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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 목사는 눈 어두워 양떼를 인도하지 못하는 목사(目死)

김정임 관장(1) / 영덕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24

저는 1936년 전라남도 영산포에서 2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약국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영산포 장로교회의 수석 장로였으며, 어머니는 교회에서 봉사하며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세례를 받고 교회에 꾸준히 나갔으며 고등학교도 미션스쿨인 광주 수피아여고에 다녔습니다. 방학 때 집에 돌아오면 인근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집회장에서 철야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여고를 졸업하고 영산포 집에서 지내던 1955년 11월이었습니다. 광주공원에서 대규모 부흥집회가 열려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하신 분이 집회를 인도하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산포 장로교회 강희석 목사와 교인들 대다수가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날 광주공원에는 수만 명이 입추의 여지없이 집회장을 가득 채웠으며, 단상에는 목사들을 위한 좌석이 따로 마련되어 수십 명의 목사들이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앞서 안찰 받는 사람을 보며
‘손을 눈 위에 살짝 얹으시는 것뿐인데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의아해
막상 안찰을 받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

집회 중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인도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을 반복해서 불렀는데, 차츰 가사 내용이 마음에 와 닿으며 그 뜻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찬송을 마치신 후 박 장로님께서 “오늘 축농증 환자를 고쳐 줄 테니 축농증이 있는 사람들은 단상으로 올라오세요.” 하고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가서 줄지어 섰습니다. 그들을 향해 박 장로님께서 “쉭! 쉭!” 하고 축복하시자 사람들이 “코가 뚫렸습니다!” “냄새가 맡아집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축농증이 나았다 보다.’ 하며 참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광주공원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후로 교인들은 저마다 체험담을 이야기했는데, 집회장에서 하얀 구름 같은 것이 퍼지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예배 중에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시원한 물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부흥집회에 많이 다녀 봤지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저는 무척 신기했습니다. 광주공원 집회에 다녀온 교인들은 그 집회에서 했던 것처럼 예배 시간에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강희석 목사가 이야기하기를, 박 장로는 이단이므로 그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출교시킨다는 통고문이 총회에서 내려왔다면서 앞으로 박 장로의 부흥집회에 참석을 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목사 자신이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했는데,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박 장로는 이단”이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교인들 대다수가 박 장로님의 광주공원 집회에 참석했으며 그 후로 박 장로님의 집회마다 열심히 참석하는 교인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목사의 금족령에 교회가 술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주공원 집회에 함께 가서 은혜 받은
강희석 목사가 `박장로는 이단`이라며 돌변해
은혜 받은 교인들 하는 수 없이 따로 모여 전도관 세워

그러던 1956년 봄이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서울 제2운동장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교인들은 그 집회에 갈 것인지 다수결로 결정했는데 과반수가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도 그 집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교인들과 같이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저희 일행은 집회장에 가기 전 원효로에 들렀습니다. 원효로에 박 장로님 댁이 있으며 그곳에 가면 안수와 안찰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산포교회 교인들과 함께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날 박 장로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인 지 집사는 박 장로님의 두 손이 눈에 닿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손을 눈 위에 살짝 올려놓으실 뿐인데 왜 소리를 지르며 아파하는지 의아스러웠으며 ‘나도 저렇게 소리를 지르면 창피해서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눈 안찰을 받을 때 눈이 몹시 아팠으나 겨우겨우 소리를 지르지 않고 참았습니다. 그런데 배를 안찰하실 때는 배에 뭉쳐 있는 덩어리가 박 장로님의 손을 피해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안찰하시며 “이것은 시기, 이것은 고집” 하며 지적을 하셨고 통증이 점점 덜해질 때 “이제 물러간다.” 하시며 손을 떼셨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 걸어가는데 발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굉장히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서울 제2운동장에 마련된 집회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광주공원 집회보다 족히 몇 배가 되는 인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며 단상에 놓인 찬송가 받침대를 들어서 내려치셨는데, 그때마다 하얀 구름 덩어리 같은 것이 단상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구름 같은 것이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가면서 제 앞으로도 하얗게 내렸습니다. 저는 전에 교인들이 박 장로님 집회에서 “하얀 구름 같은 것이 퍼지는 것을 봤다.”라고 하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설교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내 집회에서는 성신을 직접 체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시며 성신이 뽀얀 안개와 같이 내린다고 말씀하실 때 ‘아! 내가 본 것이 바로 성신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광주 공원 집회에서 은혜 받은 교인들이 체험담을 이야기 하는데
어떤 이는 하얀 구름같은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시원한 물이 쏟아지는 느낌을 말하는 사람도 있어

박 장로님께서는 기성교회에서 논하는 ‘신학(神學)’이란 인간의 학문인 ‘인학(人學)’에 불과하다고 하시며 “성신을 직접 체험한 후에 성신의 가르침을 받아야 마땅하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4, 50년 예배당에 다니면서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갈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시며 예배당에 나왔다고 무조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성신을 받아 죄가 해결된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장로교회에 다니며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 천국에 간다.’라고 배웠던 것과는 180도 다른 말씀이었습니다. 박 장로님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죄를 지어도 예배당에만 나오면 구원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 목사(牧師)들은 눈이 어두워 양떼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목사(目死)”라고 하시는 박 장로님의 말씀에 ‘정말 그렇구나!’ 하며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제2운동장 집회를 다녀온 후로 영산포교회 강희석 목사는 한층 거세게 박 장로님을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교인들은 “이런 교회에 계속 다닐 수 없다. 우리도 전도관을 세우자.” 하고 뜻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이 전국 곳곳에 생겨날 때였습니다. 얼마 후 시내 중앙동에 터를 마련해 ‘영산포전도관’을 지을 때 저도 거기서 흙을 나르며 즐겁게 건설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1956년 11월 하나님을 모시고 개관집회가 열리던 날은 전국에서 교인들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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