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말씀
신앙체험기
기획
특집
피플&스토리
오피니언
주니어

소사교회 – 여기는 소사신앙촌 노구산 정상 오만제단

발행일 발행호수 2273

“바로 저기가 하나님과 함께 식목일에 나무도 심었던 곳이야. 그때는 묘목이 흔치 않아서 흔한 아까시 나무를 많이 심었지.”

무성한 숲을 자랑하는 지금과 사뭇 다른 민둥산 50년 전 소사교회 입구. 친구들과 함께 찍은 작은 사진과 지금 교회 옆 군부대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이면서 “여기가 이렇게 돌밭이라서 지금 제단이 있는 자리로 조금 밀려와 교회를 지은 거야” 유흥례 권사는 작은 사진 속에서 오만제단의 역사를 말한다.

“처음에 지을 때 가건물로 짓는다고 좋게 안 지었지. 나중에 더 좋게 만든다고. 그리고 여기가 교회만 900평인데 금방 지었어.” 황인숙 권사는 교회를 처음 세울 때와 하나님 영어에서 나오실 때를 이어 말한다. “그때 신앙촌 입구에서부터 오만제단까지 교인들이 쭉 도열해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오만제단까지 걸어서 올라가셨어요.” ‘얼마나 간절한 그리움으로 기다려왔을까’ 그 당시 교인들의 마음과 그들의 마음을 읽으신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사신앙촌교회. 일명 오만제단. 천부교 역사의 초창기를 설명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교회는 900평 장방체. 오로지 예배만을 위한 공간으로 처음 지어졌다. 40년만인 1997년 교회는 그동안 낡은 부분을 보수하고 예배실 이외의 공간을 분리시키며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개축예배를 드렸다. 교회 주변엔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교회의 오랜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1957년 인천에서 나하고 9명이 건설대로 함께 들어왔는데 그때 우리는 물부대였어요. 콩나물공장 앞 도랑물을 져서 방송에서 나오는대로 물이 필요한 곳으로 물을 져다 주는 거예요. 밤이 되면 당연히 피곤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건설대 숙소에서 자고 나면 거뜬했어요.” 아침마다 새로운 기쁨 속에서 하루를 맞았다는 정숙자 권사는 건설대원들에게 자상하게 축복해주시던 하나님의 모습을 전해준다.

1958년 1월에 신앙촌에 들어온 강옥실 권사는 건설 중이던 어느날 쌀가마니와 함께 엎어지면서 다리를 다쳐 발이 심하게 붓자 하나님께 달려가 축복 받고는 그길로 내려와 벽돌 20장을 지고 가는데 몸이 날아가는 듯 했다며 “뒤를 돌아봤더니 벽돌이 그대로 있는데도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제과부에 근무하며 신앙촌 캐러멜을 24시간 만들어도 부족할 때 캐러멜 싸는 자동기계가 우리나라에 5대 있는 중에 신앙촌에 4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신앙촌을 찾은 손님들을 모시고 하나님께서는 자주 오셨다고 한다.

김옥분 승사는 1961년 소사신앙촌에 입주하는 날 보았던 소비조합원들의 활기찬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며 입주 다음날부터 신앙촌 소비조합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소비조합 경력 3년인 이재진 사장이 “일생에 잘한 것이 소비조합을 시작한 것”이라고 하자 김옥분 승사는 “신앙은 별다른 게 아냐, 순종이 신앙이지”라고 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천만번 참아서라도 죄짓지 말라는 말씀이시죠”라며 다른 무엇보다도 죄와 상관 없는 생활을 강조하셨음을 상기시켰다.

최종성 승사는 소비조합을 사랑하시며 가르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빗을 넣고 다니며 남의 집 앞 문앞에서는 머리를 꼭 빗고 보따리를 다시 이지 말고 안고 들어가고, 신발을 벗을 때도 아무렇게나 벗지 말고 둘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들어가라고까지 가르치셨어요. 그 가르침이 잊혀지지 않아요. 덕소신앙촌을 건설하고 계시면서 금요일 저녁마다 오셔서 소비조합원들에게 눈안찰을 해주셨어요.”

최 승사는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며 ‘하나님께 옥중에서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혐의를 씌어 2차 옥고를 치르시며 남산 아래 헌병대에서 재판을 받을 때’ 일을 들려주었다. “먼저 내무부 장관이던 최인규를 재판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오셨어요. 장내가 약간 두런거리자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더니 젊은 판사가 ‘박태선 피고는 옥중에서 선거운동 한 일 있나?’하고 묻자 또 장내는 와글와글하고 저도 훌쩍거리고 울다가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시나 머리를 드는데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어요, 그러자 그 때 하나님께서 큰 목소리로 딱 한 마디 하셨어요. ‘대한민국 헌법에 옥중의 자유가 있습니까?’ 판사가 아무 말도 못하고 땅땅 치고 다음 날짜를 말하고 나갔어요. 그게 5월 16일이에요.”

11월 16일 주일 대예배시간에 보니 최성례 관장은 설명하고 나서 다시 질문을 해가며 새교인들이 알기쉽게 차근차근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이날 예배 시간에는 11월 9일 추수감사절에 신앙촌에 다녀와 은혜를 체험한 이슬반(새교인반) 홍인자씨가 나와서 발표를 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의 모습이 젊어지셔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이전에 뵙던 모습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의심을 많이 했는데 이슬성신절 때부터 말씀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이제는 확실히 깨닫고 그래서 참으로 감사하고 기쁘고 편하다며 선하게 살 것을 다짐하게 된다고 했다.

소사신앙촌 초기의 카스텔라 탄생 스토리를 들려준 양윤신 권사, 소비조합을 하며 은혜 받아 생전 피곤한 것 모르고 지낸다는 전정남 권사, 전국의 병원을 다 다녀도 고치지 못했던 허리 병이 오히려 소비조합을 하며 완쾌되어 마트에서 10시간 서서 판촉을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강복희 권사, 소비조합을 시작한 이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41년을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우종화 권사 …

그들은 한결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했다.

서울 노량진 센터 일부가 옮겨오게 되어 그것을 맞이할 공사로 한창 바쁜 가운데 최성례 관장은 “주어진 조건에 감사하고 또한 이것을 기회로 삼아 능률적으로 해나가고 싶다”며 세심하게 진행을 하고 있었다. 최 관장은 교인들에게 신앙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함에 대해 강조하게 되는데 “물론 나부터도 그렇다”며 “‘최고의 적은 자신 속에 있다’는 말씀에 따라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언제나 자기관리가 철저한 모습이라고 하자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가볍게 대답한다.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