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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신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God)

발행일 발행호수 2643

워싱턴 포스트는 중서부와 태평양 북서부에 있는 22개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일어난 성학대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1년 동안 진행된 이 조사는 소송, 선서 진술서, 구술 기록, 수천 건의 기숙학교 기록, 전 학생들과의 인터뷰,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편지, 일기, 메모, 정부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신의 이름으로

1819년부터 1969년까지 수만 명의 아동이 미국 전역의 500개 이상의 기숙학교에 보내졌습니다. 아이들은 이름을 박탈당하고, 긴 머리가 잘리고, 원주민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습니다. 원주민 학령기 어린이 5명 중 1명이 기숙학교에 다녔으며, 최소 80개의 학교가 가톨릭교회나 그 종교 단체에서 운영했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는 교회는 보통 아이들에게 개종을 요구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조사는 알래스카를 포함한 중서부 및 태평양 북서부 외딴 지역의 가톨릭 학교에서 원주민 어린이들이 당한 만연한 성적 학대의 실상을 밝혔습니다. 포스트는 1890년대 이후 22개 기숙학교에 배치된 최소 122명의 사제, 수녀, 형제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아동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학대의 대부분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발생했으며 1,000명 이상의 아동이 학대당했습니다.

툴랄립 부족이자 전국 원주민 기숙학교 치유 연합의 대표 데보라 파커는 교회가 운영하는 원주민 기숙학교 네트워크를 “전국적 범죄 현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파커는 “그들은 은폐된 곳에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그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포스트는 가톨릭 기관에서 공개한 성적 학대 혐의가 인정되는 사제들의 근무 이력을 조사했습니다. 그런 다음 교구와 수도회가 제공한 명단을 활용해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근무한 성학대 가해자들을 파악했습니다. 또한 기자들은 소송, 선서 진술서, 구술 기록 및 수천 건의 기숙학교 기록을 검토하고 전직 학생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포스트의 조사 결과가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널리 퍼진 성적 학대를 엿볼 수 있는 창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학대의 정도는 훨씬 더 심각했을 것입니다. 고발된 사제들의 명단이 일관성이 없고 불완전하며, 많은 생존자들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거나 사망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기록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 가해자들의 원더랜드

워싱턴 포스트가 조사한 22개 학교 중 18개 학교는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신부와 수녀, 형제를 91년 연속으로 한 명 이상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학교들에서 학생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해서 포식자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자료1>

현재는 원주민 기숙학교 생존자들을 대변하는 변호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지만, 당시 교회에서 아동 성학대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일했던 전 가톨릭 사제 패트릭 J. 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도움을 요청하며 비명을 지를 수 있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거나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은 가해자들의 원더랜드입니다.”

# 원주민 생존자들의 증언

클라리타 바르가스는 8살 때 워싱턴주 오마크에 있는 가톨릭 운영 원주민 기숙학교, 성모 마리아 미션 스쿨에서 강제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 학교는 원주민 어린이들의 정체성을 박탈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설립한 학교였습니다. 한 신부가 그녀와 다른 소녀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TV 영화를 보게 한 다음 무릎에 앉힌 채 몸을 더듬고 애무했는데, 그녀는 이것이 3년간의 성적 학대의 시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64세인 바르가스는 “그 일은 평생 저를 괴롭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세인트 메리)미션 스쿨은 1886년 워싱턴 북중부 오카노간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근처에 가톨릭교회가 설립한 학교입니다. 카울리츠 원주민 부족 출신인 멘데즈는 1966년 11살의 나이로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 직후 예수회 고위 신부 존 J. 모스가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모스는 종종 그녀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고,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맨 엉덩이를 때리고 손가락을 삽입했습니다. 그는 다시 집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싶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멘데즈는 자신이 유일한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모 마리아 학교에서의 아동 학대는 2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1948년부터 26년 연속으로 사제나 형제들이 아이들을 성추행했습니다.

생존자들 중 한 명인 클라리타 바르가스 또한 수십 년 동안 모스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콜빌 보호구역 연합 부족의 바르가스는 “교회는 내 영혼에 상처를 입혔고, 내 영혼을 앗아갔으며, 내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갔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르가스의 증언에 의하면 모스는 1968년 그녀를 학대하기 시작했으며, 거부하면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스는 대부분 일요일 밤에 그녀와 몇몇 소녀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했고, 따뜻한 코코아, 초코칩 쿠키 또는 초콜릿 바를 주고 텔레비전을 보게 했습니다. 그는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아 소녀들을 한 명씩 무릎에 앉히고, 사정할 때까지 등을 문질렀습니다. 어른이 된 그녀는 지금도 학대 사제가 주곤 했던 초콜릿을 먹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당시 일부 생존자들은 어른들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하거나 믿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 사건들을 조사한 변호사 블레어 타마키의 법률 파트너인 브라이언 스미스는 “이 신부들은 모든 사람에게 신 다음으로 높은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신고하는 것은 마치 신을 학대로 고발하는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타마키는 수사를 통해 모스가 5세에서 15세 사이의 소년 소녀 60명을 성추행했다는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변호사들은 또한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아동들을 성추행한 성모 마리아 학교의 성직자 12명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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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니보인 부족과 그로스 벤트레 부족의 70세 남성인 제이는 몬태나주 헤이즈에 있는 성 바울 미션 기숙학교에 보내졌습니다. 제이는 11살 때 예수회 사제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자르는 소나무 숲 옆 오두막에서 자신을 강간했다고 말했습니다. 제이는 “그는 내가 누구에게라도 이 사실을 얘기하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성모 마리아 미션 스쿨에서 시작된 성학대 폭로는 변호사들이 몬태나주 헤이스의 성 바울(세인트 폴) 미션 기숙학교에서 오랫동안 숨겨져 온 학대 사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곳은 약탈적인 사제들을 처리하는 곳이었습니다.

