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말씀
신앙체험기
기획
특집
피플&스토리
오피니언
주니어

사과에도 한계가 있을까요?

발행일 발행호수 2665

‘미안하다’는 사과의 한마디는 뒤틀린 관계의 균형을 바로잡아 주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진심 어린 사과라 할지라도 너무 참혹해서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피해가 존재한다. 최근 역사적 잘못에 대한 기관들의 청산 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뉴욕 가톨릭 대교구가 제시한 8억 달러(약 1조 원) 규모의 성학대 합의안을 둘러싸고 ‘회복적 정의’와 ‘사과의 한계’에 대한 무거운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이는 여러 신학의 핵심에 자리 잡은 ‘구원’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올해 66세인 안소니 산투치 씨는 거의 반세기 동안 불면증과 플래시백(과거 기억이 갑자기 생생하게 재현되는 현상)에 시달려 왔다. 10대 초반 시절 브롱크스의 한 가톨릭 신부로부터 당한 성학대의 기억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이 아픔을 가슴에 묻어두었던 그는 이제 뉴욕 대교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300여 명의 원고 중 한 명이 되어 세상 앞에 섰다.

이번 소송은 여타 성학대 소송과 다른 지점이 있다. 뉴욕타임스(NYT) 마야 킹 종교 전문 기자는
“보통 가해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달리, 이번 원고들은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한 가톨릭교회와 뉴욕 대교구, 그리고 그 지도부에 직접 책임을 묻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산투치 씨는 어릴 적 신앙심이 매우 깊었기 때문에 오히려 타깃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종교적이고 순종적인 아이일수록 수치심 때문에 주변에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원고들이 법정에 제시한 손해 배상 청구 사유 중 하나는 ‘신앙의 상실(Loss of Faith)’이다. 피해자들은 성당에 다니지 않는 것을 넘어, 교회에 대한 신뢰는 물론 신앙 자체가 흔들리는 고통을 겪었다. 자신들을 하느님과의 더 깊은 관계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로부터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과연 신이라는 절대자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신앙의 상실’이 성학대 자체에 대한 배상만이 아니라, 학대가 삶에 미친 도미노 효과에 대한 배상이라고 지적한다. 학대 피해로 인해 교회 공동체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주변으로부터 소외되고, 가족과의 관계마저 단절되는 2차 피해로 이어진다. 한 변호사는 “신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버팀목인데, 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감당하기 너무나 힘든 일”이라며 “학대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의지했어야 할 신앙 공동체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또 하나의 거대한 고통”이라며 손해 배상 산정의 배경을 밝혔다.

현재 원고들은 대교구 측이 제안한 1인당 25만 달러(약 3억 3천만 원) 수준의 일시금 합의안을 수용할지, 피해 사실을 서면으로 입증해 더 많은 금액을 신청하는 법정 싸움을 이어갈지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원고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대교구 측은 합의가 무산될 경우 파산 신청을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파산 절차에 돌입하면 소송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합의 자금이 고갈되어 지금 약속된 금액의 절반도 받지 못할 위험이 크다.

그럼에도 산투치 씨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자녀와 손주들이 생기면서 내 아이들과 이 사회의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 때문이다. 이들이 최선의 합의와 진정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겪었던 참혹한 일을 그 어떤 아이도 다시는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뉴욕타임스(NYT) 로런 잭슨 기자의 6월 21일 자 기사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