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2편> 거대한 성범죄 조직에 맞서 싸운 사람들
해외 아동성추행 사건 <2편> 미국 보스턴·펜실베이니아 사건2002년과 2018년은 미국의 아동성범죄 처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해였다. 2002년은 언론사가 성범죄 조직의 실체를 폭로했고 2018년은 법적인 기관인 대배심이 성범죄 조직에 관한 방대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두 사건은 미국 전 지역에서 아동성범죄 처벌이 확대되고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성범죄 조직이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미국을 장악한 범죄 조직과 그에 맞서 싸운 언론과 대배심, 그리고 범죄 조직의 교묘한 수법을 다룬다.
<보스턴 글로브> ‘거룩하고 선한’ 성범죄 조직의 실체를 파헤치다
2001년 미국 언론사 보스턴 글로브는 존 게오건 신부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사실 게오건 사건은 기자들에게 식상한 주제였다. 30년 동안 무려 130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사건은 언론에 수차례 보도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편집장은 게오건 신부 뒤에 숨은 배후를 파헤쳐 보라고 지시했다. 추잡한 성범죄의 배후에 가톨릭이 있다는 의혹이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의혹을 품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고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가톨릭은 법조계와 정치계에서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게오건 신부 같은 범죄자가 “선한” 가톨릭 조직에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가톨릭의 진짜 실체를 파악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가톨릭 신부에게 강간 또는 성폭행당한 피해자들이었다. 피해자 모임(SNAP)을 이끄는 필 사비아노는 가톨릭 조직 전체가 성범죄 배후라고 단언했다. 가톨릭이 조직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성범죄 신부가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활동할 수 없다고 했다. 사비아노가 13명의 성범죄 신부를 안다고 하자 기자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심리학자 리처드 사이프는 “전체 신부의 6%”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아동 성범죄는 가톨릭의 집단적 현상이며 전체 신부의 6%가 아동을 강간하거나 성추행한다고 했다. 보스턴에만 90명의 신부가 범죄자라는 추산이었다. 기자들은 이 수치를 근거로 범죄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단서는 해마다 발간하는 가톨릭 안내 책자였다.
안내 책자에는 신부가 언제 어떤 사유로 이동됐는지 적혀 있는데, 성범죄 신부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성범죄 행각이 발각되면 다른 교구로 이동된다. 이동될 때는 ‘병가 휴직’ ‘응급 상황’ 등 사실과 다른 사유를 쓴다. 2~3년에 한번씩 자주 이동된다.”
꽤 명확한 범죄 패턴이었다. 기자들은 패턴에 들어맞는 신부를 추적했고 그 결과 70명의 범죄자를 잡을 수 있었다. 이 패턴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었다. 가톨릭 조직이 고의적으로 범죄 사실을 숨기고 수사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범죄자를 보호했다는 증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보스턴 가톨릭의 최고위직인 추기경까지 범죄자를 보호했다는 증거 문서를 입수했다. 이는 가톨릭 전체가 범죄 조직임을 밝히는 마지막 퍼즐이었다.
성범죄를 취재하는 동안 기자들은 괴로웠다. 피해자의 고통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아동 성범죄를 ‘영혼의 살인’이라 한다. 영혼을 죽이는 것만큼 심각한 범죄라는 것이다. 피해자 중에는 약물과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생존자’라 불렸다. 기자들은 가톨릭이 영혼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거룩하게 위장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더 일찍 가톨릭의 실체를 알렸더라면 몇 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탄식했다.
1년 여의 취재 끝에 기자들은 가톨릭 조직 전체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이후 600개에 이르는 심층 취재 기사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보도 이후 형사 법정에 서게 된 신부가 249명에 달했다.(사진 1, 2번)
또 법적인 기관에서 가톨릭교회를 정식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성범죄 조직에 맞서는 상대가 언론에서 법적인 기관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펜실베이니아였다.
<펜실베이니아 대배심> 가톨릭 범죄 패턴을 밝히고 법률 개정을 촉구하다
2018년 8월 14일 펜실베이니아 주정부 청사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이날 성범죄 조직에 관한 보고서가 공개됐기 때문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이었다.
“우리는 무작위로 선정된 보통 사람들입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생각으로 보람 있게 일했고, 2년의 시간을 들여 문란하고 추잡한 성범죄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법률이 범죄 집단을 보호하고 피해자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법률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2016년에 조직된 대배심은 먼저 가톨릭 교구에 보관된 내부 서류를 검토했다. 50만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보면서 대배심은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가톨릭에서 똑같은 범죄 행위가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대배심은 전문가의 도움을 얻기 위해 FBI에 서류를 보내 분석을 의뢰했고, FBI의 국립폭력범죄분석센터(National Center for the Analysis of Violent Crime)에서는 가톨릭이 반복하는 범죄 패턴을 몇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중의적인 어휘. 신부가 아동을 강간했어도 부적절한 접촉이나 경계상의 문제라고 표현해 범죄를 숨긴다.
