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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선장로님 집회에서 너무도 신기한 광경을 보게 돼

임옥산 집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38

저는 1929년 황해도 황주에서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장로교를 열심히 믿는 집안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별한 후 전도사가 되어 여러 교회에서 시무를 했습니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 피난을 내려와 서울에서 살게 되면서, 어머니는 황동 장로교회의 전도사가 되었고 언니와 저도 그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심방을 나가셨던 어머니가 돌아와서 하는 말씀이, 지금 창신동 장로교회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집회를 하신다며 같이 가 보자고 하셨습니다. 언니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 창신동교회에 도착하니, 이미 예배실에 사람들이 꽉 차서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2층에 간신히 자리를 마련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교회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손뼉을 치는 것이 어색해서 찬송가를 양손에 펴 들고 불렀는데, 어느샌가 저도 모르게 손뼉이 쳐져서 다른 사람들처럼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박 장로님은 아주 젊은 신사 분이셨는데, 박 장로님께서 설교하실 때 어느 순간 저에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어디서 바람이 불지?’ 하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머리카락 타는 듯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언니에게 말했더니, 언니도 머리카락 타는 것처럼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언니와 저는 교회에서 머리카락을 태울 리도 없는데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모르겠다고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저희 가족은 집회장에 남아 기도하면서 밤을 새웠습니다. 이튿날 새벽예배를 드린 후 동대문 창신동교회 집회는 끝이 났으며, 일주일 후 도원동 장로교회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도원동교회 집회에 참석한 저는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다 별안간 “환자들은 일어나라!”고 외치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꼽추가 등이 펴졌다, 벙어리가 말문이 열렸다 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때가 이른 봄인데도 어떤 사람들이 몸이 너무나 뜨겁다며 어쩔 줄 몰라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불 성신을 받아서 뜨거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는데, 그때까지 부흥집회에 많이 다녔어도 그런 말씀은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성신을 받으면 죄가 씻어지고 이러이러한 체험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 제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몇 시간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고 그 시간이 아주 잠깐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말씀을 통해, 제가 집회에서 맡았던 지독한 냄새가 성신의 불로 죄를 태워 주실 때 나는 냄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남산 집회, 서울운동장 집회 등 박 장로님께서 인도하시는 집회에 계속 참석했습니다. 하루는 원효로 박 장로님 댁에 예배실이 마련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니, 박 장로님 댁 뒷마당에 기다란 예배실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곳을 원효로전도관이라고 했는데, 저희 가족은 황동교회에 다니면서도 가끔씩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전도관에서 예배드릴 때, 박 장로님 주위에 안개 같은 것이 뽀얗게 내리면서 박 장로님께서 구름 속에 서 계신 것처럼 그 주위가 하얗게 둘러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말로만 듣던 이슬성신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희가 살던 집의 주인아주머니가 안국동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하루는 제가 그분과 함께 원효로제단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그날 ‘동방의 한 사람’에 대한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한창 설교를 하시는 중인데, 주인아주머니가 저한테 말하기를 “성경에 나오는 고레스가 동방의 일인이지 어떻게 박 장로님이 동방의 일인이에요?”라고 하더니 더 들을 필요가 없다며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설교가 계속되면서 그분 말고도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는 단상 쪽으로 더 당겨 앉아 박 장로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성경 구절을 들어 동방의 한 사람이 나타나는 조건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과 제가 체험한 것을 종합해 볼 때 박 장로님이 바로 동방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믿어 온 신앙이 구원과 상관없는 헛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부터 구원의 길을 밝혀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분을 따라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와 언니는 장로교회에 가지 않고 온전히 원효로제단 교인이 되었으며, 얼마 후 어머니도 황동교회 전도사를 그만두고 원효로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원효로제단에는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배실 뒤쪽에 2층을 지어 올렸어도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청암동에 웅장한 이만제단을 짓게 되었고, 1957년 이만제단이 완공된 후에도 사람들은 더욱 늘어 갔습니다.

당시 저는 동대문시장 양장점에서 재봉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양장점 주인의 부인이 전도관에 다녀서 그분의 소개로 일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부인과 달리 양장점 주인은 전도관에 다니지 않았는데, 저에게 재봉을 할 때 바느질 땀수를 드문드문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인에게는 미안해도 도저히 그 말대로 할 수가 없어서 촘촘히 바느질을 하여 정성껏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난 후 주인이 하는 말이, 여러 가게 중에서 우리 집 물건이 제일 잘 팔린다며 손님들은 우리 물건이 다 팔린 다음에야 다른 가게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바느질을 느슨하게 하라고 했는데도 양심대로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전도관 교인은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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