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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해도 받은 은혜가 너무나 분명하고 뚜렷해

우종화 권사(2) / 소사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64

<지난호에 이어서>
집회 기간 중 하루는 점순이와 함께 노구산 아래 소사신앙촌 주택가로 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길가의 어느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기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이 집의 여자 교인이 숨을 거두어 입관예배를 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싶어서 그 집에 들어간 저는 그때 처음으로 시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살색이 시커먼 빛을 띠었고, 피부가 헐었는지 거뭇거뭇한 상처가 얼굴 반쪽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비녀를 풀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입을 딱 벌린 시신의 모습이 너무 흉하고 무서워서 저는 얼른 집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곧 예배가 시작되어 사람들의 우렁찬 찬송 소리가 들려왔는데, 저와 같이 밖으로 나왔던 점순이는 궁금증을 못 참고 “언니, 다시 가 보자.”며 제 팔을 끌었습니다. 저는 마지못해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제단 가는 길을 가시덤불로 막아 놓으면
먼 산길로 돌아서라도 예배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
북을 치며 거리에서 노방전도하던 기억 너무도 흐뭇해

장례반 분들이 시신을 생명물로 씻은 후 다시 보았을 때, 시신은 배꽃같이 뽀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고인은 새하얀 옥양목을 입었는데 얼굴이 그 옥양목과 같은 색깔이었고, 어린애 피부처럼 너무나 보들보들해 보였습니다. 얼굴 반쪽을 뒤덮었던 거뭇거뭇한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 발그스름한 핏기가 돌았습니다.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잠깐 잠이 든 것처럼 고운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천사 같다!’고 감탄했습니다. 조금 전에 봤던 시신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시신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노구산 집회가 끝나고 얼마 후 회북면 중앙리에 회인제단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힘을 모아 흙벽돌을 찍고 서까래 세우는 일을 도우면서 제단은 점점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 완공된 후에는 청주제단, 보은제단 교인들과 함께 북을 치고 거리를 다니며 노방 전도를 했습니다. 신나고 즐겁게 전도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그해 12월, 하나님께서는 억울하게 영어의 몸이 되셨습니다. 신문에 전도관에 대한 비방 기사가 연일 보도되면서 저희 동네 어른들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나이가 지긋하신 동네 어른이 저희 집에 찾아와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저를 전도관에 못 다니게 하라는 그분의 말씀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딸은 전도관에 다니면서 나쁜 행동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더 참하고 부지런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반대를 하겠습니까?” 나중에 마을 어른들의 반대가 더욱 심해져서 제단 가는 길목을 가시덤불로 막아 버리는 속에서도 아버지는 제가 다니는 것을 말없이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받은 은혜가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기에 누가 뭐라 해도 뜻을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제단으로 가는 길이 막혀 먼 산길을 돌아가면서도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 후 스물두 살에 결혼해 옥천군 청산제단에 다니다가, 1966년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인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실직해 생계가 막막해지면서,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다 할 밑천이 없었던 저는 시온 간장부터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만 살아서 버스 타는 것도 생소한 저였지만, 먼저 판매하셨던 소비조합 선배님들의 활동으로 어딜 가나 신앙촌 제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는 큰 통에 간장을 들고 다니며 팔았는데, 아침에 간장을 들고 나가면 몇 시간도 안 돼 다 팔리곤 했습니다. 시온 간장을 맛본 고객들이 다른 제품도 가져다 달라고 하면서 장사 보따리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불, 양재, 캐러멜 등 다양한 신앙촌 제품이 큰 인기를 끌어서,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가면 그 동네 주부들이 다들 모여와 잔칫집처럼 북적북적했습니다. 그렇게 소비조합을 하면서 저는 3형제 자식들을 모두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할 수 있었습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면 발걸음은 더욱 가벼웠고 신앙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소비조합을 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고 활기차게 살 수 있었습니다.

1993년에는 친정어머니가 8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와 가족들이 전부 천부교를 믿지 않아 장례예배를 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어머니를 축복 비누로 씻어 드리고 싶어서 형제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입관하기 전에 제가 시신을 씻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시신을 씻어 본 적이 없었던 저는 장례반 분들이 하던 것을 떠올리며 축복 비누와 가제 수건 등 필요한 물건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를 씻어 드리려고 손을 잡았을 때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손이 어찌나 차갑던지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 차가운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저의 어머니지만 섬뜩한 느낌에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속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계속 기도드리자 차차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저는 뻣뻣하게 굳은 시신을 힘들게 움직이며 머리부터 감겨 드렸습니다. 그런데 축복 비누를 가제 수건에 문질러 시신을 씻자, 뻣뻣하던 몸이 어느새 노긋노긋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발부터 뽀얗게 피어나면서 얼굴까지 환하게 되었고 피부 또한 어린애 살처럼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처음에 차갑고 섬뜩하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계속 씻어 드리고 싶어서, 이미 감긴 머리를 감기고 또 감겨 드렸습니다. 곱게 피어난 어머니 얼굴은 한잠 주무시는 분처럼 아주 편안해 보였습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와 이별하는 가슴 아픈 순간이었지만, 귀한 은혜 속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보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30년 넘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면서, 아낌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에서 떠나 맑고 바르게 살기만을 바라셨던 하나님. 어떻게 하면 그 뜻에 순종할 수 있을지 늘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제 나이가 되면 일을 하고 싶어도 은퇴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늘도 즐겁게 일할 수 있음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더욱 힘차게 이 길을 따라갈 수 있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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