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말씀
신앙체험기
기획
특집
피플&스토리
오피니언
주니어

심광수 관장 편 ⑧ 생명물의 권능을 보여주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해 주시는 하나님
발행일 발행호수 2346

1. 거제도 덕곡전도관의 부흥집회 후 전도된 학생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2. 거제도 덕곡전도관 부흥집회 모습.

8. 생명물의 권능을 보여주다
1978년 4월 29일 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에 있는 경상남도 거제군 하청면 덕곡리 덕곡전도관으로 발령을 받고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덕곡전도관에는 젊은 박현석 전도사님이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그곳으로 발령이 났으니 박 전도사는 자신이 밀려난다는 서운한 느낌이 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혹여 감람나무 가지 하나라도 상처를 받을까 염려하시어 박 전도사를 친히 부르셔서 “계획한 일이 있어서 발령을 냈으니 절대로 마음에 상처를 받지 말라”고 따뜻하게 위로 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거제도 덕곡에 땅을 구입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기장신앙촌 모장로님 주도하에 덕곡전도관에 계시던 최집사님이 그 문제를 주로 맡아 하셨습니다. 최집사님은 땅을 알아보신 후 “평당 45,000원이던 땅을 35,000원까지 깎았습니다. 땅 주인과 한 마을에 사는데 그 이상은 깎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순종하는 자세
그런데 축복일이어서 기장신앙촌에 갔더니 하나님께서 저를 찾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땅 문제라면 모장로님을 찾으실텐데 무슨 말씀이 계실까’ 생각하며 하나님 집무실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보시자마자 “3만원에 못사겠더냐?”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저는 그 자리에서 “네, 하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한 후, 바로 모장로님과 최집사님을 만나 땅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그정도면 많이 깎았는데 더 이상은 힘듭니다. 더구나 같은 마을 사람인데… 차라리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지 그러셨습니까.” 라고 그분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전도사입니다. 끝까지 해봐야합니다. 다들 못 하시겠다면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그 즉시 땅 주인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로 갔습니다. ‘그 가격에는 분명 안 팔려고 할 텐데…’ 땅 주인을 찾아가는 동안 속으로 내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꼭 성사시켜야 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거제도 덕곡에 도착하여 땅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땅을 평당 3만원에 주십시오.” 제 말을 들은 땅주인은 갑자기 찾아온 저를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어떤 말도 없이 “그럼, 빨리 현금을 가져 오시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습니다!” 믿기 힘든 땅주인의 반응에 놀랐지만 저는 해결하기 힘들 것 같은 일이 생각 외로 잘 풀려서 무척 기뻤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 보고드리기 위하여 저는 곧장 신앙촌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났는데도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지 않고 아무런 말씀이 안 계셨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거제도를 향해 출발한 후 하나님께서 모장로님께 현금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가격에 땅을 계약하라고 덕곡으로 보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교인들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노력하려는 우리들의 자세를 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우리들이 하려고 노력만 하면 다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덕곡전도관 부흥집회
저는 덕곡전도관에 부임한 후 부흥집회를 하기 위해 제단 수리를 시작했습니다. 단상도 좋은 것으로 바꾸고 작은 기도실도 마련하여 깨끗하게 도배도 하고 안팎으로 페인트칠도 했습니다. 수리를 마친 후 1978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덕곡전도관 대부흥집회를 개최했습니다.

몇 십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인데다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남녀노소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석을 하여 예배실이 꽉 차 더 앉을 자리가 없어서 아이들과 학생들은 예배실 밖 창문너머로 서서 예배를 드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집회 후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전도되어 전도관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본격적으로 전도에 힘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덕곡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 전도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덕곡리에서 4~5km 떨어진 거제군 연초면 다공리 사람들을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로교 학생반사들
다공리 마을에는 다공장로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열심쟁이 여학생 반사 두 명이 그 동네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장로교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아이들을 전도하려면 먼저 그 학생 반사들을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 학생을 만났습니다. “나는 덕곡마을 전도관 관장인데 전도관은 너희들이 다니는 장로교와 다르다. 한번 와봐라.” 제 말을 들은 반사들은 멀어서 덕곡리까지 가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올 방법이 없나?”라고 물으니 잠시 생각하던 반사들은 동네에 군대 제대하고 경운기를 가지고 농사짓는 오빠가 있는데 그 오빠한테 부탁하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장로교 반사들이 어렵게 경운기를 타고 덕곡전도관에 찾아온 날 생명물의 권능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죽은 시신은 물을 한 방울도 넘길 수 없지만 감람나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은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생명물을 먹이고 씻긴 시신은 뽀얗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 말을 들은 반사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못 믿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장로교회 반사들이 생명물의 권능을
믿지 않아, 장례식 때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신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만
시신이 피지 않자 크게 놀라

그런데 얼마 후 몸이 안 좋아서 거제도 옥포에서 쉬고 있는 이춘배 휴직 전도사로부터 모친(최말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교인들과 급히 휴직한 이춘배 전도사님 댁에 찾아가면서 장로교 반사들이 다니는 학교에 전화를 했습니다. “얘들아, 빨리 오너라. 옥포마을에 도착하면 장례 치르는 집으로 찾아오면 된다.”

반사들은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저는 시신이 있는 방에서 장로교 반사들과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찬송을 하고 입관을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신은 뽀얗고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또 온몸이 노곤노곤 해져서 자유자재로 양팔도 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왼쪽 다리는 잘 피었는데 반사들이 앉아 있던 오른쪽 다리는 꼼짝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럴까.’ 순간 장로교 반사들이 떠올랐습니다. “뒤에 있는 집사님, 아이들이랑 자리 좀 바꿔보세요.” 아이들 뒤에 있던 전도관 집사님을 앞으로 앉게 하고 반사들은 뒤에 세운 후 다시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 다리를 들어보니 빳빳하고 꼼짝하지 않던 다리가 확 피어 노곤노곤 해졌습니다.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