고 뾰족한 모양의 정자관(程子冠)을 쓰셨는데, 어느 날 안찰을 받은 후 상투를 자른 짧은 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강직한 성품으로는 누가 뭐라 해도 머리를 안 자르실 줄 알았기에 식구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머리를 자르셨냐고 여쭈었더니, 안찰받을 때 하나님께서 “이제 머리 좀 자릅시다.” 하고 말씀하셔서 당장 이발소에 가서 잘랐다고 하시면서, 그 기념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중절모를 쓰시고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영모님께서 전도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다.”라고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예배드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당을 치운 큰 기와집에 전도사님을 모셔 와서 사람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고 설교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사당이었던 곳이 그때부터 ‘은암전도관’이 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열심히 찬송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기쁘고 감사한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크고 놀라우신 은혜를 분명히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홉 살이던 아들 정현이가 느닷없이 온몸에 힘이 빠져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입술이 새파래지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아픈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섬기던 신을 버려서 화를 산 것이다.”라며 수군거리기도 했습니다. 아이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데, 그 어린것이 숨을 몰아쉬면서도 모기만 한 목소리로 “하나님, 하나님” 하며 계속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아이 곁에서 깜빡 잠이 든 저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크고 아름다운 예배실에 흰옷을 입은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있고 그 중앙에 약간 높은 대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보시고 “아이를 들어서 여기에 놓아라.” 하시기에 말씀대로 정현이를 대 위에 올려놓은 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를 본 저는 놀라움으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파랗게 질려 있던 입술에 발그스름한 화색이 돌고 숨도 정상적으로 쉬면서 새근새근 곤하게 잠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던 것이 마치 남의 일인 것 같았습니다. 단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아프기 전과 다름없이 명랑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저는 가슴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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