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터무니 없는 전도관 비방 설교를 혼내주다
곽옥란권사 / 뉴욕교회지난호에 이어서
그 후 1962년 10월에는 덕소신앙촌에 입주해 소비조합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신앙촌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나가서 하루 종일 바쁘게 다니며 장사를 해도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밤늦게 막차를 타고 신앙촌에 도착하면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주무시지 않고 축복하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기쁘고 활기차게 살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도관에서는 발 씻은 물 준다`고 목사가 비방설교
`직접 마셔봤습니까? 눈으로 보셨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우물쭈물,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목사를 훈계
덕소신앙촌에서 10년 넘게 살았던 저는 춘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개인 사정으로 4~5년 정도 제단을 쉬다가, 1982년 미국 텍사스로 이민을 가서 다시 제단에 다니려고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전도관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한인들이 다니는 감리교회에 갔더니, 마침 그날 박사 학위가 넷이나 있다는 목사가 초빙되어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전도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전도관에서는 발 씻은 물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목사에게 “그 물을 마셔 보셨습니까? 아니면 그런 광경을 직접 보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목사는 우물쭈물하면서 직접 보지는 못했고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전도관에 수십 년 다녔어도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어떻게 목사라는 분이 거짓말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앞으로 어디를 가서도 그런 말씀은 하시지 마세요.”라고 하자, 목사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생명물을 통해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직접 체험했는데 그런 되지도 않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떻게 하면 제단을 찾을 수 있을까요?’하며 울고 있는데, 불현듯 덕소신앙촌에 아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냈더니 얼마 후부터 2주에 한 번씩 신앙신보를 보내 주었으며 텍사스에 사는 교인들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신앙신보를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면서 고향을 다시 찾은 것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하나님 말씀 테이프를 받아 매일같이 듣고 되새기면서 다시금 신앙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제단이 있는 뉴욕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제단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1992년경 제가 12인승 차를 몰고 볼일을 보고 오던 길에, 집에 거의 다 와서 교통사고를 낸 일이 있었습니다. 앞에 청소차가 있어서 그것을 피하려다가 길가의 가로수를 들이박았는데, 가로수가 뿌리째로 뽑히고 차가 심하게 찌그러졌을 만큼 큰 사고였습니다. 그런 사고를 당했는데도 차에 틀어 놓았던 하나님 찬송 테이프는 아무 이상 없이 계속 흘러나왔고 저는 손톱 하나 다친 데가 없었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구급차와 경찰차가 달려오더니, 경찰이 저에게 어디를 다쳤냐고 물어보기에 하나도 안 아프고 괜찮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이쪽으로 걸어라 저쪽으로 걸어라 하며 제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래도 믿기지가 않았던지 제 딸을 보고 너희 어머니가 분명히 어디가 아플 텐데 괜찮다고 한다, 나중에라도 이상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주고 갔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아무런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며, 이는 모두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를 드립니다.
그 후 1997년 8월, 춘천에 사시던 어머니가 노환으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급히 춘천으로 와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열흘 전부터 곁을 지키며 생명물을 계속 먹여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둔 후, 저는 춘천제단에 다니는 동생 곽옥희와 부인 관장님과 함께 시신을 씻기고 기장신앙촌에서 떠 온 물을 온몸에 발라 드렸습니다. 시신이 뽀얗게 피어나고 얼굴에는 이슬방울까지 촉촉이 맺혀 있는 예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몸이 점점 식으면서 발톱이 새파란 빛을 띠었는데, 시신을 씻긴 후에 보니 손톱과 발톱에 발간 핏기가 도는 것이었습니다. 수의를 입힌 후 머리와 다리를 들어 관에 넣으려고 할 때는 온몸이 노긋노긋 부드러워서 허리가 축 늘어지는 바람에 관장님이 얼른 허리를 받쳐서 관에 넣었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하나님을 모르셨지만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너무나 편안하게 가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뉴욕에 있는 시온쇼핑에서 몇 년 동안 판매를 맡아 했었는데 지금도 틈나는 대로 가서 일을 돕곤 합니다. 미국인 고객들은 신앙촌 메리야스가 너무 부드럽고 좋다며 찾는 분들이 많고, 양말과 이불 같은 상품도 즐겨 찾습니다. 또 한국에서 신앙촌 물건을 애용하셨던 분들이 시온쇼핑을 찾아와 미국에서도 신앙촌 물건을 살 수 있다며 반가워하는데, 그런 손님들을 만날 때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매주 한국에서 배달되는 신앙신보를 받을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소식이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신문을 펼치곤 합니다. 신앙신보에 실린 하나님 말씀을 읽다 보면 이토록 귀한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조용히 저의 생애를 돌아볼 때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때가 그 어느 순간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늘 생각하고 실천하며 순간순간 깨어 있는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