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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수 관장 편 (37) 장례식에 내린 이슬성신 은혜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
발행일 발행호수 2404

이슬로 임하는 성신

1991년 4월 12일 마산교회로 연락이 왔습니다. 대구교회에 출석하던 김재만 권사님이 4월 11일 위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김재만 권사님의 아들 형제들은 천부교 장례식에 반대하였으나 전도관에 다니는 부인의 주장으로 천부교 장례절차를 따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고인의 시신이 모셔진 방은 겨우 몇 사람만 들어 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았습니다. 저는 같이 간 교역자들과 함께 생명물로 정성껏 시신을 씻긴 후, 아름답게 핀 고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들, 며느리 등 유족들을 불렀습니다. 방이 워낙 작아 모두 들어가 있을 수 없어서 유족들을 부른 뒤 교역자들은 방에서 나왔습니다.

전도관 모르는 유족들
천부교 장례식에서
이슬성신 은혜 목격
유족들 마음까지 변화

유족들은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을 당했던 김재만 권사님의 생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름답고 평온해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족 가운데 김재만 권사님의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여자 유족 두어 분이 “아까 방안에 들어갔을 때 이슬 같은 것이 내리던데 왜 그런 것이 내려요?”하면서 서로 대화하는 것을 천부교 장례식을 반대하던 고인의 아들 형제들이 들은 것이었습니다. 전도관이 뭔지, 이슬성신이 뭔지 전혀 모르는 젊은 여자 유족들이, 생명물로 뽀얗게 핀 고인이 있는 방안에서 이슬 같은 것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김재만 권사님의 아들 형제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그 형제들이 어릴 때 전도관에 다니면서 들었던 ‘이슬 같이 내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이슬성신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부교식 장례식을 반대하며 내내 못 마땅해 하던 아들 형제들은 그전과는 자세가 180도 달라졌으며 장례가 끝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잘 순응하고 도와주었습니다.

보기 흉한 시신을 아름답게 화하게 하고 돌처럼 굳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생명물의 권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에도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귀의 신, 썩는 신

그런데 생명물로 김재만 권사님의 시신을 닦는 중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축복 비누와 생명물로 몸을 닦아 전체가 뽀얗게 잘 피는 중에 유독 배꼽 부위만 시커멓게 피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왜 그럴까.’ 그동안 많은 장례식에 참여해 봤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배꼽 부위를 생명물로 씻어 보았지만 잘 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입관을 시키려고 했는데, 입관을 하려고 하니 유족들이 준비한 관이 고인의 키에 비해 작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유족들에게 큰 관을 구해오라고 말씀을 드린 후 새 관을 구해오기까지 기다리면서 시커멓게 피지 않은 배꼽 부위를 계속 생명물로 닦았습니다. 처음보다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다른 부위보다 깨끗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의 손이 닿았던
부위는 아무리 해도
피지를 않아 그들이
마귀의 신임을 실감해

그런데 배꼽 부위가 시꺼멓게 피지 않은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암으로 입원하고 있을 때 믿지 않는 자녀들이 병을 낫게 한다고 환자를 기성교회 기도원에 데리고 가서 기성교회 목사가 배꼽 부위에 안찰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기성교회에서 믿는 신이 마귀의 신이요, 썩는 신이라는 것을 시신의 상태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벗으신 후 신앙촌이 없어졌다는 등의 소문으로부터 신앙촌을 비방하는 기사가 자주 나왔습니다. 주간 신문인 토요신문 1991년 5월 8일자 1면과 4면에도 신앙촌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기사가 실렸습니다. 우리는 토요신문사를 방문하여 토요신문 상무 겸 편집국장을 만나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사과를 받았습니다.

1991년 5월 26일은 제11회 이슬성신절이었습니다. 마산교회 전 교인들은 물론 1년 전, 자색으로 변해 보기 흉했던 아버지의 시신을 생명물로 닦는 순간 흰 페인트를 칠한 듯 피어나는 것을 직접 경험한 전광후 집사님과 그 아들들까지 모두 이슬성신절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이슬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1991년 11월 12일 저는 천부교 유지재단 감사로 전국 남자교회의 운영, 관리 현황에 대한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전국 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다방면에서 교회 운영, 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대부분 잘 되어 있었습니다. 교역자들은 언제든지 교회 운영과 관리면에서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했습니다.

교회 운영과 관리

전국 천부교회 예배실 단상에는 하나님의 존영을 모셨습니다. 1985년 5월 26일 제5회 이슬성신절 때 하나님께서 각 제단에 있는 하나님의 존영을 흰 양복을 입고 찍으신 것으로 하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존영은 유리가 있는 액자에 있어서 예배실에 불을 켜면 유리가 조명에 비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변색되기도 하는 단점이 있었는데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1991년 1월 3일에 변색도 안 되고 유리를 안 끼워도 되는 것으로 코팅 작업을 의뢰하여 1992년 5월 9일 지금의 하나님 존영을 전국 교회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울릉도 섬 오지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짐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워

1992년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2박 3일 간 공석제단 현황 파악 차 울릉도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울릉도에는 천부교회가 3곳이 있었습니다. 울릉군 울릉읍 도동에 있던 제단은 없어졌고, 서면 남양에는 공석제단으로, 북면 천부동에도 공석제단이 있었습니다. 북면 천부동에 갔을 때 이렇게 울릉도 섬 오지에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1992년 3월 16일 저는 재단법인한국천부교전도관유지재단 이사로 취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3일 뒤 19일에는 공석제단 파악을 위해 강원도 지역을 순회했습니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부촌리에 있는 부촌 공석제단은 군부대 앞에 있었는데 부대 측에서 사전 허락도 없이 부대 측 사정으로 우리 교회 건물을 훼손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대를 찾아가 부연대장 이병희 중령과 법무관 김오수 중위를 만나 항의를 하고 그 후에도 춘천 1군사령부 법무부에 여러 차례 면담을 하여 항의하였습니다.

교역자 초청 친선 체육대회

1992년 4월 7일 한국 천부교 교역자 초청 친선 체육대회가 전주 공설 운동장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허정일 관장님이 시무하던 전주교회에서는 전국의 교역자들과 전주교인들이 함께 모여 중부와 남부로 팀을 나누어 축구대회를 열었습니다. 체육대회에 참여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뛰고 달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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