둘째, 편파적인 조사. 성범죄 신부를 조사할 때도 그 신부와 가까운 동료 신부에게 조사를 맡긴다. 피해자의 반박 진술을 듣지 않고 성범죄 신부의 자기 변호에만 의존해 조사한다.
셋째, 정보의 비공개. 성범죄 신부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때 범죄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의 제도로 당연시되고 있다. 신부의 범죄 사실을 모르는 새로운 지역의 아동은 새로운 피해자가 된다.
넷째, 범죄자에 대한 지원. 범죄자에게 주거비, 교통비, 급여를 계속 제공한다. 이는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도록 지원하는 결과가 된다.
대배심은 가톨릭의 범죄 패턴을 한마디로 “진실 은폐”라고 정리했다.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끊임없이 숨긴다는 것이다. 대배심이 범죄 패턴에 주목한 이유는 공소시효 때문이었다.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범죄를 숨기는 것이 가톨릭의 확고한 패턴이었다.
펜실베이니아 법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의 나이 50세까지다. 가톨릭 신부에게 성폭행당한 피해자는 50세가 될 때까지 그 신부를 고소할 수 있다. 그러나 51세부터는 신부를 고소할 수도 없고 처벌을 할 수도 없게 된다.
대배심은 이러한 공소시효가 가톨릭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은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범죄를 숨기고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가 공소시효를 넘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대배심이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낸 성범죄 신부는 301명이었다. 범죄 혐의가 명확하게 밝혀졌으나 형사 법정에 서게 된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공소시효 만료였다. 대배심은 공소시효라는 면죄부가 사라지면 가톨릭의 아동 성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고서의 마지막에 정리한 권고 사항에서 공소시효를 폐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공소시효 폐지는 900페이지에 이르는 대배심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대배심 보고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다른 주에서도 가톨릭의 내부 문서를 검토하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개 주에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했다. 공소시효를 면죄부로 이용했던 가톨릭의 범죄 패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른 주에서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 낸 펜실베이니아가 정작 아무런 변화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 묶여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법학교수 마르시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가톨릭 주교가 상원의원들에게 특별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이 법 개정의 장애물이다. 독실한 가톨릭 의원들은 가톨릭 교회를 보호한다.” 또 펜실베이니아 검찰총장인 조쉬 샤피로는 “가톨릭 교회는 매순간 법 개정을 거절해 왔고 언제나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말했다.
막대한 자금과 로비 회사가 범죄 집단을 구하다
한편 가톨릭이 공소시효 폐지를 막기 위해 막대한 로비 자금을 썼다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가톨릭 교회는 어떻게 성학대 피해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 수백만 불을 썼는가? (Church Influencing State: How the Catholic Church Spent Millions Against Survivors of Clergy Abuse)”라는 보고서였다. 이는 성폭행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로펌 네 곳이 공동으로 작성했다.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북동부 8개 주에서 가톨릭이 지출한 로비 자금은 1,060만 달러(127억 2,000만원)에 달했다. 이는 모두 공소시효 연장이나 폐지를 막기 위한 로비에 사용됐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의 경우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본격화됐던 2018년에 가톨릭은 70만 달러를 로비에 쏟아부었는데, 이는 다른 5개 주들이 7년 동안 지출한 로비 금액보다 많은 것이었다. 막대한 로비 자금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가톨릭은 39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해 50명의 상원의원들에게 로비했고 결국 공소시효 폐지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성학대 피해자들의 변호사 중 한 명인 제럴드 윌리엄스는 보고서에서 막대한 자금이 가톨릭 로비 단체인 가톨릭 컨퍼런스 정책 그룹(CCPG)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로비 자금이 신자들의 헌금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가톨릭이 순수한 헌금을 불순한 로비에 이용한 것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지난 2016년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는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개자식”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프란치스코에게 “수치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지난 9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성소수자를 악마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펜실베이니아 가톨릭의 로비 자금이 드러나면서 신부들의 성범죄가 한참 논란이 되던 시점이었다. 미국 각 지역의 정보를 보고 받는 대통령이 바로 그 시점에 성소수자를 비난한 것은 성범죄 조직인 가톨릭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성소수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 이제 세상이 그들을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