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말씀
신앙체험기
기획
특집
피플&스토리
오피니언
주니어

부산 가덕도 집회

부산 가덕도 집회
발행일 발행호수 2191

8월 한여름
천막집회를 처음 시작하셨던 1955년의 여름에는 무더위를 피해 집회를 열지 않으셨다.
그러나 1956년 8월 하나님께서는 가덕도에서 집회를 열으셨다.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있었던 가덕도 집회.

가덕도, 섬.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섬인 제주도에도 직접 가시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그리 크지도 않은 작은 섬 가덕도에 하나님께서 가신 것이다.

햇살 좋은 여름 날 배 위에서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으신 하나님께서 모자를 벗어 드시고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 설명이 ‘가덕도 가시면서’였다.

가덕도(加德島).
경남에서 1989년 부산시로 편입되어 행정 구역상으로는 현재 부산 광역시 강서구에 속한다. 가덕도에 들어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부산시 녹산 공업단지 끝 녹산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는 길뿐이다. 앞으로는 다리도 놓일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배위에서 찍으신 사진과 함께 50년 전 신앙신보에도 가덕도 집회에 관한 기사가 실려있다. 그런데 가덕도 집회에 참석하신 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1
배에서 목청껏 즐겁게 찬송을 하며 가는데 하나님께서 “조심들 하시라요.” 하시는 말씀에 “네” 라고 힘껏 대답하며 가덕도 집회에 가는 길에 대한 김영희 권사(85, 기장신앙촌)의 이야기가 가덕도 집회에 관한 유일한 체험기였다.

“큰 배를 타고 가다 작은 배로 옮겨 탔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는 걸 도와 주셨어. 같이 갔던 구역장 중에 몸집이 크고 뚱뚱하신 분이 내릴 차례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슬그머니 빠지시잖아, 우리는 뒤에서 보면서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었는지 몰라.”
김영희 권사는 “하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덕도에 갔었고 집회를 마친 후에 하나님과 함께 배를 타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집회 때 비가 오기도 했었다고 기억했다.

#2
“건물을 빌려 부산 전도관이 세워진 후였는데 아마도 광고를 듣고 가덕도 집회에 갔었지 싶어요. 해군 군함을 타고 가덕도에 들어간 기억이 납니다.” 서원식 전 관장(75, 서대문교회)은 집회 중에 밖에선 비가 왔었고 “화상을 크게 입어서 살이 녹아서 턱이 목에 들어붙었던 사람이 집회에서 은혜를 받아 고개를 들수 있었다고 환호하던 일을 분명히 기억합니다.”고 했다.

#3
하나님의 가덕도 집회에 참석했던 한일영농의 박상수 사장(82)은 다음과 같은 기억을 들려주었다. “해군 함정을 타고 가덕도에 갔어요. 한 2~300명은 탔을 겁니다. 큰 배에 사람이 많아서 작은 배, 해병대들이 타는 그런 배 2대가 더 갔는데 난 작은 배를 타고 갔어요.” 그 당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해군의 고위 인사 부인이 해군에 부탁하여 마련한 것이었다고 했다.

“배에서 내려 2~3백 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는 곳이었는데 교회인지 학교인지 좀 자그마한 건물이었어요. 안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창문틀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어요.”

1956년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가 아니던가. 가덕도를 가긴 가야겠는데 배를 타고 어디에서 내려야 한단 말인가. 현재 가덕도에 배가 닿는 곳은 6군데. 당시에 하나님께서 가셨던 곳에서 나도 내려야 하는데 배를 타긴 타면서도 막막했다. 배를 갈아 타면서까지 가셨다고 했으니 배타고 10분이면 닿는 ‘선창’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여 두 시간마다 뜨는 ‘장항’, ‘두문’, ‘천성’, ‘대항’, ‘외양포’까지 가는 배를 탔다. 약 90여 명이 승선할 수 있는 진영 16호였다. “50년 전 자리를 찾으러 가는데 큰 배를 타고 가다 작은 배로 옮겨 탔다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가덕도 선창이 고향이라는 김태전(63) 선장은 “장항이나 두문은 수심이 얕아 큰 배가 접근 할 수 없고 큰 배를 타고 와서 분선을 했다니 ‘천성’이나 ‘대항’일텐데 ‘천성’ 보다는 ‘대항’이 컸어요. 일제 시대때 일본 사람이 살기도 하면서 기와집도 있었고.”

김영희 권사는 하나님께서 그 섬의 그래도 부자집에 머무셨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11노트(knot)로 달려 약 1시간 만에 도착한 ‘대항’에서 내렸다. 내리니 오른 쪽에 학교가 있고 왼 편으로 얕으막한 언덕에 있는 교회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에게 50년 전 이야기를 물었더니 “오셨었지.” 전정연 씨(74)는 쉽게 대답했다.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제대로 내렸구나!’
“우리 집 위의 저 교회에 오셨었다”고 했다. 아까 배에서 내리자 한눈에 들어온 교회, 박상수 사장이 말한 한 2~3백 미터 떨어진 곳의 그 자리였다. 교회 이름은 대항교회이고 장로교라고 했다. 신앙신보의 기록(1956. 8. 28)에 따르면 고신파의 최 모 전도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그가 발의해 이루어진 집회였던 것이다.

교회를 찾아 올라갔다. 교회 목사는 이곳에서 그렇게 큰 집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고, 대항교회가 속한 것은 고신파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씨가 뿌려져 부산 영주동에 전도관이 신축되었을 때 집회에 참석했었다는 김장곤 씨도 만났다. 김 씨를 소개한 건 교회 목사였다. “저 교회에서도 집회를 했고, 개인 집에서도 예배를 봤어요.”

그곳을 찾아서 뭐하겠냐던 할머니의 질문이 맴돈다. “찾아서 뭐 할 것이냐고? 하나님께서 오셨던 곳이니까.” 다시 한 번 가덕도를 둘러본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