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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제단(1) 착공과 심령 대 부흥회

원효로 전도관은 밀려오는 인파 감당하지 못해
발행일 발행호수 2070

◇ 초창기 천막집회에서 외치시는 하나님. 오른쪽은 이만 제단 터를 닦고 있는 불도저(1957년 사진)

기성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여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으나 성신의 역사는 더욱 놀라운 속도로 퍼져 가고 있었다. 몇 십 명이 모여 원효로 전도관을 시작한지 몇 개월이 안 되어 전국적으로 수 백 곳의 전도관이 세워지고 신자들은 수십 만 명으로 늘어났다. 원효로 전도관은 더 이상 밀려드는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 동양 최대의 교회를 세우시게 되었다. 서울 제 1중앙 전도관 혹은 이만 제단이라고 불리게 되는 천부교 최초의 대형 교회부지로  하나님이 정하신 곳은 마포구 청암동이었다. 이곳에서는 이만 제단 기공과 동시에 1956년 7월 18일부터 심령 대 부흥회가 개최되었다.

이만 제단이 세워질 마포구 청암동은 원래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이 야산을 사람의 힘으로 깎아서 대 제단 부지로 만들려면 많은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부인회 총무였던 최효신 권사는 해군 참모차장 김일병 소장의 부인으로서, 임영신 중앙대 총장, 장병림 서울대 교수, 홍우 교수, 홍경섭 수도공대 학장 등과 함께 원효로 전도관에 열심히 나오고 있었다. 하루는 최권사가 하나님께 나아와 다음과 같이 간청하는 것이었다. “이대 부속 병원에 제 친구가 말기 암(末期 癌)으로 누워 있는데 한번 오셔서 축복해 주시옵소서.”

최권사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전도사를 보낼 터이니 믿고 같이 가 보세요.” 하셨다. 내심 하나님을 직접 모시기를 바랐던 최권사는 전도사를 대신 보낸다는 말씀에 섭섭하였으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전도사와 함께 친구의 병실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그런데 최권사가 눈을 감고 기도할 때 보니 하나님께서 병실에 오신 것이었다. 놀란 최권사가 눈을 뜨고 보아도 하나님께서 분명 병실에 와 계셨다. 예배를 마친 최권사는 다음날 병실로 자기 친구를 방문하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말기 암 환자였던친구가 하루 밤새 완쾌되어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었다.

최권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만 제단 터는 제가 닦겠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니 하나님께서 웃으시며 “그렇게 하실래요?” 하셨다. 최권사는 즉시 당시에는 흔치 않던 불도저 한 대를 해군의 소개로 임대하여 이만 제단 터를 순식간에 닦아 놓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불도저로 산을 깎아 제단 터를 마련

그러나 전도관 신도들은 자발적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면서 이만 제단 건립에 발 벗고 나섰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기성교회의 핍박 속에서 한국 제일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은혜를 받게 된데 대하여 끓어오르는 자부심과 기쁨을 느꼈다. 아무리 만류하여도 할머니들까지 나서서 돌이라도 한 개 옮기는 대열에 참여하려고 아우성이었다.

1956년 7월 30일자 신앙신보는  이만 제단 터 위에서 있었던 부흥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종교 역사상 미증유(未曾有)의 불길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전도관부흥협회에서는 서울마포에서 지난 18일부터 심령 대 부흥회가 있었는데 수 만 명이 운집하여 은혜를 받았다. 신자들의 기대와 경이, 기성 교계의 비난과 억측이 쏟아지는 속에 역사적인 2만 명 전도관 신축기지에서 개최된 박태선 장로의 하기 심령 대 부흥회는 10일간에 걸쳐 하나님의 감동하심과 성도들의 받은 은혜로 큰 성황을 이루었고 신유 이적 또한 놀라웠다.

동 부흥회를 고대하던 사람들은 지난 18일 개회 벽두부터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동 집회를 찾아 드는 신자들의 수는 증가 일로였으며 끝나는 날이 가까울 무렵에는 세워둔 천막에 모두다 수용할 수가 없게 되는 지경이 되다가 동 집회는 지난 29일 아침까지 연장한 끝에 폐회하였다.

집회장에 한번 앉은 신도들은 집회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고 연 12일을 꼬박 금식으로 보낸 성도들도 부지기수 였으며 중간에는 해병대 군악대가 와서 찬조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대성황을 이룬 부흥집회는 앞으로 시작될 이만 제단 공사에 많은 힘을 불어 넣게 되었다.

다음은 같은날 신문에 게재된 하기 심령 대 부흥회 스케치이다.
“사실 2만 명 수용의 전도관 기공은 기성 교계와 일반 교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한 것이어서 한국 교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강이 여의도 앞에서 굽이치는 마포 택한정산은 경치도 좋거니와 남서쪽 서울 일대가 훤히 눈 아래 전개되는 산꼭대기, 여기에 2만 명 수용의 대 전도관이 건립되니 땅 위에서 보다도 하늘 위에서 더욱 기뻐하실 듯 하다 .

부흥회 이모저모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모양들도 가지가지… 오줌이 마려워 천상 나가야겠는데 일어서기만 하면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뚱뚱보 아줌마가 자리를 차지하여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오줌은 자꾸 마렵다. 밖에 나가 자리를 빼앗기면 뒤에 앉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절대 양보할 수가 없다. 그는 참고 참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옳지 도시락이 비어있지’.
가지 말라고 온갖 훼방을 하여도 이렇게 2-3만이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훼방이 없으면 택한정산이 한강에 가라앉을 정도로 인파가 넘칠 것이 분명하다. 집회가 시작되면서부터 거의 과반수 교인이 꼬박 예배가 끝나도록 금식한다니 열흘을 굶는 셈이다. 이러고도 밥 생각이 없으니 사람이 꼭 밥으로만 사는 것도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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