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묻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심리적 장치인가?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는가.
『2023년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가톨릭·개신교·불교를 막론하고 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설문에 ‘구원’ 보다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이 통계는 초월적 진리나 사후세계보다, 현재의 불안을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는 기능이 종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은 신의 실재, 기적, 구원이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에게 제공한 것은 공동체의 소속감, 죽음 앞의 위안, 그리고 심리적 안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은 오늘날 상담, 명상, 사교 활동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종교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위로’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그 위로를 ‘절대적 의미’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에서 얻는 안정감은 개인에게 매우 실제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곧 신의 실재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을 초월적 존재의 증거로 해석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할 때, 삶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종교는 이 세계를 견디게 만드는 장치, 즉 불확실성·죽음·고통·무의미라는 실존적 공포를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되고 정교한 심리적·사회적 장치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는 아편처럼 작용한다”는 독일 철학자 노발리스(1772~1801)의 통찰을 떠올리게 된다. 아편이라는 마약은 고통의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심각하다. 마약이 주는 효과는 매우 강력해서 그것을 심리적 안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고 환각에서 깨어나는 순간, 인간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실존의 끔찍한 맨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이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마더 테레사 수녀다. 그녀는 평생 신의 뜻을 실천하며 헌신하겠다는 명목으로 인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수십 년을 보냈고, 세계적 명성을 쌓으며 영적인 평안과 만족 속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후에 그녀의 편지가 공개되었을 때,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저는 무엇을 위해 일합니까? 제 안에는 마치 모든 것이 죽어 버린 듯 끔찍한 어둠이 있습니다. 그 고통과 괴로움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고통입니다. 천국, 영혼. 왜 이것들은 단지 말일 뿐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요? 나는 사람들의 영혼이 어디로 가도록 돕는 것입니까?” (“What do I labour for? … there is such terrible darkness within me, as if everything was dead. … In my soul I feel just that terrible pain of loss—of God not wanting me—of God not being God—of God not really existing. … Heaven—souls—why these are just words—which mean nothing to me. I help souls—to go where?”)
『마더 테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 中
테레사가 70년 가까이 영적 지도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은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거의 평생 신의 임재를 느끼지 못했음을 증언한다. 그녀 역시 종교가 주는 내면의 평안을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신의 부재가 주는 끔찍한 공허 속에서 평생을 버텨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의 임재가 없는 신앙의 가장 비극적인 얼굴이다.
그런데 가톨릭은 테레사의 고통스러운 고백을 오히려 그녀의 신앙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재해석했다. 신의 임재 없이도 신앙을 지킨 것이 더 위대한 믿음이라는 논리였다. (‘마더 테레사의 신앙 위기’, 타임지, 2007년 8월 23일 자) 그러나 이 해석이야말로 종교적 왜곡의 정점이다. 신의 부재를 향한 절규조차 신앙의 증거로 둔갑시키는 것은 신의 응답이 없다는 치명적 진실을 숨기고, 개인의 고통마저 체제 유지의 도구로 삼아버리는 윤리적 기만이기 때문이다.
신의 임재가 전제되지 않는 종교적 평안은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 속임수에 불과하다. 초월적 진리를 증명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심리적 위안이라는 ‘마약’을 처방하며 절대적 진리 행세를 이어가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종교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담보로 현실의 기득권을 누리는, 인류를 상대로 한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사기 시스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