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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고 뜨거운 기도 앞에 불가능은 없어요'
발행일 발행호수 2169

“대방동 중앙에 발령받았을 때, 지금 옆에 앉은 이재경 관장은 엄마 등에 업혀서 교회에 왔었는데, 이렇게 같이 교역을 하고 있네.” 교역의 대선배 윤안숙관장의 말에 웃음꽃이 핀다.

<함께 이야기 나눈 사람>
윤안숙관장(67, 충주교회)
이재경학생관장(33, 수원교회)
이상미학생관장(29, 소사교회)

이상미관장: 관장님께서는 ‘하나님을 바짝 따라가고 싶어서’ 교역자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교역을 시작하실 때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윤안숙관장: 저의 체험기에서도 말했지만 1955년 목포 천막집회에서 하나님을 처음 뵙고 1957년 2월 목포전도관 개관집회에서 강한 은혜를 받았어요. 죄인됨을 깨닫고 사흘 밤낮을 울며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죄타는 냄새도 맡고, 향취의 은혜, 이슬 같은 은혜,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넘치는 은혜를 다 받았어요. 그리고는 열심히 전도관에 다니는데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어요. ‘전도관에 안 나가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집안이 평안할텐데 그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죠. 그것은 하나님 앞에 거짓이 되니까.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해남에서 광주 숙부님 댁으로 피난을 갔어요. 광주전도관에 다니며 반사 일이며, 청년회 일, 기타 많은 교회 일을 하면서 전국순회 하시는 하나님께서 광주에 오실 때마다 많은 축복을 받았어요.

하나님께서 광주에 한 달에 한 번 오시다가 6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으로 길어지고 집안에서 핍박도 잦아들자 제 맘도 흐려지는 거예요. 그 때 해남전도관의 권사님이 추수한 백미를 갖고 덕소신앙촌에 간다고 해서 함께 덕소신앙촌에 가서 축복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됐어!” 두 번을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이대로 그냥 가다간 영원한 지옥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폰서 기사 다채롭고 밝고 스타일리시한 양말 컬렉션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무언가를 찾아보세요. 개별적으로 또는 묶음으로 구매하여 서랍에 색을 더하세요!

교역을 하시는 전도사님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있는데 신앙신보에 교역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난 거예요. ‘21세 이상 45세 이하 남자로 9기생 교역자를 모집’한다는 거예요. ‘꼭 교역자가 되어야겠다. 교역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을 바짝 따라갈 수 있다.’라는 생각에 호소문을 쓰고 얼마나 애절하게 기도를 했는지 몰라요.

얼마후 교회 전도사님 앞으로 ‘귀 교회에 이러이러한 분이 있으니 서류를 준비하여 보내라’고 통보가 왔어요. 협회는 통과 됐지만 막상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려니 눈물이 마를 새 없이 기도를 했어요. 기도 앞에는 하나님도 안 들어 주실 수가 없는 거죠. 결국 부모님도 제가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을 아시고 저를 보내주셨어요.

`꼭 교역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을 바짝 따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재경관장: 관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기도의 힘이 느껴지는데요. 신앙인으로 교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윤안숙관장: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 안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입어서,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어요.

늘 매달리고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가 죄악의 장벽만 무너뜨리고 똑바로 구하면 무엇도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축복을 양손에 드시고 받을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고 계시는 듯해요. 우리가 바로 구하지 못해서 안되는거죠.

기도는 우리의 무기고, 기도는 호흡입니다. 항상 하나님 일 속에 살 때는 일 자체가 기도예요. 생활이 기도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일이 또 중하지요. 일을 하면서 은혜를 받으니까요.

이상미관장: 관장님께서는 오랜 시간 교역을 하셨으니까 여러 사람을 만나셨을 텐데요, 말 안듣고 속 썩이는 교인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윤안숙관장: 교인을 치리하다 보면 교인 때문에 맘이 상할 때도 있어요. ‘좀 더 깊은 신앙 속에 살면 좋겠는데 왜 그럴까’ 속상하죠. ‘사람 되게 해야 할텐데’하는 맘으로 앞에선 야단을 쳐도 뒤에선 그 사람 위해서 기도하죠.

미워하면 안 돼요. 미움이 있으면 기도도 안 되고, 기도가 안 되면 설교도 안 돼요.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은혜를 못받으니 내가 손해죠. 하나님 앞에 내가 손해 받게 안해야죠. 미운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단은 교역자의 생명인데 내가 은혜에 젖어 감동이 돼야 식구에게 은혜를 받게 하니 그만큼 책임이 중합니다.

이재경관장: 그럼 인상에 남는 잊지 못할 교인도 계시겠네요?

윤안숙관장: 1963년에 신문 보고 지원해서 교육을 받고 교역 활동을 한 지 10년이 지난 1974년 목포에서 30리 떨어진 ‘일로’라는 곳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곳 교인 중에 몇 년 동안 유방암으로 가산을 다 탕진하고 병석에 누워 있던 김순례집사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집안에서는 장례 치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온 몸이 굳어지면서 말도 못하고 의식을 잃었으며 너무 고통스러워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죽어 가는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제는 죽든 살든 하나님께 매달려 보자’는 심정으로 다른 교인들과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찬송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 전도사님 기도 안 들어주고는 안 되겠구만’하는 말들을 할 정도였어요. 이렇게 며칠 철야 예배를 드렸는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말을 못하던 분이 “전도사님, 이제 저 안 죽어요. 하나님께서 오셔서 ‘이제 하나님 일 많이 해’ 하시며 축복해 주셨어요”하는 거예요. 이후 차츰 차도가 생기더니 건강을 회복했어요.

하나님의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를 해야하는 거지요. 그런 마음을 갖고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세요.

`현재 나의 신앙이
살아 움직일 때
과거도 미래도 보장된다`

이상미관장: 40년 넘는 세월 동안 교역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데요, 교역 하시는데 원칙이랄까, 세워놓으신 방향이 있으시다면요?

윤안숙관장: 첫째는 화합이에요. 성신 안에서는 백이든 천이든 하나이지, 절대 둘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관장은 언행일치, 표리부동. 이것이 되야해요. 찬송을 불러도 그래요.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찬송이 그러면 실제도 그래야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제단을 아끼고 가꾸는 거예요. 제가 돌이켜보니 그간 18곳에서 시무를 했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 개축을 하거나 보수를 하고 제단을 돌봤습니다. 보이는 것도 정리정돈을 못하면 보이지 않는 마음은 무슨 수로 정리하겠나, 보이는 것부터 깨끗이 하자. 이런 마음으로 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스스로 원해서 나왔기 때문에 남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늘 있습니다. 탑을 공들여 쌓고 있는데 무너뜨리지 않게 조심조심 가고 있습니다.

이재경관장: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윤안숙관장: 현재 나의 신앙이 살아 움직일 때 과거도 미래도 보장된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열심히들 하세요.
정리=송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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