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360억 개 품은 ‘괴물 블랙홀’
역대 최대·최고 크기 블랙홀 발견…“이론적 상한 근접”
중력 렌즈 효과로 관측, 별 이동 속도로 질량 알아내
동반 은하들을 모두 흡수한 화석은하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은 CAPERS-LRD-z9 은하에서 관측됐다.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은 두꺼운 가스 구름에 둘러싸여 있어 은하가 독특한 붉은색을 띠는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텍사스대 제공)
별은 빛을 내뿜고 블랙홀은 빛을 가둔다. 블랙홀은 말 그대로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초고밀도 천체를 말한다. 별의 일생에서 보통 태양보다 훨씬 큰 별이 핵융합 에너지를 소진하고 붕괴하는 과정에서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뒤 블랙홀이 만들어진다.
우리은하를 포함해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는 태양의 수십만 배가 훨씬 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주에서 밀도가 높은 중심부터 별이 형성되고 중력 붕괴가 일어나면서 자연스레 은하의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이 형성된다. 이 거대한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자신이 속한 은하의 구조와 별 형성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 포츠머스대와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연방대(UFRGS) 천문학자들이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블랙홀을 발견해 영국 왕립천문학회월보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허블우주망원경과 유럽남방천문대(ESO)의 초거대망원경(LLT)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360억 배로, 우리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A*(사지테리어스 에이스타)보다 1만 배 가까이 더 무거운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이는 우주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론적 상한치에 가깝다”고 밝혔다. 한 연구에 따르면 138억 년 우주 역사를 전제로 할 때 블랙홀이 도달할 수 있는 질량의 이론적 한계는 500억 태양 질량이다.
‘우주 말발굽’ 중력렌즈 은하계에서 발견된 초대질량 블랙홀은 중앙의 주황색 은하(전경 은하) 중심에 있다. 외곽에는 전경 은하의 중력으로 인해 빛이 말발굽 모양의 고리로 휘어진 더 먼 거리의 파란색 은하(배경 은하)가 있다. (출처: 포츠머스대 제공)
이 블랙홀은 2007년에 발견된 ‘우주 말발굽’(Cosmic Horseshoe)라는 이름의 중력렌즈 은하계에 자리 잡고 있다. 우주 말발굽은 중앙에 있는 56억 광년 거리의 전경 은하(LRG 3-757)와 외곽에서 고리를 이루고 있는 190억 광년 거리의 배경 은하로 이뤄졌다. 배경 은하에서 나온 빛이 전경 은하의 중력 영향으로 말발굽처럼 휘어진 모습이다. 마치 빛이 렌즈를 통과할 때 휘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런 현상을 중력렌즈 또는 ‘아인슈타인 링’이라고 부른다.
전경 은하가 워낙 거대해 배경 은하가 형성한 말발굽은 거의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다. 이 은하의 질량은 우리은하의 100배로 역시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것 중 가장 큰 은하다. 은하가 클수록 그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도 더 커진다.
연구를 이끈 포츠머스대의 토마스 콜렛 교수(천체물리학)는 “이 블랙홀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큰 블랙홀 10개 중 하나이며 아마도 가장 거대한 블랙홀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해 이 블랙홀의 존재와 질량을 알아냈다. 블랙홀의 존재는 빛이 휘어지는 중력 렌즈 효과로 알아냈고, 블랙홀의 질량은 은하 안쪽에 있는 별들이 초속 400km의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점에 기반해 측정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초대질량 블랙홀과 은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콜렛 교수는 “둘 사이의 크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은하가 커지면 물질을 중심의 블랙홀로 흘려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물질의 일부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블랙홀을 키우지만, 대부분은 블랙홀 주변에서 마찰을 일으켜 퀘이사라고 불리는 매우 밝은 발광체가 된다. 퀘이사가 은하로 방출하는 열과 빛은 가스 구름이 응축되는 걸 막아 새로운 별 형성을 방해한다.
연구진은 우주 말발굽의 전경 은하는 화석은하군에 속한다고 밝혔다. 화석은하는 우주에서 중력에 의해 묶여 있는 가장 거대한 구조물의 최종적인 단계다. 수십억 년에 걸쳐 은하군에서 가장 무거운 은하가 다른 동반 은하들을 포획해 합쳐진 ‘외로운 거인’ 은하다.
콜렛 교수는 “원래 동반 은하에 있던 초대질량 블랙홀이 모두 합쳐져 이번에 발견한 초대질량 블랙홀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따라서 우리는 은하와 블랙홀의 최종 국면을 동시에 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