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60>노예무역의 주범이 배상 책임의 주체여야 한다②
▣ 노예화의 허가자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수혜자였다
수많은 가톨릭 국가들이 토착민들을 노예화하고 그들을 매매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에 직접적인 수혜로 이어졌다. 가톨릭은 정복지와 그에 따른 노예가 많아질수록, 동시에 교구·성당·성직자·세례받은 인구와 교회의 재정 기반도 확대되는 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칙서를 내려 신학적·법적·도덕적 정당성을 제공해주면, 가톨릭 국가들은 원주민 대륙을 침탈할 때마다 성직자를 동행하여 토착민들을 개종시켰다. 이는 곧 가톨릭교회의 교세 확장과 부의 축적으로 이어진다. 1501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칙서「엑시미에 데보티오니스(Eximiae devotionis)」는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할 때 합법적으로 십일조를 거두게 했고, 그 십일조를 새 교회를 설립과 재정 지원에 사용하도록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은 가톨릭 신앙을 널리 전파하려는 경건한 열망에 따라, 최근 상당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아메리카 제도와 그 지역들을 점령하고 회복하기 위해 더욱 힘쓰고 있습니다. 이는 그 땅에서 잘못된 믿음이 존재하는 곳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숭배와 경배를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계자들이 앞서 말한 제도들을 획득하고 회복한 뒤 그곳의 주민과 거주자들에게서 십일조를 자유롭고 합법적으로 받아 징수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그곳에 교구가 설치된 뒤에는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여 교회들을 설립해야 합니다. 그 재원은 해당 교회의 성직자와 관리자들이 적절히 생계를 유지하고, 교회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며, 전능하신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를 거행하고, 교구에 필요한 모든 의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교황이 칙서로 길을 열어주면, 교회는 열렬한 가톨릭 국가들이 가져다주는 개종자와 재정적 이익을 그대로 누릴 수 있던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또한 직접 노예를 소유하고 노동력을 이용하며 경제적 이익을 얻기도 했다. 식민지 시대 예수회는 아메리카 대륙의 최대급 토지·노예 소유 기관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1766년 스페인령 아메리카에 약 2,630명의 예수회원이 있었고, 멕시코에서만 농장 41곳, 대학 27곳과 다수의 교회를 소유했다. 칠레의 예수회 재산은 현금·물품·노예·가축·부동산 등을 합쳐 196만 1,148페소로 당시 식민지 정부의 1년 예산보다 많았다. 또 예수회 농장과 노예 노동에서 발생한 수입은 학교와 선교 사업을 유지하는 재원이 되었다. 이처럼 노예화와 노예무역은 가톨릭교회의 교세 확장과 부의 축적을 견인한 핵심 기반 가운데 하나였다.
케이티 제네바 캐넌의 논문『기독교 제국주의와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는 15세기 유럽 선교·정복의 구조를 세 단계로 설명했다. 먼저 현지 왕이나 추장을 만나고, 그다음 기독교에 복종하도록 요구하고, 만약 토착민이 자기 종교를 버리기를 거부하면 살해·굶주림·강간·질병·육체적 혹사·영구 노예화까지 “신이 승인한 종교적 의무”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논리가 형성됐다. 캐넌은 “God, glory, and gold”, 즉 “신, 영광, 황금”이 하나의 신적 섭리처럼 묶였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많이 개종시킬수록 구원을 얻는다는 사고와, 영토·노동력·자원을 확보하려는 현실적 욕망이 결합됐다는 뜻이었다.
종교 조직이 세속 권력 및 경제적 이익과 결탁했을 때, 그 조직은 어떤 폭력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종교가 없는 경우보다 더 잔혹한 폭력이 가능해진다. 신의 이름이 붙은 폭력은 죄책감도, 한계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이 구조를 칙서와 교서 등을 통해 수백 년에 걸쳐 완성했고, 노예무역은 이 구조가 실증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종교와 세속 권력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결탁하는 구조는 더욱 교묘하게 진화하여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남의 토지를 무단으로 침범하고, 대중을 선동해 이를 정당화하거나 부추기며, 각종 편법으로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수탈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권력의 이런 몰염치한 행태는 갈수록 교묘해져서 법과 정의마저 자신들의 발 아래 두려는 횡포로 이어진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권력 행사의 배후에는 초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종교가 자리하고 있다. 종교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를 가중시켰다는 점에서, 교황청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그런데 사실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가해국들은 자신들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잘못을 시인하고 심지어 노예무역을 비판하면서도 배상에 대한 약속은 외면한다는 것이다.
