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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교회 김옥분 승사

소비조합으로 삶에 기쁨을 주신 하나님
발행일 발행호수 2417

소사신앙촌의 재개발된 아파트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환하게 웃는 김 승사.

제가 21살 때 6·25전쟁이 일어나 홀로 이북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고 보호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이 길을 따라올 수 있었습니다.

이북에서 내려와 창신동에 살면서 가족이 너무나도 그리워 고향 생각만 하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 네 살 난 아들을 업고 바닷가에 서 있는데 사각형의 반듯하고 큰 방죽이 하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보니 방죽까지 돌아서 가는 길이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서 가면 안 되고 이 둑에 올라서 직접 물을 건너가야 산다”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둑에 올라서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너무 외롭고 허전한 마음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려고 짐을 싸서 아들과 함께 피난민촌을 찾아 전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전주제단에 다니는 오 권사 옆에 앉게 된 인연으로 오 권사를 따라 처음으로 전도관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전도관에 몇 번 가보니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신다고 오 권사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앞자리에 앉아서 한참동안 찬송을 부르다가 박 장로님을 올려다보니 얼굴에서 환하게 빛이 났고, 우렁찬 음성과 인자한 모습이 오 권사의 말대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또한 신기하게도 찬송가를 보면서 따라 부르는데 업고 있던 아들이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를 같이 따라 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햇수로는 네 살이지만 두 돌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아들이 찬송가를 아주 잘 불러서 믿기지가 않아 다시 뒤를 돌아보니 계속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후 소사신앙촌을 방문했을 때,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찬송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전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오 권사를 만나기 전에 꿈에서 들었던 그 음성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그 꿈이 다시 떠오르면서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드렸습니다.

후에 저는 전주제단에 열심히 다니면서 집사 임명을 받았고, 소사신앙촌이 건설되자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그곳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소비조합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던 저는 내성적인 성격에 장사도 할 줄 모르면서도 소비조합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고, 그때부터 성수동으로 신앙촌 물건을 팔러 다녔습니다. 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물건을 내려놓기만 하면 신앙촌을 알아주며 전부 사갈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대학생 두 명도 무거워서 못 들겠다는 물건을 혼자 거뜬히 들고 다녔는데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힘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소비조합 활동을 하니 고단하고 외롭기만 하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찾아오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매시간 느꼈습니다.

`6.25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와 외로움을 달랠 곳이
없던 시절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하며 마음의 기쁨과
평안함을 얻게 돼`
하루는 생명물 간장과 빵을 들고 성수동으로 나갔는데 그날따라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아 어느 단골집에 찾아가려고 내리막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길에 차도 별로 없었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빵빵”하고 경적을 울리 길래 뒤를 돌아보니 하나님 차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어, 하나님 차네!’하고 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차 안에서 ‘쉭’하고 손으로 축복을 해주시고 지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빵 있어요?”하며 그 자리에서 물건이 다 팔렸습니다. 그때의 하나님 모습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비조합원들에게 안찰을 해주실 때 제 차례가 되면 “순종하고 열심히 뛰라우”하시며 축복을 해주셨고, 허리가 아프다고 말씀드리면 허리에 축복을 해주신 순간부터 제 몸과 기분이 공중에 뜨는 것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해주신 후 집에 돌아갈 때면 항상 빵을 한가득 주셨습니다. 그 빵을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주면 무척 신이 나서 하루 종일 찬송을 부르며 먹곤 했습니다.

한번은 소사신앙촌에 중·고등학교를 지을 때의 일입니다. 오만제단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면 매일 돌을 하나씩 이고 내려왔습니다. 돌을 내려놓고 줄을 서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제 아들이 친구와 싸워서 울고 있는데 안수가 끝나서 빨리 가서 축복받으라고 하니 두 아이가 하나님께 바로 달려가 손을 잡고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쿠나” 하시면서 인자하신 모습으로 아이들의 코를 잡고 흔드시며 오랫동안 축복을 해주신 그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늘 죄 짓지 말고 죄를 벗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지만 소비조합원으로서 더 힘껏 뛰지 못한 것이 늘 죄송스럽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을 제 마음속에 항상 모시며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이 길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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