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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이 가슴 속에 차 올라

이지수 집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81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던 어느 날 예배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갑자기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제단 안에 내리면서 단에 서신 박 장로님의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흰 구름에 둘러싸인 것처럼 양쪽 벽의 창문과 뒤편에 있는 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어디서 나는지 향긋한 냄새가 진하게 맡아지는데, 그 냄새는 과일 향기나 꽃향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좋은 냄새였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이슬 같은 은혜가 내려 그 은혜를 직접 보고 성신의 향기를 맡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나름대로 잘 믿노라 했던 저였지만 그런 말씀과 체험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제가 체험한 일이 단지 신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리교회 목사가 찾아와 `전도관은 이단이니 다니지 말라`하기에
`참길로 이끌어야 할 목사님이 왜 참길을 막으십니까?`라고 대답
당황한 목사는 이단이라는 말만 얼버무리다 황급히 돌아 가

예배실에서 계속 기도하던 어느 날, 사모님께서 제가 밥을 안 먹는다고 걱정하시며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셔서 그때 처음으로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제부터 감리교회에 가지 않고 전도관에 다니겠다고 말씀드리자 사모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수많은 목사들이 박 장로님의 부흥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다며 증거하고 교인들에게도 참석을 권유했는데, 날이 갈수록 교인들이 박 장로님께로 몰려오자 그 태도가 완전히 돌변했다고 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기뻐하며 감사를 드렸던 목사들도 지금 전도관이 이단이라며 비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진정한 목사라면 참길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른길로 인도하지는 못할망정 가로막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무엇이라 해도 박 장로님을 따라야겠다고 결심한 저는 그 후로 평택과 서울을 오가며 계속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정리 감리교회 정인화 목사와 권사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전도관은 이단이라며 가지 말라고 하는 그들에게 “저는 전도관에 가서 은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분명히 체험했고 깨달았기 때문에 앞으로 전도관에 다니지 다른 곳은 절대로 나가지 않을 겁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을 참길로 이끌어야지 왜 못 가게 막으십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적잖이 당황한 목사는 이단이라는 말만 얼버무리다가 황급히 교인들을 이끌고 되돌아갔습니다.
이북에서부터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피난 생활 중에도 교회를 찾아다니며 나름대로 진실하게 믿어 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참혹한 전쟁으로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진 데다가 남편까지 잃은 후에는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 암담할 뿐이었습니다. 제 곁에서 철모르고 잠든 자식들을 바라보면 이 아이들의 앞날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까 하는 생각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고, 차라리 자식들과 함께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받으면서 그토록 괴로웠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슴 가득 기쁨과 평안이 차오르는 것이었습니다. 티끌만 한 죄라도 짓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참되고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제 마음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저를 불러 주시고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도록 감사했습니다.
당시 제가 일하던 농가의 주인아저씨는 도일경이라는 중국인으로, 어려서 한국으로 이주해 한국인과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도 잘하고 건강하던 그분이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 속에서 열이 올라온다고 했는데, 평소에 멀쩡하다가도 어느 순간 계란만 한 불덩어리가 가슴에서 목구멍까지 치받는다며 그때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어떡하든 고쳐 보려고 여기저기 병원을 다녔지만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니 더욱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전도관에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병이 나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거동을 못해 들것에 실려 올 정도로 상태가 중했던 환자들이 안찰을 받은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상인과 다름없이 된 것을 많이 보았던 것입니다. 주인아저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안찰을 받아 보라고 권유했더니 선뜻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그다음 주 일요일예배에 참석해 안찰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슴과 배에 살짝 손을 대시며 안찰하셨을 뿐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안찰하신 부위에는 시커먼 손자국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병원을 여러 곳 다녀도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던 아저씨의 증상은 안찰을 받은 후부터 깨끗하게 없어져 완전히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 후 주인아저씨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소사신앙촌 내의 농장 책임자로 임명받았으며, 소사신앙촌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전인 1957년 2월경 농장이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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