▣ 배상적 정의를 거부하다
2026년 3월 25일 미국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는 “아프리카인 노예 매매 및 인종적 차별에 기반한 아프리카인 노예화는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임을 선언함”이라는 결의안(A/RES/80/250)이 찬성 123개국, 반대 3개국, 기권 52개국으로 채택되었다. 채택은 되었지만 미국의 반대표를 비롯해 대서양 노예무역의 주요 가해국인 포르투갈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의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기권을 택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들을 노예로 사고팔았던 일본도 기권국에 이름을 올렸다.<자료7> 전문가들은 이들이 찬성하지 않은 배경으로 이번 결의안이 과거의 책임을 오늘날의 구체적인 배상 문제로 연결한 점을 지적한다.
<자료7> 2026년 3월 25일 유엔 총회, ‘아프리카인 노예매매·인종적 노예화’ 관련 결의안 국가별 표결 결과
2026년 3월 2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는 “아프리카인 노예 매매 및 인종적 차별에 기반한 아프리카인 노예화는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임을 선언함”이라는 결의안(A/RES/80/250)이 찬성 123개국, 반대 3개국, 기권 52개국으로 채택되었다. 양쪽 전광판에는 표결 결과가 국가별로 표시돼 있어 어느 나라가 찬성·반대·기권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반대표를 던진 3개국은 미국과 이스라엘, 아르헨티나였고, 대서양 노예무역의 주요 가해국인 포르투갈과 스페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을
비롯해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은 전부 기권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들을 노예로 사고팔았던 일본도 기권국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찬성하지 않은 배경으로 이번 결의안이 과거의 책임을 오늘날의 구체적인 ‘배상 문제’로 연결한 점을 지적했다. (출처: UN 뉴스)
바티칸은 UN 회원국이 아니라 이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5월 15일 발표한 교황의 회칙에서 배상에 대한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 레오 14세는 노예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구조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 선언까지 했음에도 배상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2022년 바티칸에 배상 청원서를 제출하고 변화를 기대했던 배상·치유 국제 연대는 이에 유감을 표했다. 배상에 대한 책임을 논할 때, 이를 거부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과거 조상들의 범죄에 대해 책임질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배상·치유 국제 연대의 청원서는 노예무역의 피해는 과거에 끝난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지속되고 있기에, 이는 오늘날에도 배상해야 할 채무임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 “6세기 이상, 30세대에 걸쳐 대서양 양안에서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노동력과 지식을 약탈하고, 그로 인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 왔습니다. 이러한 착취는 아프리카계 후손들이 벌어들인 소득과 부를 유럽계 후손들에게 대서양 양안에서 대대로 물려주어, 전자에게는 대대로 이어지는 빈곤을, 후자에게는 대대로 이어지는 부와 특권을 안겨주었습니다. 숫자적인 통계는 수 세기 동안 잃어버린 희망, 잃어버린 꿈, 그리고 잃어버린 생명의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흑인의 생명을 그토록 심각하게 경시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깊은 정신적 고통을 이 통계는 조금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프리카와 그 국민들에게 저지른 죄와 잘못에 대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배상을 포함한 완전한 배상의 형태로 막대한 도덕적, 재정적 빚을 지고 있습니다.”
배상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빚이다. 과거의 착취를 통해 축적된 부와 이익은 오늘날까지 계승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책임과 채무는 과거의 일로 떠넘기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며 양립할 수 없기에,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6월 18일, 가나에서 열린 ‘Next Steps’ 컨퍼런스의 고위급 회의에서 가나의 존 드라마니 마하마 대통령은 “역사는 죄책감을 물려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물려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이익과 제도를 계승한 주체에게, 아직 청산되지 않은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피해를 입은 후손들의 목소리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조상의 땅에서 쫓겨났고, 우리 고유의 영성은 그들의 종교로 대체되었습니다. 사과는 됐으니, 도덕적으로 우리에게 빚진 것을 돌려주고, 그와 함께 보상도 하십시오.”
