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가톨릭이 주최한 행사인데 자기 신을 쏙 뺄 수 있나? 外
*바티칸 자문위원들,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현상을 ‘악마의 소행’으로 규정. 발현 목격자들을 강하게 배척하고 그 영향력까지 없애야 한다고 주장. 1981년에 성모를 봤다는 주장으로 시작돼, 45년간 세계적 순례지로 이름 알려. 요한 바오로 2세도 메주고리예를 긍정 평가하며 “기도로 매일 방문했다”고 표현하기도. 악마의 소행을 떠받들고 순례까지 허용했다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악마에게 바친 꼴 아닌가?
*교황 레오 14세의 페루 방문을 앞두고, 현지에서 가톨릭 주최 행사 열려. 남부 원주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한 자리에서 ‘대지의 어머니’ 파차마마 봉헌 의식 거행. 바티칸 관계자와 가톨릭 주교들도 ‘대지의 어머니’에게 코카잎을 바치며 적극 참여. 언론은 녹화된 개막식에 가톨릭 기도·축복·기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도. 가톨릭이 주최한 행사인데 자기 신을 쏙 뺄 수 있나? 정체성부터 흔들리는 것 아닌가?
조르디 베르토메우 주교는 페루에서 열린 ‘인권’ 회의 중 파차마마 여신과 관련된 의식 제물로 코카 잎을 놓는 모습이 촬영되었습니다. 로레나 알레한드라 레데스마/셔터스톡
*이탈리아 주피 추기경, 가수 구치니의 무종교적 태도를 ‘진실성’이라고 칭찬. 구치니, ‘신은 죽었다(Dio è morto)’ 등 신과 종교를 조롱한 노래로 유명. 신의 부재로 괴로워하고, 사후세계에 대한 계시도 부정한 것으로 전해져. 추기경은 이런 의심을 기독교 신앙과 연결하며 ‘신앙 고백’이라고 묘사. 신의 실재를 증명해야 할 종교가 신 없이도 신앙이 성립한다면, 애초에 그 종교는 왜 필요한가?
*악명 높은 아동 성학대범 엡스타인의 목장, 독실한 가톨릭 가족이 매입. 사제 불러 건물 구석구석 사흘간 퇴마 의식을 거행했다고 발언. 여성들이 성학대당한 범죄 현장을 기독교 수련원으로 개조하겠다고도 밝혀. 사제들 성학대 추문은 끊이지 않는데, 사제를 앞세워 남의 악을 퇴마한다는 발상. 자기들 안의 악도 못 걷어내면서 사흘간의 퇴마 쇼로 성스러운 척이 되겠나?
*가톨릭 고위 성직자, 성녀 아가타의 두개골을 공개 전시하고 왕관을 씌운 뒤 입맞춤. 일부에서는 이를 우상 숭배, 마법 또는 이교도 행위라고 비난. 가나 주교회의 의장, 이것은 숭배가 아닌 ‘공경’이라고 해명. 가톨릭은 성인의 육신을 성유물로 삼아, 사후에도 기도와 기적의 매개체로 사용. 남이 하면 기괴한 주술이고 자신들이 하면 거룩하다는 것, 그들의 오래된 방식 아닌가?
*버크 추기경, 교황은 때로는 인간으로, 때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말한다고 주장. 교황의 즉흥 발언은 교리가 아니며, 교리에 어긋나면 이의 제기도 가능하다고 설명. 어느 말이 인간의 말이고 어느 말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의 말인지 어떻게 판단하나? 맞으면 신의 권위, 틀리면 인간의 말이라며 빠져나갈 수 있는 기막힌 구조. 필요할 때마다 말의 자격을 바꿔 책임을 피한다면, 사기꾼의 수법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 뉴올리언스 대교구, 성직자 성학대 피해 정도를 점수로 매겨 합의금 산정해 논란. 강간은 75점, 구강 성학대는 56점, 그루밍 행위는 5점 등 피해를 점수화. 피해자들은 상처를 점수로 환산하는 방식에 “이 모든 게 우스꽝스러운 연극 같다”며 분노. 일부 피해자는 배상 절차마저 학대의 기억을 되살리는 또 다른 고통이라고 호소. 인생을 처참하게 짓밟아 놓고 그 상처를 몇 점짜리인지 따진다니, 이보다 더한 촌극이 있나?
