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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들 염려로 밤낮을 지새우신 하나님 (박종미 기장신앙촌 소비조합)

박종미-기장신앙촌 소비조합
발행일 발행호수 2360

제가 살던 완도에까지 배를 타고 신앙촌 아줌마가 찾아 왔었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앉아 ‘나는 비누 주쇼’ ‘나는 빤스 주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장흥에 계신 작은 아버지네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일도 많은데 가라고 하시니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그렇게 일손이 바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그 친구를 따라 전도관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장 신앙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전도관에 나온 후 아버지가 왜 장흥에 가라고 했을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러 주신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6년 신앙촌에 처음 와 축복일 예배를 드리는 날, 250장 찬송을 부르는데 눈물이 말도 못하게 나왔습니다. 뭔지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와 속이 시원하도록 울었습니다. 얼마 지나자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촌에서 자란 제가 생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습니다. 좋은 냄새를 맡으며 마음은 기뻐지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에게 냄새 나냐고 하니까 친구는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했습니다. 그 향긋한 냄새를 또 맡으며 나중에야 향취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로 시온인 명찰을 달고 마치 신앙촌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사람처럼 살아졌습니다. 양말부에 입사해 일을 하는데, 이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7남매 중의 맏이인 저는 몸이 아프신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하고 밭에 나가 농사 짓고, 바다에선 굴이며 김 양식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일들에 비하면 신앙촌에서 사는 매일매일이 기쁨이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얼굴과 마음으로 일을 하니 어른들이 많이 예뻐해 주셨습니다.

신앙촌 안에는 시온인만 있던 것이 아니라 사회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과 짝이 되어 일을 하는데, 일을 앞에 놓고 저는 일을 더 하고 싶은데 제 짝은 놀려고만 해서 다투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에 예배를 드리러 가서 어제 일을 회개하는데 어디서 향취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서울을 순회 하시며 신앙촌에 계시지 않을 때였습니다. ‘아,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라고 하더니 정말 여기서 향취가 나네!’ 하나님의 존재가 더 확실히 받아들여졌습니다.

1978,9년경 신앙촌에서 사원 체육대회를 할 때였습니다. 저는 선수가 아니라 진행요원으로 100미터 달리기에서 1등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체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어떤 이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1등으로 골인하며 저하고 그대로 부딪혔습니다. 저는 뒤로 넘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아, 나는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순간 제 몸은 아주 푹신한 이불 더미 위로 쓰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하나님께서는 “어제 아무도 안 다치고 사고 나지 않게 계속 구했다”는 말씀과 “얼굴 하얀 가지들 타지 않게 구름을 내보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요구르트 ‘런’이 나오며 영 소비조합 팀으로 나와 두 번째 있었던 시상식에서 나가 상을 받고 들어와 앉자 더 일찍 소비조합으로 나오지 않은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그동안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계속 나왔습니다.
기쁨으로 향취로 때론 한없는 눈물로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 더 열심히 순종하며 아름답게 이 일을 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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