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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기"태그에 대해 총 73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은혜 안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할 때 가장 큰 기쁨 느껴

은혜 안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할 때 가장 큰 기쁨 느껴

저는 1942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우(牛)시장에서 일하시고, 어머니는 마을 장터에서 나물을 팔며 살림을 꾸려가셨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이 일어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52년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이듬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면서 저희 남매는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살길이 막막해진 저와 형제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

“은혜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려”

“은혜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려”

(지난호에 이어) 당시 저는 전도관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예배시간이 되기도 전에 예배실에 가 있었습니다. 예배실에 가면 저처럼 먼저 온 사람들끼리 모여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에는 예배실 안에 이슬비 또는 소낙비처럼 이슬성신이 내렸습니다. 분명 비처럼 보이는데 바닥은 물론 옷도 전혀 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슬성신이 내리고 얼마 뒤에는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

이슬 같은 은혜를 받으니 그 은혜를 계속 간구하게 돼

이슬 같은 은혜를 받으니 그 은혜를 계속 간구하게 돼

예배실에서 기도드리던 중 백합꽃 향기 같으면서도 산뜻하고 시원한 향 맡아져 향취 은혜임을 깨닫게 돼 노구산 집회에서는 사람들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할 정도로 이슬 같은 은혜가 집회장에 자욱이 퍼져 반사 활동 당시 예배실에 들어갔는데 박하사탕처럼 시원한 것이 목으로 넘어가고 가슴 속이 시원해지며 처음 맛 보는 기쁨이 솟아나 저는 1941년생으로 경기도 오산에서 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살던 집 바로 옆에는 앞마당이 유난히 넓은 […]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돼”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돼”

원효로 전도관에서 기도하던 중 상상조차 못 할 만큼 은은하고 감미로운 향기 맡아 사탕처럼 달고 시원한 물이 목으로 넘어가면서 몸 전체가 시원하고 가벼워져 과거에 잘못했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떠오르면서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어느 순간 속이 시원해지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말로 형용 못 할 기쁨 흘러넘쳐 저는 1940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시면서 […]

목포전도관 개관집회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돼

목포전도관 개관집회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돼

1941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저는 10살 무렵 6.25 전쟁을 겪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은 접전지역이 아니어서 피난을 가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긴장감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귀가 터질 듯한 포격 소리와 총성이 들리는 날에는 마을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면 저는 덜덜 떨며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하고 울며 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간절한 마음을 […]

하나님 함께하시는  은혜의 증거

하나님 함께하시는 은혜의 증거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신 일로 전국에 있던 천부교인들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도 소사신앙촌에 올라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정신없이 헤매다가 산언덕 빙판에서 심하게 넘어져 오른쪽 무릎뼈가 깨지는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빙판에 넘어진 저는 상한 다리를 끌며 이를 악물고 기어가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마침 주위 분들이 집으로 옮겨 무릎을 붕대로 싸매고 생명물을 붓는 등 응급조치를 하였습니다. […]

“은혜 안에서 끝까지 이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드려”

“은혜 안에서 끝까지 이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드려”

(지난 호에 이어) 제가 이만제단에 다닐 때는 하나님께서 교인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시며 심방하시던 때였습니다. 하루는 노량진에 있는 저희 집에도 오셔서 축복을 해주셨는데, 회색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으시며 집 안으로 들어오시던 하나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집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안수해주셨습니다. 축복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시기 전에 물 떠 놓은 […]

“매일 눈물로 기도하며 애타게 찾았던 하나님을 뵙게 돼”

“매일 눈물로 기도하며 애타게 찾았던 하나님을 뵙게 돼”

저는 1937년 경기도 이천에서 6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저희 집은 지독하게 가난했습니다. 힘겹게 농작물을 수확해도 대부분을 공출(일제강점기 시절 농민들이 생산한 농작물의 일정량을 국가에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제도)로 바쳐야 했기에 가족들이 먹을 양식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남들처럼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처지가 슬퍼서 어린 나이에도 혼자서 자주 울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

(지난 호에 이어) 그 후로 저는 하나님께서 “일 열심히 해”라고 하셨던 말씀을 잊지 않고 반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진주전도관에는 주일학생이 무척 많아서 100명이 훌쩍 넘었는데, 그중에는 태주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태주는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워서 어머니의 풀빵 장사로 겨우 입에 풀칠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태주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던 차에 태주 어머니가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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