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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운영의 정체성

발행일 발행호수 2182

선거 사상 유례가 없는 정부 여당의 참패로 끝난 5·31 지방선거의 결과를 놓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경제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느니, 정부 여당의 정책 혼선 때문이라느니, 코드 인사 때문이라느니 하고 말들이 많다.
그러나 이 정부나 여당에서 일각의 비판과 같은 특별한 정책의 혼선은 없었다. 오히려 정부 여당은 이른바 중도 좌파적 노선을 견지하고 그 기조 위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 여당 참패의 주된 원인이 경제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했다.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고, 중산층은 부동산과 관련한 ‘세금폭탄’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는 푸념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살펴보면 어느 대통령, 어떤 정부든 간에 현실적으로 국민을 모두 만족시키고 모두를 잘살게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정부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문제를 두고 분배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폈다고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비 시장적(市場的)이며 반 기업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정부 아래서도 우리의 수출은 여전히 신장 되었으며 달러 보유고는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 여당이 최근 잇따라 내 놓은 일련의 부동산 정책이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사실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 보유세와 양도세를 몇 배씩 인상하여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사유재산 침범론까지 불러일으켰다. 혹자들은 이것을 가지고 이 정부가 국민을 양분시켜 부자들을 적으로 만드는 사회주의 성향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전제와 방향이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이것을 가지고 감정적 대응을 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국민은 이 정부 여당의 어떤 정책에 대해 그것은 안 되겠다고 세대와 연령을 초월하여 전례 없이 강력하게 ‘No’의 신호를 보낸 것인가? 그것은 바로 정부 여당의 안보정책에 관한 회의(懷疑)와 불신 때문이다. 국민은 이 정부와 여당이 출범한 직후부터 전통적인 한미관계보다 민족공조론을 우위에 두고 대북관계를 설정하려는데 대해 그 정책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견고한 한미관계의 바탕 위에서 대북관계는 상호주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라는 국민의 주문을 무시한 이 정부의 후반기 성적을 보면서 국민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북한은 핵은 핵대로 보유하면서 남한의 경제적 지원만을 강요하게 되었고, 핵을 포기하라는 대북 압박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자주외교’는 전통적인 한미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 것이다.
국민은 마침내 이번 선거를 통해 단호한 메시지를 행동으로 전달했다. 정부 여당은 거역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국민의 ‘No’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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