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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건(4) – 신태양사의 정정보도

깨끗이 승복하고 정정보도
발행일 발행호수 2138

“1960년도 7, 8월경 당시 신앙촌 시온대학생회에서 나는 논리적이고 언변이 있다하여 선전부장에 선임되었다. 그 당시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에서 하나님과 신앙촌에 대한 왜곡 허위보도가 홍수를 이루고 있었고 시온대학생회에서는 이러한 언론들의 허위보도에 우리가 당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지성인들이 앞장서서 적극적인 해명을 하고 정정보도를 요구하자는 기운이 강하게 일고 있었다.”
 
당시 시온대학생회 선전부장이던 천희문(千熙文)씨의 회고이다. 
“그때 마침 ‘신태양’이라는 월간잡지에서 또 다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신앙촌에 대한 왜곡보도를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시온대학생회 회의석상에서 신태양사를 찾아가 허위보도를 정정해 달라고 요구하자고 제안하였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제1차로 신태양사를 목표로 허위보도에 대한 해명과 정정을 요구하기로 하고 신태양사 편집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독자가 귀사의 기사에 대하여 해명을 하고자 하니 한번 만나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기사에 항의한다고 하면 만나 주지 않을까봐 해명할 것이 있다고 정중하게 요청한 것이다.
그 당시에 신태양사는 지금의 덕수궁 건너편에 있었는데 신태양사 편집인은 우리를 자기 사무실이 아닌 덕수궁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닌가? 죄지은 사람이 자기 발이 저리다고, 시온대학생회에서 온다고 하니까 행여 젊은 청년들이 허위보도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나오면 덕수궁안의 넓은 곳으로 도망치기 좋게 그렇게 정한 것이라고 신태양사 편집인은 나중에 말하는 것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시온대학생회 소속 대학생 몇 명과 함께 덕수궁에 가서 편집인을 만나보니 베레모를 쓴 예술가 타입의 키가 작달막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시종 정중하고 조리있게 ‘신태양’의 보도내용이 부당함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사실대로 정정하여 보도해 줄 것을 요청하니 ‘신태양’편집인은 깊은 감명을 받은 듯 ‘시온대학생들이 온다하기에 형사들까지 불러서 배치해 놓은 내가 부끄럽습니다.’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보도한 것을 알았으니 다시 취재하여 사실대로 정정기사를 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알고 보니 그 편집인은 대단히 순수한 분으로서, 우리가 신태양사의 보도내용 즉 신앙촌에 입주하는 신도들은 전 재산을 팔아서 신앙촌에 헌납하고 부인들은 금반지 금비녀를 모두 빼서 헌금하고 신앙촌에 입주해서는 노동력을 착취당한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살 집을 사기위해 돈을 내는 것을 어찌 신앙촌에 바친다고 할 수 있으며, 안일과 나태에 젖은 우리의 구태를 벗어버리고 모두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어찌 노동력 착취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낱낱이 해명하자 신태양사 편집인은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정정보도를 해야지요’하고 놀라면서 신태양사에서 이미 보도한 분량만큼 다음달에 정정보도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다.
신태양사는 정정기사를 내면서 이렇게 정정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기사의 초고를 보여주는 성의까지 보였다. 결국 신태양사는 약속을 지켜서 다음달에 훌륭한 정정보도를 해 주었다.” 신태양사의 깨끗한 승복과 정정보도에 자신을 얻은 시온대학생회는 다음 목표를 동아일보로 정하고 동아일보사를 방문하여 편집국장에게 면회를 신청하였다.
“당시의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김영상(金永上)씨였는데 이 분은 아주 신사적인 인상을 풍겼다. 우리가 찾아가니 편집국장은 편집국 회의실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이후 우리는 6~7차에 걸쳐서 동아일보사를 방문하고 편집국장과 대담하였는데 동아일보의 보도내용에 대하여 때로는 진지하게 토론하고 때로는 언성을 높여 다투기도 하였다.
 
우리가 4번째 찾아갔을 때부터는 동아일보사에서 종로경찰서에 경비를 요청하여 형사들이 여러 명 편집국장실 주위에 배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두꺼운 파커를 입고 수갑을 두 개씩 허리에 차고 위협적인 태도로 회의실을 둘러싸고 있었다.
시온대학생회 회원들 중에는 과격파들도 있어서 과격한 방법으로 항의를 하려는 자들도 있었으나 나는 그들을 극력 제지하고 ‘지성인이면 지성인답게 행동하라’고 항상 당부하였으며 그들이 대담장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동아일보사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와 편집국장 김영상씨와의 대화는 시종 평화로운 가운데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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