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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의 선한 생산 활동에 관심”

신앙신보 1964년 10월 16일
발행일 발행호수 2559

신앙촌 방문한 이화여대 사회학 최신덕 교수

1960년대 덕소신앙촌 주택 모습

1964년 10월 16일자 제366호 신앙신보에는 신앙촌을 방문한 이화여대 최신덕 교수의 기사가 실렸다.

“그곳에 사는 분들이 어쩌면 그렇게 부러워 보이는지요. 얼굴엔 화평한 기운이 넘치는 천사 같아 보이고 목소리는 명랑하며 온통 생활이 행복에 젖어 보이더군요.”

이대 최신덕 교수는 신앙촌을 돌아보고 무엇보다 신앙촌 사람들이 소유한 행복감을 한없이 동경한다고 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아름답게 꾸며진 신앙의 동산 안에서 하나 둘 뛰어노는 어린이들의 티 없는 모습들이며 땀 흘려 명랑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얼굴을 대할 때 최 교수는 무엇보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화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최 교수가 신앙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종교 사회학을 전공, 연구하는 교수의 입장으로 신앙촌을 한번 연구하고 싶었을 뿐 아니라, 제자들 중에도 모범된 학생 몇이 신앙촌에 사는 고로 그 아름다운 이름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라 했다.

마침내 신앙촌을 처음 찾은 것은 작년 8월 경. “모든 것이 좋았어요. 모든 것이 정말 놀라웠어요.” 사회학자로서 추호만큼의 가감도 없는 사실 그대로를 예리하게 살펴보겠다고 다짐한 교수가 신앙촌을 한눈에 보고는 감탄사 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외국 원조 받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두 도시 ‘장관’
인간의 힘이 아닌
신의 역사임을 느낄 수 있어

최 교수가 관찰한 바, 신앙촌 운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장점은 선한 생산 활동이라 했다. 부(富)는 의의 방편이 될 때 최선(最善)이고, 악의 수단이 될 때 최악이 된다는 최 교수는 신앙인의 선한 생산 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표하였다.

“오늘날의 한국적 여건에서 그와 같은 생산 활동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외국의 원조를 더미로 받고, 은행의 융자를 수십억씩 얻어 쓰면서도 공장 하나 제대로 돌리지 못해 비틀거리는 현실 아닙니까?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아니하는 그 가운데서 그 아름다운 도시를 두 개나 건설하고, 공장들을 일으켜서 수만 신자가 완전 흡수되어 잘 입고, 잘 먹고, 잘살며 신앙에 전념하는 별천지를 만들어 놓았으니…” 물론 인간의 힘이 아닌 신의 역사지만, 이끄는 분이 얼마나 애쓰며 안타까이 고군분투하였겠느냐고 진정 어린 느낌을 토로하였다.

“오늘의 신앙촌을 이룬 원동력― 신자 한 명 한 명이 우주가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확고한 체험적 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나도 그곳에서 한번 믿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솟아올랐어요. 특히 오만제단으로 향하는 돌층계와 양편에 줄지어 서 있는 조명등은 마치 천국 가는 길을 상징하듯 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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