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2월 17일 – 동대문시장에 450평 ‘시온센타’ 개장
종로4가와 종로5가 사이 동대문시장에 새로 ‘시온센타’가 개장되었다는 기사가 1962년 12월 17일 신앙신보 1면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경제재건을 모토로 티 없는 양심의 바탕 위에서 우량한 물품을 생산하고 있는 신앙촌에서는 시내 동대문시장 2층에 건평 450평의 ‘시온센타’를 개장하고 지난 10일 오픈하여 주로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한 백여 종의 상품을 판매해오고 있다. 한산한 일반 다른 상점에 비해 점포내외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오전 10시까지는 특별소비조합원들만이 물건을 살 수 있으며 일반 고객은 10시 이후부터 사게 되어 있는데 앞으로 특별소비조합원 전원은 시온복을 착용하게 될 것이라 한다.
소사 제1 신앙촌의 재단법인 시온학원 산하 70여 공장과 덕소 제2 신앙촌의 시온산업주식회사 산하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일단 이곳에 옮겼다가 전국적으로 산재되어있는 직매장으로 팔려나가게 된다. 동 시장 2층 450여 평을 수리하여 양품부와 제과부 가구부 등으로 구분하여 진열되어 있으며 앞으로는 3층 까지도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한편 『백합원』란에는 “동대문시장 일우에 시온센타가 세워졌다. 소사와 덕소 양쪽에서 오는 버스도 이 센타를 종점으로 서로 만나고 교인들과 소비조합원들의 제품이용에 중심처가 되는데 앞에는 청계로로 질주하는 차량에 차조심, 번잡한 시장 내에서는 돈조심, 뭇 사람의 시선의 대상임에 말조심이 요청된다. ‘말·돈·차’는 인생 필수 과목이렸다.”고 하였다.
또 『백합원』란에는 ‘교장의 공갈’이라는 제목으로 경기도 안성군 공제국민학교 최모교장이 아침 조회시간에 “누가 전도관에 나가라 했느냐. 누가 인도했느냐.” 등등의 언사로 전도관 다니는 학생들을 공공연히 겁을 주었다는 기사와 함께 “아직도 교육계에 이러한 비민주주의적 교육가가 있다”라고 하였다.
박근영기자pky@theweek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