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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60>노예무역의 주범이 배상 책임의 주체여야 한다①

발행일 발행호수 2667

2022년 7월, 한 국제단체가 바티칸을 찾아갔다. 이들이 바티칸을 방문한 목적은 기도도 순례도 아니었다. 대서양 노예무역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함이었다. 교황청은 그자리에서는 후속 논의 의사를 밝혔지만, 이후 배상에 관한 어떠한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4년 뒤 상황이 달라진다. 2026년 3월 25일 유엔 총회에서 대서양 노예무역을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며 ‘배상적 정의(reparative justice)’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결의안은 교황의 칙서들이 직접 노예제를 승인하고 합법화했다며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명시해 놓았다. 이제 바티칸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공식적인 행동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교황청은 국제적인 배상 요구에 어디까지 응답했을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2022년 바티칸에 제출된 배상 청원서를 중심으로 노예무역에 대한 교황청의 책임과 그 배상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 바티칸에 배상적 정의를 요구하다

2022년 바티칸을 찾아간 단체는 배상·치유 국제 연대(GCRH:Global Circle for Reparations and Healing)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배상적 정의와 인종 갈등 치유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 네트워크다. 여기서 ‘배상적 정의’란 가해자를 처벌하는 ‘형벌적 정의’와 달리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변상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배상적 정의는 금전 배상뿐 아니라 원상회복, 공식 사과와 피해 인정, 빼앗긴 재산·문화재의 반환, 피해 공동체 지원, 교육·기념사업,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의 조치를 포괄한다. 2022년 7월 18일, 배상·치유 국제 연대 대표단은 ‘교황청에 보내는 배상 추진 청원서(Presentment to the Holy See in Furtherance of Reparations)’를 제출하면서, 교황청 관계자들과 회의를 갖고 완전한 책임 인정과 사과, 노예화와 관련된 교황 칙서의 철회, 배상위원회 설치와 재정적 배상 등을 요구했다.<자료1>

<자료1> ‘교황청에 보내는 배상 추진 청원서’ 표지와 2022년 바티칸에 방문한 배상·치유 국제 연대 대표단과 바티칸 관계자들
2022년 7월 18일, GCRH대표단은 교황청 관계자들과 공식 회의를 갖고 배상 청원 성명서를 전달했다. 청원서는 “아프리카의 후손인 우리는 15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아프리카인들에게 억압과 고통을 초래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명령, 축복, 묵인, 그리고 조장된 죄악에 대한 정의와 보상을 요구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증거 자료들을 제시하며 교황청의 책임을 명시하고, 교황청의 완전한 책임 인정과 사과, 노예화와 관련된 교황 칙서의 철회, 배상위원회 설치와 재정적 배상 등을 요구하며 마무리 된다. 사진은 왼쪽부터 미국 흑인 배상위원회(NAARC) 위원장 론 대니얼스 박사, 배상 치유 국제 연대 정책 코디네이터 아마라 에니야 박사, 교황청 문화평의회 사무총장 폴 티그 주교, 뉴욕타임스 언론인 니콜 한나 존스, Reparations United(배상 연합) 책임자 캠 하워드, 폴 티그 주교의 보좌관 (출처: NAARC)

이때 제출한 청원서 내용의 대부분은 교황청이 노예무역에 대해 배상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청원서는 “아프리카의 후손인 우리는 15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아프리카 대륙과 디아스포라 전역에서 아프리카인들에게 억압과 고통을 초래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명령, 축복, 묵인, 그리고 조장된 죄악에 대한 정의와 보상을 요구합니다.(We, descendants of Africa, seek redress for sinful actions ordered, blessed, condoned, and promoted by the Roman Catholic Church that paved the way for the oppression and suffering of African people on the continent and across the Diaspora from the 15th century to the present moment.)”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며, 배상을 요구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로 교황들의 칙서를 꼽았다. 해당 내용을 발췌 및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15세기 유럽인들과 전 세계 사람들의 도덕적 양심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는 기관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비인간화하고, 상품화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도왔다. 예수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로마 교황은 가톨릭 왕국(Reino Católico)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영토 확장 계획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가톨릭교도들의 입장에서는) 지상에 계신 그리스도인 교황이 아프리카에 대한 전쟁을 승인하고 아프리카 남녀노소의 대서양 인신매매와 영구적인 노예화를 지지하고 후원한다는 칙서를 발표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1452년, 교황 니콜라스 5세는 ‘둠 디베르사스(Dum Diversas)’라는 교황 칙서를 통해 포르투갈에게 아프리카 흑인들을 영구 노예로 만들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여러 교황들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인신매매하고 노예로 삼는 것, 그리고 유럽의 제국주의와 아프리카 식민화를 정당화했다.”

