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길로 불러서 기쁨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희영 권사 / 의정부 교회1957년으로 기억됩니다. 영등포 친정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원효로에 있는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셨는데 그날은 특히 무더기 심방이 있는 날이라 하셨습니다. 무더기 심방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것으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이 따라다닌다 했습니다. 저한테도 같이 가자 하셨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 가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다녀오셔서 뭐가 그리 좋으신지 계속 찬송을 부르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전도관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셔서 조금씩 관심이 생겼고 얼마 후에는 어머니를 따라 소사신앙촌에 가게 됐습니다. 소사신앙촌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곳으로 전도관 교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큰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소사신앙촌에 반듯반듯하게 서 있는 양옥들과 새로 지어진 공장 건물을 둘러볼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꽃이 피었나 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길가에 꽃도 없고 향기가 날 만한 것이 없는데도 향기가 나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소사신앙촌에 온 사람들에게 박 장로님께서 안수해 주셨는데, 박 장로님 손이 제 머리에 닿는 순간 좋은 향기가 코에 들이붓는 것처럼 진동했습니다. 신앙촌을 둘러볼 때 맡았던 바로 그 향기였습니다. 어머니한테 이야기했더니 은혜를 받은 거라며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세상에 없는 좋은 향취를 맡게 된다 하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가 전도관에 나와 보라고 계속 말씀하셔서 저는 권유에 못 이겨 가끔씩 영등포전도관에 따라갔습니다. 전도관에 은혜가 내리는 것이 신기하다 생각하면서도 그때뿐이었는데 꾸준히 나가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마포에 있는 이만제단에서 예배드린 때였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르다 앞을 보니 어찌 된 일인지 그 넓은 예배실에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뽀얀 안개 같은 것이 가득 차 있어서 바로 앞에 앉은 사람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신이 내리는 것을 많은 사람이 본다 하시며 안개와 같이 내리는 성신을 본 사람은 손을 들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배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고 저도 ‘내가 본 것이 은혜였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 순간 좋은 향취가 코에 들이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예배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도 향취가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지며 왠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찬송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때 저희 집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교편생활을 하던 남편이 교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저것 손대는 것마다 잘되지 않아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이사를 자주 다니고 안정된 생활을 못 하니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에서 예배드리고 나면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 듯 마음이 밝고 편안해졌고, 특히 집에 와서까지 향취가 진동한 날은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다음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며 마음을 기쁘고 편안하게 해 주시는 은혜를 또 받고 싶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집과 가까운 아현동전도관으로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러 나갔습니다. 그때가 1963년, 제 나이 스물여덟 살 무렵이었습니다.
아현동전도관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교인들은 예배 시간에 앞자리에 앉으려고 오르막을 날아갈 듯 뛰어다녔습니다. 저도 앞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뛰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2년 넘게 폐결핵을 앓으면서 항상 기운이 없고 숨이 찼기 때문에 오르막은 물론 평지도 뛰지 못했습니다. 계속 결핵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고, 교인들이 오르막을 힘껏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무척 부러웠습니다. 당시는 새벽예배 마친 후 전도사님이 생명물을 한 컵씩 주셨는데 하나님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생명물을 마시면서 하나님께 낫게 해 달라고 기도드려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새벽예배 때마다 ‘하나님! 제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하며 기도드렸고, 생명물을 받을 때도 귀한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마셨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점점 숨차는 일이 없어지면서 걸음이 빨라졌고 몇 번씩 쉬었던 언덕길을 단번에 오르게 됐습니다. 저도 다른 교인들처럼 언덕길을 뛰어올라 예배실 앞자리에 앉아 찬송을 부를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항상 창백하던 얼굴에 보기 좋게 혈색이 감돌아 예뻐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식구들은 제가 계속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기운이 없더니 전도관에 다니고부터 펄펄 날아다닌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때부터 병원과 약을 모르고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최근 들어 팔순이 넘은 나이에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결핵을 앓은 흔적이 있다고 해서 그때 일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젊을 때 많이 아팠는데 은혜 받고 새사람이 됐지!’ 하며 평생 건강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현동전도관에 다닐 때 저희 집에 세 들어 사는 군인 가족을 전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육군 대위였던 군인과 그 부인에게 제가 은혜 받은 이야기를 했더니 은혜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냐며 놀라워했고 신앙촌에 가 보자는 말에 흔쾌히 따라나섰습니다. 그분들은 덕소신앙촌에서 하나님 설교 말씀을 듣고 오더니 자유율법에 대한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했습니다. 자유율법대로 나쁜 마음과 생각을 멀리하면서 살면 바르고 선한 사람이 될 것 같다며 전도관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은혜 받은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고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면 그분들은 더 듣고 싶어 했고, 저도 기쁘고 즐거워서 한마디라도 더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분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간 후에도 집과 가까운 서대문전도관을 찾아 열심히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참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 무렵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하면서 신앙촌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당시는 신앙촌 간장을 병에 덜어 주며 판매할 때였는데,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이 다음에 또 신앙촌 간장을 달라고 찾아서 장사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의정부로 이사 와서 의정부제단에 다닐 때는 신앙촌상회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신앙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랜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하루하루 부지런하고 바쁘게 사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저는 제단에 나온 후로 교인이 돌아가시면 입관예배에 참석했는데 의정부제단에서 입관예배 드릴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한의사 할아버지였습니다. 고인은 제단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의정부제단에 열심히 다니시던 유가족의 뜻으로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교인들이 힘차게 찬송을 부르는 동안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로 고인을 깨끗하게 씻겨 드렸습니다. 수의를 입힌 후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온몸이 노긋노긋 부드러워서 살아 계신 분처럼 손발이 자유자재로 움직여졌고 뽀얗게 핀 얼굴이 깨끗하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때 장례반 권사님이 얼굴을 자세히 보라 하셔서 가까이 가서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인의 콧잔등에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장례반 권사님이 수건으로 닦아 주어도 잠시 후 다시 보면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 모두 놀라워했고 저는 ‘이렇게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 1987년 즈음 기장신앙촌 축복일에 있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한참 예배를 드리던 어느 순간 예배실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게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뽀얀 것이 짙어져서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는 바로 앞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코끝에는 진한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때 저는 수십 년 전 이만제단에서 이슬성신이 뽀얗게 내리는 것을 봤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초창기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성신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며 이 길을 열심히 따라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귀한 길로 불러서 기쁨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 그 사랑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가르쳐 주신 대로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