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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피게 하는 것과 흉하게 만드는 것 어느것이 성신인가?”

김순용 권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65

저는 전도관에 다니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미 지은 죄를 성신으로 씻음 받아야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 성결한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죄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외래품 장사를 시작했는데 주변에는 상표를 속여서 가짜 제품을 파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는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 떠올라 상표를 속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행동으로 짓는 죄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자유율법을 알게 되면서 제 마음과 생각을 돌아보고 죄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1978년 LA제단에서 열린 하나님 집회에
초창기 하나님 집회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LA제단이 차고 넘쳐
지금도 그때 뵌 하나님 생각에 가슴 뭉클

그 후 서울 지역에 교인이 많이 늘어나 곳곳에 큰 전도관이 세워지면서 저는 새로 지어진 3중앙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마흔일곱 살 되던 1976년에 자식들과 같이 미국 L.A.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L.A.에도 전도관이 있어서 저는 미국에 가자마자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매주 제단에서 예배드리고 교인들을 만나는 그 시간이 참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그 후 1978년에는 하나님께서 L.A.제단에 오셔서 집회를 열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전단지를 돌리며 여러 사람에게 집회 소식을 알렸는데, 초창기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L.A.에도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날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제단이 차고 넘쳤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을 부르며 저는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역만리 먼 곳까지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1981년부터는 이슬성신절이 제정되면서 미주 교인들은 해마다 기장신앙촌에 와서 이슬성신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슬성신절에 음악회가 열려서 교인들로 이루어진 음악 팀이 참가했는데, L.A.제단과 워싱턴제단, 뉴욕제단 등 미국에 있는 교인들도 합창단을 만들어 음악회에 참가했습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매주 제단에 모여 합창 연습을 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미주 교인들 모두 이슬성신절 날짜를 손꼽아 세어 보면서 신앙촌에 가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생명물로 예쁘게 핀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을 기성교회에 다니는 딸이
잡는 순간 시커멓게 변해 다시 생명물로 씻기고 나자 전처럼 뽀얗게 피었다는
이야기 듣고 무엇이 마귀인가를 분명히 깨닫게 돼

제1회 이슬성신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어서 말씀을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신앙신보를 통해 말씀을 읽으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는 하나님의 신이며 하나님의 신을 내리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하실 때 ‘과연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초창기부터 하나님의 성신을 내려 주셨던 일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하나님만이 내리실 수 있는 은혜를 직접 체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이심을 차근차근 깨우쳐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1년 이슬성신절 음악회에 미국에 있는
교인들도 합창단을 만들어 음악회에 참가
미주 교인들 매주 즐겁게 합창 연습 하면서
신앙촌 가는 날짜를 손꼽아가며 기다려

저는 미국에 살면서 신앙촌에 갈 준비를 할 때면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즐거웠습니다. 해마다 절기예배에 참석해서 교인들을 만날 때면 오랜만에 보는 가족처럼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3년에 한 번씩 체육대회가 열릴 때 신앙촌에 와서 신나게 응원도 하고 운동 경기를 보면서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 2008년에 저는 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에 들어와 처음으로 새벽예배를 드리던 날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촌에 올 때마다 환한 미소로 맞아 주시던 하나님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엎드려 울었습니다. 항상 그리던 고향 집에 이제야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같이 입주한 미주 교인들과 이웃집에 살면서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미주 교인들끼리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곤 합니다.

지난 2011년에는 L.A.제단에서 신앙촌으로 입주하신 최경희 승사님이 노환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교인들이 모여 승사님의 입관예배를 드릴 때 장례반 권사님이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닦아 주었는데, 다 씻긴 후에 승사님을 보니 얼굴이 아기 피부처럼 뽀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아흔이 가까운 할머니였지만 생명물로 씻긴 후에 곱고 환하게 피어서 예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제1회 이슬성신절에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 발표
초창기부터 이슬성신의 은혜 체험했던
일 떠오르며 ‘과연 그렇구나’ 무릎을 쳐

승사님의 큰딸은 기성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분으로 그 아들이 기성교회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례예배를 마치고 그분이 하는 말이, 어머니가 너무 예뻐서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례반 권사님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러면 어머니에게 좋지 않을 텐데요.”라고 했지만 그래도 큰딸은 어머니 손을 잠깐 잡았다가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잡는 순간 그렇게 뽀얗고 예쁘던 어머니의 손이 시커멓게 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딸은 그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장례반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시커멓게 된 손을 다시 생명물로 씻기고 나자 전처럼 뽀얗게 피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도 환하게 핀 시신을 목사나 기성교인이 만지면 시커멓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가까운 사람을 통해 확인하면서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아름답게 피게 하는 것이 성신의 역사인가? 시커멓고 흉하게 만드는 것이 성신의 역사인가?” 하고 물으셨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시신이 피는 것을 보면 성신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고, 그와 반대되는 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귀한 신앙촌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매일매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격을 갖춘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유율법대로 살기 위해 생의 남은 시간 동안 내 힘과 정성을 다해 하루하루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성결한 마음의 그릇을 이루어 의로운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순용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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