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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시온쇼핑’ 운영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고

문엄전권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37

지난호에 이어서
1957년에는 영주동 산꼭대기에 부산전도관을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부산 교인들이 제단 건축에 힘을 모았고, 저도 시간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흙을 파고 벽돌 나르는 일을 도왔습니다. 시내를 굽어보는 산꼭대기에 세워진 전도관은 새하얀 외벽의 웅장한 제단이었습니다. 전도관이 차츰 완성되는 것을 보면서 즐겁고 신나게 일했던 기억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부산전도관에 다니던 중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저희 가족은 집을 정리해 서울 청암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해 한동안 천막에서 생활할 만큼 어려웠지만, 이만제단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면 제 마음에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고 평안함이 가득해졌습니다.
이만제단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포에 사는 남자 교인이 숨을 거두어 입관예배에 갔는데, 병원에서 운명한 시신을 집으로 옮기고 보니 양손과 양발을 묶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시신은 아주 뻣뻣하게 굳어서 묶은 것을 풀어도 팔다리가 펴지지 않고 묶은 상태 그대로 양손과 양발이 붙어 있었고, 숨을 거둘 때 고통스러웠는지 인상을 몹시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 장례반 권사님이 시신을 생명물로 깨끗이 씻기고 축복받은 수건을 시신의 얼굴과 가슴에 덮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 씻긴 후 시신을 봤더니 붙어 있던 양쪽 팔과 다리가 떨어져 반듯하게 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얼마나 노긋노긋한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것처럼 시신을 앉혀 놓고 수의를 입힐 정도였고, 얼굴은 언제 찡그렸던가 싶게 편안한 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은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 은혜로 시신이 피어나 이렇게 편안하고 고운 모습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만제단에 얼마간 다녔던 저는 다시 창신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근처에 전도관을 찾을 수가 없어 다니질 못해 무척이나 답답했습니다. 하루는 전도관을 꼭 찾겠다고 마음먹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동대문 근처 천막을 친 곳에 ‘전도관’이라는 간판이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 들어갔더니 관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며 제단에 나오라고 하셔서 저는 그때부터 동대문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동대문제단에서 어떤 남자 분이 인사를 하기에 쳐다봤더니, 부산 희망예식장 집회에서 폐병이 나았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집회 기간 내내 옆 자리에 있었던 그분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아주 건강해 보여서 예전 집회에서 처음 봤을 때 빼빼 말라 뼈와 가죽만 남았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고, 지금은 전도사님으로 어느 제단에서 시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서울 21중앙에 다니면서,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부터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장사를 했었지만 소비조합을 하며 “신앙촌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기쁘게 일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65세 즈음에는 경기도 부곡에 시온쇼핑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저와 비슷한 시기에 시온쇼핑을 차린 권사님과 매일같이 전화로 격려해 주면서 즐겁게 소비조합을 했습니다.
그러던 1993년경으로 기억됩니다. 어느 날 같은 제단 장 집사님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제단에 잘 못 나오셨지만 이전에 부인회 일을 많이 하며 정성을 기울였던 분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집에 갔을 때는 기장신앙촌에서 떠 온 물로 시신을 씻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다 씻긴 후에 시신을 보니 얼굴이 뽀얗게 피고 생전에 있던 주름살이 다 펴져서 80대 할머니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깨끗하고 환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대신동제단에서 시신이 핀다는 말씀을 처음 들은 후로 장례예배가 있는 곳이라면 열심히 참석했는데, 그때마다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굳어지고 썩어질 수밖에 없는 시신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노긋노긋하고 아름답게 피는 것은, 보고 또 보아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덕소신앙촌을 거쳐 2002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해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지극하게 보살펴 주는 이곳에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나보다 더 편안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저는 소비조합을 하는 분들이 지금도 부럽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전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웠기에,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건강만 허락된다면 일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제 일생 동안 함께해 주신 은혜를 앞으로도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맑고 바른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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