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교회 최 선 희 씨
자비하신 그 음성, 아직도 귀에 쟁쟁해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가는 것이 당연했고,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또래친구들과 노는 것이 마냥 즐거워서 축복일에 가도, 교회를 가도 친구들이 우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즈음, 축복일에 가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은 반사 선생님께서 맨 앞으로 가라고 해서 저희들은 하나님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눈앞에서 하나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뻐 그 다음부터는 매달 축복일이면 제일 먼저 달려가 하나님 바로 앞에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냥 즐거웠던 저는 하나님을 좀 더 뵙기 위해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하나님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저희들을 항상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셨고 “예쁘다”고 해 주셨습니다. 그날들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한 장면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또래친구들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으면서 점점 축복일에 가는 것이 싫어졌고, 교회도 어머니의 떠밀림에 억지로 가곤하였습니다.
그렇게 20대가 되었고 국가경제는 IMF 직후로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저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무엇이든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일 먼저 의지하고 찾게 되는 분이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성신사모일, 새벽 일찍 동산에 올라가게 되었고, 그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계속해서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10여 년 동안 교회와 거리를 두고 있던 저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으면 먼저 교회에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고 관장님께서 반사 선생님을 해보라는 제안도 한번 거절하였을 때였습니다.
동산 앞에 선 순간 흐르는 눈물과 함께 다시 한번 관장님께서 제안을 하신다면 두말 않고 받아들이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새로 오신 관장님께서 제게 반사 선생님을 해보라고 하셨고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이 컸지만, 하나님께 드린 약속이었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셨던 듯하여 두려웠습니다.
그 이후부터 고민들도 조금씩 해결되고, 어려웠던 일들도 차차 풀려가면서 누군가가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일요일에 잠깐이나마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차량 운전을 하는 정도로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멀어져 본 시간동안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듯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껴보니 이 길을 떠나서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한없는 미소와 따뜻한 손길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야
깨닫고 생각하며 감사함을 느껴
철없던 우리에게 한없는 미소와 따뜻한 손길을 주시며 항상 “예쁘다” 하셨던 하나님의 뜨거웠던 가지에 대한 사랑을 이제나마 생각해봅니다.
방황하여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도 꿈으로써 죄를 짓고 있음을 상기시켜주셨고, 정신적으로 힘들어 기도로 매달리면 바로 옆에서 듣고 계신 듯 길을 내어 주셨습니다. 마치 길을 가다 잘못 된 길로 들어설 듯 할 때면 무엇으로든 바로 들어설 수 있게 곁에서 안내하여 주시는 듯합니다.
지금의 저는 너무도 부족하고 미약하여 여전히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겸손하고 중심 있게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