지금까지 사과를 해온 가해자들은 많다. 그러나 사과는 채무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이지, 채무를 갚았다는 영수증이 아니다. 가톨릭교회와 가톨릭 국가들이 당시 발생한 부와 특권을 오늘날까지 물려받아 누리고 있는 이상, 아직 갚지 않은 책임도 함께 물려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배상을 거부하는 또 하나의 주요 논거가 있다. 당시에는 노예제가 불법이 아니었으므로, 후대의 법과 도덕적 기준을 과거에 소급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UN 결의안에 반대표를 행사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주목할 것은 교황 레오 14세 역시 이번 회칙 176항에서 “과거의 사건을,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해진 도덕적 기준이 마치 당시에도 존재했던 것처럼 시대적 맥락을 무시하고 판단할 수 없긴 하다”라고 전제하며, 책임을 인정하기에 앞서 시대적 한계를 먼저 내세웠다. 그러나 같은 방어 논리를 주장하더라도 세속 국가인 미국과 종교 수장인 레오 14세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진리를 아는 종교라면 시대를 불문하는 보편적인 도덕과 죄의 기준을 제시했었어야 한다. 그러나 노예무역을 통제하는 법이 없던 시절, 가톨릭교회에서 제시한 것은 노예제의 허가와 축복이었다. 심지어 수백 년 뒤 노예무역을 멈춰 세운 것 역시 교회의 자성이나 선도가 아니라, 뼈아픈 실패를 딛고 깨어난 세상의 양심과 여론이었다. 그동안 진리의 길을 자처해 온 교회가 세속 국가와 똑같은 논리로 책임 감면을 유도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명백한 모순이다. 종교를 자처해온 조직에게 이는 감면 사유가 아닌 오히려 배상의 무게를 더욱 가중할 뿐이다.
▣ 산정 불가 규모의 부당이득, 배상은 인간의 도리
2023년 경제·금융 컨설팅 업체 브래틀 그룹은 노예제 당시와 폐지 이후까지 이어진 피해를 합산해 대서양 노예제 배상액을 약 131조 달러(2023년 기준 약 17경 1,186조 원)로 추산하였다.<자료8> 많은 금액으로 보이지만, 이는 금전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피해만을 산출한 결과에 불과하다. 앞서 배상·치유국제 연대가 지적했듯 숫자적인 통계는 수 세기에 걸쳐 잃어버린 생명과 희망, 꿈,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이어진 정신적 고통까지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애초에 수백 년 이어진 강제 이주와 강제 노동, 끊어진 혈통과 사라진 언어, 조상의 땅에서 뿌리 뽑힌 정체성, 그리고 대를 이어 물려받은 빈곤과 차별 등의 이 모든 상실을 화폐 가치로 정확히 환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131조 달러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참혹한 범죄의 대가를 그나마 최소한으로 가늠해 본 수치일 뿐이다. 또한 이 환산조차 어려운 천문학적인 금액은 그만큼 축적된 죄악과 피해의 규모가 막대하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자료8> 대서양 노예무역 배상액 산정 보고서 표지
2023년 경제·금융 컨설팅 업체 브래틀 그룹은 노예제 당시와 폐지 이후까지 이어진 피해를 합산해 대서양 노예제 배상액을 약 131조 달러(2023년 기준 약 17경 1,186조 원)로 추산하였다. 그런데 이는 금전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피해만을 산출한 보수적인 추정치로, 브래틀 그룹은 이 배상액이 실제 피해에 비해 과소평가된 것임을 강조했다.
빼앗은 것을 돌려주는 것은 거창한 도덕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오래되고 단순한 정의이며 원칙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재산이나 노동으로 이익을 얻고, 그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은 ‘부당이득(unjust enrichment)’이라 하며, 그 이익은 그 가치만큼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피해자들은 아무 잘못도 이유도 없이 하루아침에 인간적 존엄과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명백한 잘못과 이유가 있는 배상조차 외면하는 이들이 감히 도덕과 선, 구원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쌓아 올린 화려한 성당과 예술품, 역사와 권위는 결국 한 가지 사실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이교도를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민족의 삶과 영혼, 미래를 파괴하고도 끝내 그 빚을 갚기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배상은 정의 실현을 위해 뒤늦게라도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책임이다. 인류에 돌이킬 수 없는 죄악과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도 배상마저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가톨릭교회를 반인륜적 범죄의 책임을 외면한 파렴치한으로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