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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삶 탄광촌, 영원의 과거를 여행하다

주니어 기자들, 강원도 탄광문화촌에 가다
발행일 발행호수 2391

2012년 2월 22일 하늘은 맑음.

어제는 날씨가 흐려서 오늘도 흐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친구들과 출발할 시간엔 하늘이 맑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강원도 영월읍 마차리에 있는 강원도 탄광문화촌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큰 산을 넘어가면 조그마한 마차리가 보였다. 그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강원도 탄광문화촌이 있다. 탄광문화촌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 영월의 과거가 써 있었다.

영월의 과거
영월군은 옛날부터 광물이 많기로 알려진 고장으로 고문헌에서도 영월의 토산물로서 석철과 중석을 꼽고 있다. 그러나 영월의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 합방한 후 그들의 자본주의 발전을 뒷받침 하기위한 일환으로 한국에서의 광산개발을 시작한 후이다. 특히 중소광업체가 본격적으로 조업을 시작한 것은 1930년대 후반이다. 그 후 1948년 상공부 전기국으로 이관되어 운영 되었으나 6·25전쟁으로 일시 휴광하였다. 1957년도 당시의 영월은 총 13개 광구에 4,228명이 종사하여 도내에서 삼척에 이어 두 번째로 광업이 성한 지역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영월이 탄광촌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냈던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좀 더 둘러보기 시작했다.
탄광생활관에서 첫 번째로 들어간 곳은 교실이었다. 교실 안에 책가방과 책상 의자가 있었고 난로 위에는 도시락이 있었다. 옛날에는 학교시설이 부족하여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마차상회를 보았다. 마차상회 안에는 옛날에 팔던 물건들이 있었다. 마루 밑에 숨어있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웠고 개조심이라고 써 있는 기둥 옆에 있는 강아지도 귀여웠다. 탄광문화촌에 같이 간 동생은 강아지를 보고 진짜인줄 알고 강아지 목줄을 잡고 산책하려고 해서 그걸 보며 한참 웃었다.

그리고 공동변소가 보였다. 화장실 안에 여자아이가 볼일을 보고 남자아이가 망을 보는 장면이었다. 옛날에는 밤에 혼자 가는게 무서워서 한 사람 더 같이 갔단다.

버스정류장. 영월 마차리 탄광촌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버스였다. 3교대 근무로 집과 탄광을 반복해서 오가는 광부들에게는 버스정류장이 또 하나의 보금자리였다.

탄광생활관에서 나와 탄광체험관으로 가는 길에 압축기가 있었다. 갱내에서는 가스 폭발 위험성 때문에 전기나 기름 등의 연료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기 압축기를 통해 갱내 기계를 작동하였다. 압축기 바람은 발파한 뒤에 환기를 시키는 것에도 상당히 중요했다.

탄광(갱도) 체험관에 들어갔는데 안전제일 모자하고 옷이 있었다. 모자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광부가 된 것 같았다. 그 안을 들어갔는데 굴진이 있었다. 굴진은 지하 깊숙이 매장된 석탄을 생산하기 위해 길게 파놓은 굴이었다. 그 굴을 따라 가면 탄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파는 탄층에 착암기나 오거드리로 발파 구멍을 뚫고 여기에 폭약을 장전하여 발파함으로써 석탄을 채굴한다. 동발이 설치되어있었는데, 탄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갱도 양쪽에 세우는 갱의 지주목을 동발이라고 한다.

탄광의 갱도 끝에 있는 채굴이나 굴진 작업장을 막장이라고 한다. 입구 쪽으로 다 나와선 탄광굴의 한쪽 벽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상의 상황이었지만 깜짝 놀랬다. 실제로 광부들이 이렇게 굴이 무너져서 많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왠지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캄캄한 굴 속에서…

갱도체험관을 나와 그 옆에 실제 탄광굴이 있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며 광부아저씨들을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생 막장이라 불리는 탄광을 선택했던 사람들”
최혜윤(초6) / 영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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