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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수 관장 편 (30) 인간과 다른 하나님의 육신

성신이 생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오신 하나님
발행일 발행호수 2390

1986년 1월 1일은 축복일 이었습니다. 오전 10시 교역자 시무식이 있은 후, 오후 2시에는 하나님께서 참석자들에게 안찰을 해 주시고, 오후 4시에는 교인들에게 만찬회를 열어주셨습니다. 이날 만찬회에 참석한 부산 연산동교회 교인 변재선, 김진규, 곽의용, 장영상, 남철환, 강용희, 박선재, 양인철, 조경형, 김종민, 이형수, 김규연, 변재정, 송승준, 정재승, 남경석, 지승용 등은 새해 첫 날 하나님께서 해주신 지천영에 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86년 1월 27일은 1,500명 단원의 시온합창단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신년음악회’로 제18회 정기연주회를 가진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당시 1,500여 명의 여성 합창이 시도 되었다는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음악계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18회 정기연주회가 있기 전 날인 1월 26일 책임관장급 이상 교역자들을 불러 서울 외교구락부에서 모임을 갖고 하나님께서 특별말씀을 해주셨습니다.

1,500명의 대합창

저는 교역자가 된 이후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전도심방활동을 해야 하고 일요일은 단에 서서 예배를 인도해야하기 때문에 더더욱 바빴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부모님이 계신 고향 삼척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셨습니다. 꿈에 나타나신 아버지의 모습은 살은 하나도 없고 새까맣게 뼈만 보이는데 아버지라고 알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저는 ‘교역자로서 다른 가정의 추도예배는 수도 없이 다니는데 정작 자기 아버지 묘소에 자주 찾아뵙지 못하니 불효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아버지 묘소에 찾아갔습니다.

아버지 묘지에 가니 봉분이 내려 앉아 있어
하나님께 아버지 사진을 드리고 축복 받은 후
다시 묘지를 찾으니 둥글게 다시 올라와 있어

묘소에 찾아간 날은 겨울이라 눈도 오고 굉장히 추운 날씨였습니다. 가보니 아버지 묘소는 낙관이 되어 묘지 중앙이 푹 꺼져 있었습니다. 낙관이 되었다는 것은 무덤 안에서 관이 삭아 내려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둥근 모양이어야 할 묘지 중앙의 흙이 푹 꺼져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비가 오면 묘지의 흙이 빠져나가 나중에는 묘지의 모양을 알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혼자라 묘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께 너무도 불효를 한 것 같아 저는 1986년 2월 6일 축복일에 하나님께 아버지 사진을 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저희 최고위원 7명이 서 있는데 하나님께 아버지 사진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누구야?”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이길원 관장이 “심 관장 아버지입니다.” 하고 말씀 드렸더니 “아~ 그래”하시며 하나님께서 아주 반가워하시는 표정으로 아버지의 사진에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내려앉은 봉분

아버지는 1955년 하나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1943년 2월 27일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마치 예전부터 알고 계신 듯 반가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1981년 1월 21일 하나님께서 “과거에 죽은 사람도 생전에 있는 그때 모습으로 만나 볼 수가 있다” 고 하신 설교 말씀대로 하나님께 아버지의 사진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을 보시고 반가워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땀이 나실 정도로 강하게 한참 축복을 하시며 “사진에 축복을 하면 시신에 반응이 온다. 몇 천리 밖에 있는 시신이라도 반응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사진에 축복을 하시고 “응 됐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저는 사진 축복을 하실 때 주신 생명물을 가지고 약 20일 후인 2월 25일 다시 아버지 묘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놀랍게도 푹 꺼져 있던 묘지 중앙이 둥글게 솟아 올라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돌아가신 분에게도 사진에 축복을 하시면 시신에 반응이 온다고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몇 년 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소를 이 곳 가까운 곳에 모시기 위해 신앙촌 앞 죽성리 공동묘지로 이장을 했습니다. 이장은 관장님들께서 도와주었습니다.
구희만 관장님 등 여러 관장님들이 이장을 하기 위해 아버지의 묘를 파 들어가니 묘지 안은 함몰이 되어 텅 비어 있었답니다. 관이 낙관이 돼서 관 안으로 흙이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묘지 안에 관이 함몰 되었으니 그 안을 흙으로 다시 채우지 않는 이상 묘지의 겉모양도 내려앉아 둥근 모양을 유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묘지의 안이 텅 비어 있은 채로 둥근 묘지의 모양을 몇 십 년간이나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과 같아 보이지만
성신을 생산하는 구조를 가지고 오셨기에
삼위일체 성신을 끝없이 주실 수가 있어

1986년 4월 5일 축복일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모습과 같아 보이지만 그 구조가 다르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와야 인간을 구원 줄 수 있다. 나는 성신이 생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왔다.” 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5장 53절에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는다」고 한 대로 하나님께서 물에 축복을 하시면 썩어야 할 물이 썩지 않는 생명물로 변합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고 대신 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만의 이 권능은 성신이 생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

1986년 5월 14일에 저는 울산에 있는 태화여자중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그 학교에서 천부교에 다니는 여학생 14명이 있었는데 그 학교 신승봉 교무 주임이 여학생들에게 천부교에 가지 못 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 찾아가 교무 주임에게 항의를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7일 울산교육청에 교육감을 찾아가 정식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천부교는 문공부에 등록된 정식 종교입니다. 종교는 자유인데 학교 선생이 왜 가라마라 하는 것입니까? 교사들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그 일이 있은 후 두 번 다시 교사가 천부교에 대한 비방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986년 8월 5일부터 7일까지 전라북도 전주교회에서 남부지역 학생 신앙교육이 있었습니다. 전주는 교회도 크고 교회 앞에 운동장도 있어서 신앙교육을 하고 체육회를 하기도 적당했기 때문에 전주교회에서 학생들의 신앙교육을 자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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