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5) 목포집회
목포집회(1955.12.17.~23.)하나님께서는 12월 8일부터 13일까지 순천에서 있었던 집회를 마치고 불과 나흘 뒤인 17일부터 23일까지 목포에서 집회를 하시게 된다. 1955년 12월 25일에 원효로 구제단 개관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이시며 집회를 연 것이다.
목포집회는 3월말 남산집회를 시작으로 한 1955년 천막집회의 마지막 집회이다. 9개 도시 15회 집회의 대장정을 마치는 집회였던 것이다. 이미 열렸던 하나님의 집회를 통해 은혜를 받고 기성교회를 떠나 따로 예배를 드리는 식구들이 늘어났고 그들은 목포집회에 단체로 참석하기에 이른다.
대규모 천막을 치기 위해서는 몇십대의 트럭이 이동할 정도로 많은 장비와 인원이 투입되는데, 목포집회 때에는 시작할 때부터 이미 천막이 가설 되어있었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은다. 아마도 하나님의 천막집회를 위한 천막 가설팀이 운영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목포집회가 열렸던 곳도 목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1호광장 주변 옛 공설운동장 자리로 갯마장이라고 불리었던 곳으로 광복 후 기마경찰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 그곳에는 중앙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광주공원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영산포장로교회 식구들 중에서 알곡들은 그 교회에서 다 나왔어요. 오성민 관장님, 그분의 형님, 김영환관장님, 신대두관장님, 마이크장로 등 열심쟁이들은 한날에 다 나왔어요. 그 때 오성민 관장님 형님네 2층에서 따로 예배를 드렸어요.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목포에서 또 집회를 하신다니까 기차 타고 다 갔지요. 도착해서는 앞자리가 금자리라고 하셨으니 앞자리 차지하려고 뛰어갔어요.” 김금순권사(83.소사교회)는 당시에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며 흥이 났다.
“집회 내내 먹지 않아도 배도 안 고프고 화장실도 안 갔어요. 집회에 그 때 5살 난 둘째 딸을 데리고 갔는데 애가 뭔가를 받아 먹는 손짓을 하는거예요. 손을 탁 치니까 아이가 ‘엄마 왜 때려요, 지금 눈이 내려서 받아 먹는데 맛있어요. 엄마두 줄까요.’하고 손을 내미는데 저는 뭐가 있어야 먹지요. 아마도 아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받아 먹은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아이도 일주일 내내 안 먹어도 배고프다고 보채지 않았겠지요. 저도 향취의 은혜를 받으면 배가 하나도 안 고팠어요.
광주집회에서도 병자들이 낫는 것을 많이 봤는데 목포집회에서도 장님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제 앞에 앉아있던 사람은 곱추였는데 ‘툭’소리가 나며 허리가 펴지는 것을 봤어요.”
지금껏 15회에 이르는 동안의 천막집회에서 늘 많은 병자들이 병고침을 받고, 그 은혜를 간증하며 기뻐하였는데 목포집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에 목포집회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은 일기가 험했다는 기억들을 한다. 해남에서 백호리 장로교회를 다니다가 교우들과 함께 목포집회에 참석했던 윤안숙관장(68.충주교회)은 “목포에 도착해서 집회장에 갔을 때 천막은 이미 가설되어 있었고, 그 때 비바람이 몹시 쳤었다.”고 했다.
신앙신보 1956년 1월 18일자에 실린 최준호 목사의 “호남지방 부흥대회 참관기”에서 목포집회 당시의 정황을 볼 수 있다.
“목포부흥집회는 매시간 집회에 3만여명씩 모이어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특히 놀라운 것은 집회 중에 폭우가 내려 집회장소가 굴탕으로 앉을 곳이 없게 되었지만 수 만명의 군중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굴탕에 그대로 앉아 땀을 흘려가며 손뼉을 치며 찬송과 기도를 올리며 철야를 하는 경이적인 광경에는 반대파로 집회 광경을 살피러 왔던 사람도 개변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은혜의 불이 나리어 수 십 명의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눈 먼 소경이 눈을 뜨고 혹이 떨어지며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는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수 만 명의 심령이 개변되어 매 주야(晝夜) 농성(籠城) 철야기도 하는 광경이야 말로 참으로 세계부흥사상 다시없는 기이한 일이었다.”
그리고 기사와 함께 목포집회의 인파가 실린 사진과 집회를 마치고 떠나시는 하나님을 전송하기 위해 목포역에 나온 수백의 군중 사진이 함께 실려있다.
유옥례권사(78.소사교회)도 “그 때 비가 무진장 왔어’라고 했는데 무안에 살던 유권사가 목포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광주공원집회에 참석하여 병을 고치게된 남편 때문이라고 한다. “폐가 약해져서 광주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남편이 광주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받고 병이 다 나았다며 짐을 싸들고 퇴원해 집으로 와버렸어요. 그리고는 일주일 있으면 목포에서 부흥집회를 하니 가자고 하여 다니던 교회의 교인과 함께 목포집회에 참석하게 됐지요.”라고 한다.
목포집회에 참석한 유권사는 “목사들이 찬송 인도를 하다가 ‘불의 사자 장로님이 나오신다’는 소리에 자세히 보니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젊은 신사가 올라와서 단에 서시더니 ‘마음 문 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고 하시며 찬송인도를 하시는데 어찌나 이쁘고 날씬하고 멋있던지…” 그 때를 회상하는 유권사는 기쁨의 은혜에 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며 “내 마음은 기쁘고 또 기쁘고, 참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밀감 냄새 같기도 한 좋은 냄새가 나고, 은혜받고 병 나은 사람 간증하라는 말씀에는 ‘벙어리였는데 말을 합니다’ ‘봉사가 눈을 떴다’ ‘혹이 떨어졌다’ ‘앉은뱅이였는데 걷게 되었다’는 간증들이 계속 되었다.”고 했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