청원서의 위 내용은 다른 가해국들보다 가톨릭에 더 무거운 책임을 묻고 있다. 국가와 상인에게는 실행의 책임을 묻는다면, 가톨릭에는 그 이전 단계의 더 근본적인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가톨릭 국가 군주들은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 교황에게 사전 또는 사후 허락을 구했다. 이는 영토 침탈과 노예화가 불법이 아니었던 당시에도 인간이 가진 보편적 양심으로서 그 행위가 죄악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당시 도덕적 최고 권위기관으로 믿어져 온 조직에서 이를 금지했다면, 대규모의 대서양 노예무역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오히려 이 죄악을 그들 신의 이름으로 허락하고 축복했다. 이는 범죄 행위에 신학적·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유럽 전역에 대서양 노예무역이 횡행하게 되는 주요한 토대가 되었다.

특정한 위치에 있는 자가 해악을 막을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법률적으로 작위의무(作爲義務, Duty to Act)를 위반한 부작위범에 해당한다. 2026년 3월 25일 채택된 UN 결의안으로 국제사회의 책임 추궁이 거세지는 가운데, 5월 25일 발표된 교황 레오 14세의 회칙「마니피카 후마니타스(Magnifica Humanitas)」175항에서도 ‘인신매매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거나 어떤 식으로든 용인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과거 노예제도 시대의 죄악에 공모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부작위만으로도 범죄인데, 당시 교황청은 노예화를 허가하고 정당화하는 데 최고 수준의 권위를 행사했다는 점에서 가장 우선 책임을 물어야 할 핵심 주체로 지목된다. 나아가 그 권위의 크기와 역사적 영향력을 책임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가장 무거운 제도적 배상책임을 물어야 할 주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대서양 노예무역의 책임은 흔히 포르투갈과 스페인,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노예무역에 참여한 국가와 상인들에게 집중되어 왔다. 이들이 가시적인 실행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대서양 노예무역의 시초는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로 꼽히는데, 이에 청원서는 그 출발점이 되는 포르투갈부터 가톨릭의 막대한 영향 아래 움직였음을 명시한다.

다음으로는 가톨릭 왕국 포르투갈의 건국 배경을 짚어본 뒤, 포르투갈이 가톨릭에 크게 의존해 움직였음을 증명하는 청원서의 내용을 살펴본다.

▣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 대서양 노예무역의 시초가 되다

포르투갈은 유럽의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로, 그 건국 과정부터 가톨릭교회가 깊게 관여하였다. 원래 레온 왕국에 속한 작은 백작령이었던 포르투갈은 1143년 교황 특사 귀도 데 비코 추기경의 중재 덕분에 레온 왕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자료2> 포르투갈 초대 국왕, 가톨릭 군주 아폰수 1세
1143년 포르투갈 독립을 이끈 초대 국왕. 독립 후 아폰수 1세
는 자신을 로마 교황의 기사라 선언하며 앞으로 포르투갈 왕국을 교황청에 봉헌하고 매년 공납을 바치겠다는 서신을 교황청에 보낸다. 1147년에는 제2차 십자군과 함께 리스본을 정복하는 가톨릭계의 공을 세우고, 1179년 교황에게 왕위를 공식 인정받는다. (출처: 위키미디어)

