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1> 실종소녀는 바티칸에 묻혀 있다?
심층취재 <1> 성스러운 바티칸의 지하 묘지이탈리아 최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암매장 묘지를 발굴하는 작업이 지난 7월 11일 로마에서 있었다. 이 작업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암매장 의혹을 받는 묘지가 바티칸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다스리는 가톨릭의 성지 바티칸은 암매장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특급 미스터리는 1983년 15세 소녀가 로마 한복판에서 사라진 실종 사건에서 시작됐다.
40년 가까이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미궁을 헤매는 사건을 3회에 걸쳐 심층 취재한다.
오를란디 아버지는 바티칸 시청에 근무하며 바티칸은행의 거래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당시 바티칸은행은 금융 사기범 로베르토 칼비와 결탁해 갖은 편법으로 재산을 증식했는데 이때 감춰진 불법과 비리를 오를란디 아버지가 포착했고 그를 협박하기 위해 오를란디를 납치했을 거라는 의혹이었다.
그러나 2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의혹은 점점 인멸돼 갔다. 이 사건처럼 피해자 시신조차 찾지 못한 경우 시간은 범인의 편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증거는 사라지고 수사는 힘을 잃기 때문이다. 오를란디를 찾는 싸움은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오를란디 납치범은 시간을 이용하는 계략에 천재적이었다.
오를란디 실종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굳어지는 듯했다. 이때 잊혀져가던 오를란디를 다시 불러낸 사람이 있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익명의 남자였다.
그는 2005년 이탈리아 라이(RAI) TV의 실종자 찾기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산타 폴리나레 성당에 오를란디 사건의 실마리가 있다고 했다. 성당에 엔리코 데 페디스의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을 열어 보라는 것이었다. 성당에 오를란디가 암매장됐다는 것도 아니고 엉뚱하게 데 페디스의 무덤이 있다는 제보였지만 이것은 잠잠해진 여론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엔리코 데 페디스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데 페디스는 범죄 조직 ‘반다 넬라 말리아나’의 악명 높은 두목이었다. 그의 무덤이 있다는 산타 폴리나레 성당은 6세기에 설립된 곳으로 18세기 교황 비오 6세를 비롯해 추기경의 무덤이 있는 가톨릭의 성지였다. 그곳에 갱단 두목이 묻혔다는 제보는 충격을 던졌다. 여론은 성당에 정말 갱단 두목이 묻혀 있는지 확인을 요구했지만 바티칸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마지못해 결국 갱단 두목과 실종 소녀는 무슨 관계인지 전혀 밝히지 못한 채 수사는 중단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22년 만에 희미하게나마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으나 범인들은 다시 용의주도하게 뱀이 굴속으로 숨어들 듯 망각의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이 망각을 깨운 것은 이탈리아의 안사(ANSA) 통신이었다. 2012년 바티칸의 묘지 거래를 폭로하고 나선 것이었다. 바티칸이 10억 리라(약 7억 5,000만원)를 받고 데 페디스를 성당에 묻어 준 사실을 보도했다. 바티칸이 마약 밀매 조직의 검은 돈을 받고 가톨릭의 성지를 팔아먹은 격이었다. 로마교구의 총대리 주교인 우고 폴레티 추기경은 매장을 허락하면서 갱단 두목에게 축복을 내린 사실까지 밝혀졌다.
진실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바티칸과 갱단의 음흉한 관계에 경악했고 의혹은 더욱 구체성을 띄었다. 바티칸이 갱단 두목을 사주해서 오를란디를 납치 살해했을 거라는 의혹이었다. 이때부터 언론은 갱단 두목보다 실종된 오를란디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결국 바티칸은 갱단 두목의 무덤을 공개했지만 그것은 더 큰 의혹을 낳았다. 한 사람의 유골만 안치되어야 하는 유골함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수백 개의 유골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오를란디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암매장 됐을지 모르는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짜 흥미로운 일은 그다음에 있었다. 유골의 유전자를 분석한다는 보도를 끝으로 사건이 수면 아래로 사라진 것이다. 수백 개의 유골 중에 오를란디가 있는지, 아니면 유골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보도되지 않은 채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2018년에 날아든 편지는 일대 반전을 일으켰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제보자는 오를란디가 독일 공주 묘지에 암매장됐다는 정보와 함께 무덤 사진까지 동봉했다. 갱단 두목 무덤에 있었던 수백 개 유골 중에 오를란디는 없었다는 것이 그제야 밝혀지고 또다른 장소가 암매장지로 지목된 것이었다.
이번에는 암매장지가 바티칸 내부의 묘지였기 때문에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여론이 들끓었다. 바티칸 내부 묘지에는 교황의 허가가 있어야 매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를란디 실종 당시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였다.
언론은 바티칸의 공주 무덤 발굴을 앞두고 기사를 쏟아내며 관심을 보였다. 2019년 7월 11일 발굴 현장에는 법의학자와 함께 백발이 성성한 오를란디의 오빠가 지켜봤다. 36년간 찾아 헤맨 동생, 유골이라도 찾아 위로해 주고 싶다고 절규했으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무덤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오를란디의 유골은 물론, 원래 있어야 할 독일 공주의 유골마저 온데간데 없었다. 텅 빈 무덤으로 인해 이 사건은 암매장 의혹에다 유골 실종까지 더 큰 미스터리에 빠졌다. 웬만한 스릴러를 능가하는 바티칸판 실종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36년간 계속된 의혹과 추적할수록 드러나는 더 큰 의혹, 그리고 교묘하고 끈질긴 지연 수법으로 추적자들을 농락하는 술수와 계략. 범인이 사라진 이 사건은 한 집단의 일상적인 범죄 패턴을 보여 준다. 다음 호에서는 실종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들과 그들의 검은 거래를 추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