*한국 교회, 목회자가 신앙적 유대와 영적 권위를 성폭력에 악용하는 사례 잇따라. 피해자의 고민을 파고든 뒤 ‘특별기도’를 빌미로 단둘이 만나 신체 접촉까지.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 오히려 목사를 유혹했다며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 “다윗도 밧세바를 범했다”, “넌 나의 라헬(야곱의 둘째 아내)”이라며 성폭력을 신앙으로 포장. 성폭력마다 소환되는 성경의 핵심 인물들, 범죄의 뿌리가 성경이라고 밝히는 건가?
*교황청, 환경 파괴를 ‘창조주를 거스르는 죄’로 규정하며 ‘생태적 회개’ 촉구. 쓰레기 버리고 환경 파괴하는 것까지 ‘죄’라며 세상을 향해 도덕적 훈계. 정작 성직자 성학대와 은폐는 끊이지 않고, 피해 배상을 앞두고 파산 신청까지. 휴지 조각 버리는 것도 죄라면, 여성과 아이들을 짓밟은 것은 쓰레기 행동 아닌가. 자기 쓰레기는 쌓아두고 남의 쓰레기에 ‘죄’ 딱지 붙이는 건 무슨 염치인가?
*케냐 가정집의 새까맣게 그을린 부엌 벽에서 ‘성모 형상’을 봤다는 소문 퍼져. ‘일생일대의 신성한 기회’라며 전국 각지에서 수백 명이 몰려들어. 하지만 집주인은 온라인 이미지는 AI로 조작됐으며 실제와 다르다고 밝혀. 누구에게나 모습을 보일 거라면, 왜 가정집의 그을린 부엌 벽인가? 그을음에서 여자 형상이 나타났다면, 도깨비나 귀신 아닌가?
*레오 14세, 종교적 확신에 갇히지 말고 새로운 길과 선택을 찾으라 강조.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며 단호히 배척. 바티칸 공의회 역시 계시된 진리는 바뀌거나 수정될 수 없다고 선언. 바울은 복음을 벗어나면 저주라 하고, 교황은 새로운 길을 찾으라고 하고. 둘 다 신의 뜻이라면서 정반대라면, 둘 중 하나가 사기거나 둘 다 사기거나.
*이탈리아 코모의 가톨릭 성당에서 불교 신자 여성의 추모 행사 진행. 가톨릭 사제는 부처를 ‘깨달은 자’라 칭하며, 고인이 “부처에게서 신을 찾았다”고 발언. 성당 강단에서는 불교 승려들이 만트라를 낭송했고, 가톨릭 전례나 기도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져. 과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더니 이제는 다른 종교에서도 신을 찾을 수 있다는 모습. 유일한 진리라던 주장을 슬그머니 바꾼다면, 거짓이 드러나기 전에 퇴로부터 만드는 것 아닌가?
*성서비평 연구자 줄리언 도일, AI 분석으로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고 주장.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믿음으로 2천 년 가까이 대대적으로 선전. 예수의 정확한 생일조차 알 수 없고(콜린 J. 험프리스의 『최후의 만찬의 신비: 예수의 마지막 날들 재구성하기』 2011, p. 14), 처형시켰다는 빌라도 기록에는 흔적도 없어(폴 윈터의 『예수의 재판에 관하여』 1961, p. 1~2).
부활 이야기는 성경 4복음에만 있는데, 그마저도 내용이 모두 달라. 태어난 날조차 모르면서 죽었다 살아난 것은 확실하다니, 허풍 중의 허풍 아닌가?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세라노, 십자가 사진을 오줌에 담고 ‘종교 예술’이라 주장. 가톨릭 측은 “슬프다(sad), 실망스럽다(disappointed)”며 감정적 반응에 머물러. 절대신의 상징이라면서 모독당했는데도 정작 그 권능이 “두렵다(afraid)”는 반응은 없어. 세례받은 신자마저 십자가를 소변에 담았다면, 그 신의 권능은 어디에 있는가. 그 공허함을 감추지 못한 채 ‘종교 예술’이라 몸부림치는 모습, 결국 “비웃으면서 울부짖는 것.”
*미국 언론, 기자들은 종교적 기적을 제대로 취재·검증해야 한다며 문제 제기. 최근에는 성모가 나타난 뒤 종양이 줄었다는 사례까지 ‘기적’으로 소개돼. 하지만 ‘성모가 나타났다’는 믿음과 ‘성모가 종양을 줄였다’는 주장은 다른 문제. MRI·CT 등 의료 기록과 전문가 의견을 통해 실제 인과관계를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 수천 년간 검증 없이 기적을 내세워왔다면, 이제는 ‘믿음’이 아닌 객관적 인과관계로 ‘입증’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