<자료3> 1179년 교황 칙서「마니페스티스 프로바툼」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포르투갈 왕국과 아폰수 1세의 왕위를 공식 인정하고, 그가 정복한 영토의 통치권을 확인하는 칙서「마니페스티스 프로바툼」을 내린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가톨릭 왕국으로서 자리매김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4년 뒤인 1147년, 초대 국왕 아폰수 1세는 제2차 십자군과 연합하여 리스본을 정복하며 가톨릭 군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큰 공로를 세웠고,<자료2>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포르투갈 왕국과 아폰수 1세의 왕위를 공식 인정하고, 그가 정복한 영토의 통치권을 확인하는 칙서「마니페스티스 프로바툼(Manifestis Probatum)」을 내린다.<자료3> 이로써 포르투갈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가톨릭 왕국으로서 자리매김한다. 그 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대는 훌륭한 아들이자 가톨릭 군주로서, 끈질긴 노력과 군사적 위업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적대하는 자들을 과감히 섬멸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지런히 전파함으로써, 거룩한 교회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로를 세웠으며, 그리하여 후세에 기억할 만한 이름과 본받을 만한 모범을 남겼음이 명백히 입증되었다. 교황청은 하느님의 섭리가 백성을 다스리고 구원하도록 선택한 이들의 정당한 간구를 효과적으로 들어주어야 한다.

사도적 권위로 그대의 고귀한 통치권에 포르투갈 왕국과 더불어, 하늘의 은총으로 그대가 이교도들의 손에서 정복한 모든 지역까지 포함함을 허락하고 확인한다. 또한 그대의 후계자들에게도 동일한 허가를 내리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니 가장 사랑하는 아들로서 계속 거룩한 로마 교회의 영광과 봉사에 겸손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교회의 이익을 수호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널리 전파하는 데 힘쓰라.”

교황의 승인과 격려를 받은 포르투갈은 다른 나라들의 영토를 계속 침공하고 약탈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그런데 정복이 주는 이익은 영토 확장에만 있지 않았다. 붙잡은 포로들을 노예로 삼아 노동력을 착취하고 시장에서 매매하기도 하니, 노동력과 재산 등의 새로운 수입원이 함께 늘어났던 것이다. 침략과 노예화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포르투갈은 마침내 그 무대를 더 넓은 곳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프리카였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시장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415년 북아프리카의 세우타를 점령하면서부터다.<자료4>

<자료4> 1415년 북아프리카 세우타를 정복한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
엔히크 왕자는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의 아들로, 아버지 주앙 1세가 이끈 세우타 원정에서 상륙부대를 지휘했다. 이후 아프리카 탐험과 정복 원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일명 ‘항해왕자’로 불리게 되었으며, 포르투갈의 대서양 진출을 이끌었다. 그는 교황청의 후원과 지원을 받으며 아프리카에 유럽 식민지화의 씨앗을 뿌리고, 아프리카인들을 인신매매하여 노예로 삼는 원정대를 후원하고 지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배상·치유 국제 연대의 청원서는 세우타 점령 이후, 포르투갈의 침략 행위가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418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João) 1세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십자군 원정을 시작하기 위해 교황의 권위를 요청하자, 교황 마르틴 5세는 칙서「사네 카리시무스(Sane Charissimus)」를 통해 국왕을 지지했다.<자료5>

<자료5>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정복을 합법화한 교황
교황 마르틴 5세는 1418년 칙서「사네 카리시무스」를 통해 포르
투갈의 아프리카 원정을 지지하며, 참가자들에게 완전한 죄의 사면을 약속하고, 정복지를 포르투갈 영토에 편입하도록 했다. 1420년에는 엔히크를 그리스도 기사단의 수장으로 임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인신매매할 권한을 부여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 칙서는 1415년 세우타 점령을 칭찬하고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정복을 합법화했으며, 이후 아프리카에 대한 지속적인 지배를 정당화하는 교황 칙서들의 선례가 되었다.「사네 카리시무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인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널리 전파하려는 열정으로 불타고 있다. 이에 그는 그리스도교 병사들의 군대를 갖추어, 아프리카와 그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 불신자들을 정복하기 위해, 그들이 점유하고 있던 영토와 지역으로 진군하였다. 가톨릭 신앙의 투사이자 지극히 용맹한 전사인 이 국왕은, 이들 불신자들을 상대로 자신에게 허락된 행복한 승리를 힘차게 계속 이어가기로 결심하였으며, 불신자들을 복종시키고,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땅을 참된 신앙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그는 이 일이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도록 가톨릭교회에 겸손히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왕의 이처럼 구원에 유익한 계획을 주님 안에서 가장 큰 찬사로 높이 평가하며, (…) 이러한 십자가의 표지를 받아 앞서 말한 군대에 직접 자기 몸으로 참가하거나 그 여정 중에 목숨을 잃은 이들, 고해한 그들의 모든 죄에 대하여 완전한 용서를 베풀며, 의인들이 받는 영원한 구원의 보상 또한 더하여질 것임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번 원정에서 야만인들로부터 빼앗는 모든 지역은 포르투갈 국왕 주앙과 그 후계자들의 영토에 편입될 것이라고 정하였다.(Sane charissismus in Christo filius noster Joannes Portugalliae Rex illustris, Christianae propagationis affectibus inflammatus, instructis Christianorum militum aciebus ad debellandos, tam in Africanis, quam aliis partibus convicinis, Sarracenos et alios infideles, in detenta per eos territoria et loca processit. Cum autem idem Rex, Catholicae fidei pugil et athleta fortissimus, indultam sibi felicem victoriam in eosdem infideles viriliter prosequi decideret, ad subjugandos Sarracenos et infideles hujusmodi, redigendosque ad cultum ipsius verae fidei terras, quas occupant, nostras et Catholicae Ecclesiae pro tam felicis consummatione negotii partes adjutrices humiliter imploravit. Nos itaque tam salutare praefati Regis propositum maximis in Domino laudibus extollentes, (…) eisdem fidelibus, qui, crucis hujusmodi signo suscepto, praefatis exercitibus in personis propriis interfuerint pariter, et expensis, quique ut illis interessent sine fraude iter arripuerint, seu in ipso fuerint itinere vita functi, plenam suorum peccaminum, de quibus corde contriti, et ore confessi fuerint, veniam impertimur, et in retribuitione justorum salutis aeternae pollicemur augmentum. cuncta autem loca, quae in hac expeditione barbaris eripientur, Joannis Portugalliae Regis atque successorum ditioni adjunctum iri.)”