변호사들이 조사를 위해 찾아오자 성 바울 기숙학교 생존자들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70세의 제이는 두 명의 신부, 한 명의 형제, 한 명의 자매가 자신을 어떻게 성적으로 학대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1959년, 학대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6살이었으며 12살까지 학대가 지속되었습니다. 지그프리다 헤팅거 수녀는 그에게 성모 마리아 동상 앞에 서라고 지시했습니다. 수녀는 그에게 바지를 내리라고 명령한 다음 구강성교를 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도 그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제이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였어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녀는 우리 온몸을 만지고 가슴에 우리 얼굴을 대었어요. 그녀는 이런 짓을 하기 전에 십자가 표시를 그었어요.”

더 포스트의 분석과 법원 기록에 따르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성 바울 기숙학교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어린이들을 성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사제, 형제, 자매는 최소 19명에 달합니다. 기소된 예수회 사제 중 한 명은 에드먼드 J. 로빈슨인데, 교회와 법원 기록, 소송, 그레이트 폴스 트리뷴 기사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교회 관계자들은 그를 기숙학교에서 다른 기숙학교로 옮겼습니다. 전직 교회 내부자와 생존자들의 변호사에 따르면, 이는 많은 약탈적 사제들에 대한 교회의 패턴이었다고 합니다. 그 패턴은 “제거하기, 숨기기, 뒤섞기”였습니다.<자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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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딘 샤르보노 뒤부르는 사우스다코타주 마티에 있는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신부들에게 성적 또는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밝힌 9명의 자매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16살 때 가톨릭 신부에게 교회 지하실에서 반복적으로 강간을 당했고, 이후 의사와 여러 가톨릭 수녀들이 낙태를 강요했다고 말했습니다. 75세의 뒤브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학대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절 믿으세요. 절대 극복할 수 없습니다.”

제럴딘 샤르보노 뒤부르와 여덟 자매는 1950년대부터 노스다코타 집에서 400마일 이상 떨어진 사우스다코타주 마티에 있는 성 바울 원주민 선교 학교로 한 명씩 보내졌습니다. 뒤부르는 1955년부터 1967년까지 성 바울 학교에 다녔으며, 진술서에 따르면 6살 때부터 한 신부가 놀이터에서 그녀를 만졌고, 10대 때는 다른 신부가 그녀를 반복적으로 강간했다고 말했습니다. 뒤부르의 자매 중 한 명은 9살 때 주방 테이블에서 신부에게 강간을 당했고, 세 번째 자매는 신부가 “나를 지하실로 데려가 구강성교를 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2008년, 9명의 자매는 학대 혐의로 사제 4명, 수녀 6명, 학교 직원 2명을 비롯해 수 폴스 가톨릭 교구와 세 개의 종교 단체(성체 수녀회, 성체 오블레이트 수녀회, 블루 클라우드 수도원)를 고소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홉 명의 어린 소녀들’로 알려지며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수 폴스 교구와 종교 단체는 잘못을 부인했으며, 이미 모두 사망한 사제, 수녀, 학교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짧은 공소시효 등 가해자에 유리했던 사우스다코타주의 일련의 법원 판결로 결국 샤르보노 자매가 제기한 소송은 기각됐고, 다른 생존자 100여 명의 소송도 기각됐습니다. 이에 대해 생존자들의 변호사 그레고리 A. 예이츠는 “어린 시절 성적 학대 생존자들이 또 다시 피해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뒤부르와 나이 많은 자매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20년, 3명의 자매가 사망했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70대와 80대입니다. 뒤부르는 말합니다. “사우스다코타 의원들은 우리 나머지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미국 내무부의 최종 보고서

2024년 7월 30일, 미국 내무부가 발표한 원주민 기숙학교 최종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약 1,000명에 육박하는 973명의 어린이들이 기숙학교에서 강제 수용당하는 중 사망하였으며, 최소 74개의 표시된 매장지와 표시되지 않은 매장지에 묻혔습니다. 실제 사망한 아동의 수와 잠재적 매장지의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또한 기숙학교 관련 트라우마가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쳤으며 원주민과 그 지역 사회에서 높은 자살률, 약물 남용, 알코올 중독, 열악한 양육을 계속 조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는 생존자들의 끔찍한 증언도 실렸는데, 알래스카 랭겔에서 온 한 생존자는 “이 학교는 소아성애자들을 끌어들이는 곳이었으며,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교사들이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남학생 기숙사의 교사들이 침대나 욕실에서 소년들을 강간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학기 중에 임신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여학생들을 보았는데, 그 아이들 대부분이 11세, 12세, 13세 정도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료1> 성학대 사제들의 원주민 기숙학교 근무 이력 가톨릭 기관에서 혐의를 인정한 사제들만 표시된 것입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자료2> 성학대 사제 로빈슨의 근무 이력 로빈슨은 사제로 재직하는 동안 여러 기숙학교에서 5세 아이를 포함해 9명의 소년과 소녀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는 근무지만 옮겨가며 20년 이상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일했고, 성 바울 기숙학교에는 세 차례에 걸쳐 근무했습니다. 이는 많은 약탈적 사제들에 대한 교회의 패턴이었습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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