주앙 1세의 아들, 일명 항해왕자으로 불리는 엔히크(Henrique) 왕자는 아프리카에 유럽 식민지화의 씨앗을 뿌리고, 아프리카인들을 인신매매하여 노예로 삼는 원정대를 후원하고 지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엔히크는 교황청의 후원과 지원을 받았고, 1420년, 교황 마르틴 5세는 엔히크를 그리스도 기사단의 수장으로 임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명목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인신매매할 권한을 부여했다.(which gave him authority to launch the trafficking of Black African human beings in the name of spreading the Gospel of Jesus Christ.) 이에 1421년, 엔히크는 원정에서 포로로 잡은 아프리카인들을 교황 마르틴 5세에게 선물로 바쳤다. 1442년, 교황 에우제니오 4세도 항해왕자 휘하의 이교도 원정에 참여한 그리스도 기사단들에게 “모든 죄를 사면한다(full remission of sins)”는 내용의 교황칙서「일 리우스 퀴(Illius Qui)」를 발표했으며, 아프리카에서의 군사 행동은 교회의 관점에서 ‘정당한’ 전쟁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그리스도 기사단에게 확언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케이티 제네바 캐넌은 논문 『기독교 제국주의와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서양 무역은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정리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는 ‘개종과 노예화를 같은 의미’로 여겼으며, 개종자들을 노예로 만드는 데 아무런 인지적 모순을 느끼지 않았다. 실제로 노예무역에 가담한 국가들은 예외 없이 기독교 국가였으며, 비기독교 국가가 대서양 노예무역에 가담한 사례는 없다.<자료6>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흑인을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조직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은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를 가리지 않고 유럽 기독교 문명권 안에서 탄생하고 확산되었다.

<자료6> 앙골라 국립 노예박물관 입구·십자가상·성수대, 과거 노예들을 강제 세례 시키던 예배당이었다
아프리카 앙골라의 국립 노예박물관은 과거 가톨릭 예배당이었던 곳으로 대서양을 마주보며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포르투갈·영국·프랑스·스페인 등의 국기를 단 악명 높은 배에 오르기 전, 붙잡혀 온 노예들에게 강제 세례와 개명을 강요하던 장소였다. 작은 건물 안에는 돌로 만든 조개 모양의 성수대가 채찍, 쇠사슬, 족쇄, 체벌용 매, 선박 모형, 머리에 자루를 이고 사슬에 묶인 나체의 여인상과 함께 과거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다. 벽면의 그림들은 대서양 횡단, 즉 ‘중간항해’ 동안 노예들이 갇혀 있던 비참하고 과밀된 환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나무 갑판의 어둠 속에서 고문과 감염, 죽음이 만연했던 참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출처: 엘 파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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